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학이 기술사 공부에 도움이 될 줄이야
호기심으로 배웠던 공부가 어느 날 불쑥 소환되었다.
기술사 학원에 다니던 중 대학 때 공부한 화성학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
학원 수업을 듣던 중 골조공사의 거푸집과 동바리 설명에 모순이 있어 무심코 문제제기를 했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이해하고 공감했던 것을 보면 문제제기가 논리적으로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 평소 강사의 스타일이 한 명을 찍어 약간 장난스럽게 찍어 갈구는 타입인데, 그날은 내가 타겟이 된 듯했다. 회사와 학교를 물어보기도 했고, 얘기하다 보니 시공기술사도 이미 있고.. 등등. 강사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문제제기에 대한 장난스러운 응징을 하려다 실패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다만 유쾌한 성격이어서 맘에 담아두진 않은 듯했다.
대화 중에 음계를 아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음대 화성학 수업을 들었다고 대답했었다. 평소에 트럼펫을 부는 것으로 유명했던 분이라 적어도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면 교양이 없진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 음악을 안다는 동질감도 있었는 듯싶기도 했다. 화성학 수업을 들었던 것이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될 줄이야.
음악적 지식은 짧지만,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백병동 화성학을 한 권 다 공부했다는 것이다. 백병동 교수는 음학계의 원로 교수인데, 음대에서 화성학 교재를 이 책을 많이 쓴다고 했다. 그것도 대충 독학으로 본 게 아니라 음대 기악과의 전공필수인 화성학 4학기 과정을 수료한 것이었으니,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원래 배우고 싶은 분야는 재즈 화성이었지만,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클래식 화성학뿐이었다. 화성학 수업에는 항상 한 두 명의 타과생이 있다고들 했다. 수업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나름 재미나게 들었다. 성적도 그다지 좋진 않았지만 매번 수업 끝나고 오선지에 예제를 풀어가는 것도 나름 즐거운 추억이었다.
화성학 공부를 시작했던 동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호기심에서 시작했지 싶다. 궁금증이 있어서 수업을 신청했고, 배우면서도 그 호기심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들었던 것 같다. 호기심이 멈추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데, 적어도 음악에 대해서는 아직 노년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내 호기심의 주제는 음향과 사운드 메이킹이었다. 어떻게 하면 균형 있게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다. 각종 플러그인을 사용해서 데모를 음악으로,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 것을 고민해왔다. 지금은 다시 음악과 가상악기로 돌아온 것 같다. 새로운 가상악기의 소리가 궁금하고, 재미난 샘플링 소리를 찾아 헤맨다. 좋은 소리를 만나면 뭔가 더 만들어 보고 싶은 모험심이 발동한다. 마치 시계추처럼, 창작과 음향 엔지니어링의 세계를 오가는 것 같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화성학이 기술사 공부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소환된 것처럼, 지금 내가 가진 이 호기심이 인생에서 언제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좋아서 하는 공부라서 재미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시 전공분야의 꼭 필요한 공부를 어쩔 수 없이 시작해야 할 시기가 오겠지만, 지금은 내 호기심을 조금 더 따라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