도구로서의 효율성과 끊임없는 지름신의 유혹 사이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나는 현장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무’라고 대답한다. 공무라는 포지션은 주로 계약과 기성, 인허가, 각종 보고 등을 담당한다. 많이 쓰는 프로그램은 주로 엑셀과 PPT, 워드이고, 숫자에 대한 감각과 각종 상황에 대한 계약적 판단, 여러 팀들과의 긴밀한 협업능력, 발주처와 본사와의 유기적 관계 내의 흐름에 대한 민감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일을 잘하고 싶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장점의 한계가 있으니 업무의 효율이라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보자 싶어서, 일의 속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주로 쓰는 프로그램의 단축키를 외우기도 하고, 프로그램에서 자주 short-cut icon을 세팅하여 매번 메뉴를 찾을 필요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최적화하려는 노력도 했다. 업무 중인 파일은 바탕화면에 배치하여 진행 중인 업무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도구가 효율적이면 커버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좀 더 쓰기 편한 마우스와 키보드도 사용하고 있다. 하드웨어의 명가 Microsoft의 마우스, 그리고 견적에 있던 친구가 쓰는 키보드의 키감을 눌러보고 맘에 들어 구입한 무선 키보드. 아직까지 편안하게 잘 사용하고 있고 좋은 도구가 주는 유익이 분명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내다 보니, 필요한 도구에 대해 구입하는 것은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없어서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구입해서 시간을 단축하고 좀 더 생산성 있게 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미디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지금은 예전에 아날로그로 사용하던 장비들이 대부분 디지털 플러그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기타에서 쓰는 이펙터, 앰프의 소리, 각종 소리의 색깔을 변환시켜주는 기기들, 음악의 다이내믹을 눌러주고 공간적 효과를 만드는 컴프레서나 딜레이 등. 예전에는 다 장치로 구입했어야 하는 것들이 이제는 로직이나 다른 DAW (Digital Audio Workstation)에서 구동되는 플러그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디를 시작한 게 얼마 안 됐으니.)
유튜브를 보면 세상에는 정말 많은 플러그인들이 있다. 전문가들이 이건 필수라며 당연한 듯 사용하는 플러그인도 있고, 유사한 기능이지만 메이커에 따라 조금씩 다른 효과가 있어 비교하며 사용하는 것도 있다. 물론 개중에는 무료로 나오는 것들도 있고, 기간 한정으로 세일을 하기도 한다.
이것저것 작업하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몇 가지를 구입해서 사용해봤다. AI 마스터링을 하는 Ozone9, 코드 변환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Scaler2, 음악의 색깔을 아날로그처럼 만들어주는 Tape, 레코드판 같은 자연스러운 잡음을 만들어주는 Vinyl, 보컬 녹음을 하고서 각종 잡음을 제거해주는 Izotope의 RX 등. (몇 가지 더 있긴 한데 아직 사용을 안 해봐서 이 정도만.) 최근에 출시한 Reverb인 Izotope의 Neoverb와 같이 구입하고 싶은 플러그인도 몇 가지 더 있다.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고 언제 살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플러그인을 보다 보면 계속 빠져들게 된다. 몰랐던 기능과 새로운 상품이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런 기능이 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어머! 이건 꼭 가지고 있어야 해, 우와 완전 싸게 나왔는 걸, 등등. 어느 순간 계속 플러그인 쇼핑몰을 둘러보며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필요보다 구매가 목적이 되어버린 듯 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도구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좋은 곡을 쓰고서 그걸 더 자연스러운 음악으로 구현하기 위한 툴이라면 필요하겠지만, 창작에 대한 고민 이전에 도구를 맹목적으로 구비하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인 것 같다. 유튜브의 한 레코딩 강좌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로직 프로의 기본 내장 플러그인도 좋은 것이 많다고. 새롭게 구입하기 전에 내장 플러그인을 충분히 써보고, 이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쓰기 편하겠다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가서 구입하라고. 일리 있는 말이다.
미국은 블랙프라이데이에 다양한 할인을 했다. 각종 전자제품과 상품도 그렇지만, 플러그인도 제법 세일을 해서, 블프에 세일하니 기다렸다가 눈여겨본 것이 싸게 나오면 구입하라는 유튜브 영상을 봤었다. 그동안 눈 여겨봤다가 얼마 전 블프 기간에 필요한 플러그인을 몇 가지 추가 구입했다. 이제 남은 건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이다. 보컬 녹음 후 프로세싱하는 플러그인은 열심히 사용 중이고, 믹싱과 마스터링에 쓰이는 것들도 좀 더 공부해서 잘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