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k-Off Meeting이라는, 현장 시작단계에서 전 기간 동안 어떻게 현장을 운영하고 공사를 수행할 것인지를 고민하여 발표하는 행사이다. 보통 공무팀에서 초안을 잡고, 세부 사항은 각 팀별로 작성한다. 작성된 내용을 취합해서 다시 공무팀이 전체 흐름에 맞게 수정하고 양식과 디테일을 맞춰 보완하면서 작성한다. 현장에서 주관하되 본사의 여러 유관부서들이 함께 토론하는 회의여서 현장 일정의 중요한 마일스톤 중 하나이다. 여러모로 업무가 많은 상태에서 준비하게 됐는데 짧은 시간임에도 짜임새 있게 준비해서 나름 잘 끝난 것 같다.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사를 하는 것은 거대한 일의 조립품이다. 콘크리트를 타설 하는 것만 해도 수많은 품과 장비와 관리와 지원이 들어간다. 레미콘 업체가 적시에 레미콘을 배달하면, 현장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펌프카가 믹서를 돌리고, 콘크리트공들이 이미 준비된 거푸집과 철근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품질상의 문제가 없도록 품질팀은 콘크리트의 물성을 시험하고, 공사팀은 콘크리트의 점도와 시공성을 봐가며 공사의 속도를 조절하며 리딩 한다. 감리는 이 과정을 감독하고 발주처는 잔소리를 한다. 그 과정이 다 끝나면 공무는 물량을 정산해서 자재 납품업체와 시공업체에 기성을 주고, 관리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실제 돈을 집행한다.
홈레코딩은 건설과 달리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적어도 음원을 만드는 것까진 혼자 다 해볼 수 있다. 샘플이나 애플루프, 드럼 프리셋을 활용해 리듬을 만들고, 맘에 드는 코드를 입혀서 곡의 구성을 만든다. 베이스를 녹음해서 곡의 기초를 만들고, 여러 가지 소리를 시도해보며 어울리는 모양새를 만든다. 이런저런 멜로디를 구상해서 적어보고 노래로도 불러서 가이드를 입힌다. 때론가사를 같이 작업하기도 하고 기타 연주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혼자서 다 해볼 수 있다.
건설업에서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각 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만들어 내고 끊이지 않게 하여 시작부터 완결까지 흘러가는 것이 중요하다. 막히는 구간이 생기면 그 사소한 부분 때문에 끝점이 완성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내 업무로 막히는 일이 생겨 민폐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홈레코딩을 하면서 헤매는 것은 아직 끝점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정도까지 만들어야할지, 드럼을 이 비트를 써야 할지 다른 비트를 넣어야 할지, 코드의 흐름은 적정한지, 곡의 구성은 지루하지 않은지. 다 혼자 하는 것이라 때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만든 곡의 양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생이라는 표현은 보통 시공한 콘크리트가 잘 굳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건설에서는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특이하게도 소설가의 에세이에서 본 표현이라 인상 깊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의 초고를 쓰고 난 후에 얼마간의 시간 동안 작품을 묵혀둔다고 한다. 소설을 쓰면서 작품에 몰입했던 시간을 벗어나서 묵혀두는 양생의 기간을 갖고 나면 쓸 때의 뜨거웠던 머리가 식어지면서 작품을 냉정한 눈으로 다시 보게 되고 오류와 허점과 고칠 점들을 보게 된다고 했다.
지금이 그동안 만든 곡을 양생 시킬 시간인 것 같다. 일단 초안을 완성했으니 잠시 거리를 두어 보고 싶다. 만들 때의 마음과 흥분이 가라앉고 수정하고 보완할 것이 보이겠지. 그동안 못 읽은 책도 읽고 새벽 글쓰기도 다시 시도하며 곡이 단단하게 양생 되길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