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피스에 칼리시?
먼치킨 고양이종은 순하고 합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믿고 싶은 마음에 '별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쏨이와 뭉치를 첫날 바로 인사시켜 주었습니다.
새로 온 아가가 궁금한 쏨이는 뭉치에게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호기심을 보였어요.
쏨이는 크게 경계하지는 않았고 등을 세우거나 하는 공격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예상했던 대로 쏨이가 둘째를 잘 받아들여줘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뭉치가 아직 많이 어린 2달이 갓 지난 겁쟁이 아가라는 점이었어요. 샵에서 말하길 엄마와 떨어져 어제 샵으로 와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현재 묽은 변을 보는데 설사까지는 아니라며 잘 지켜보라고 했었죠. 설사를 계속하면 샵에서 며칠 더 보살피면서 케어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사실 크게 걱정하진 않았어요. '뭐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안일한 마음이었죠.
결국 뭉치는 첫날 저녁 바로 설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쏨이는 뭉치를 따라다니며 냄새를 맡는 정도였는데 뭉치에게는 새로운 환경도 낯설고 쏨이가 무서웠을 수도 있었겠어요.
주방 바닥이라 설사를 치우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뭉치의 얇은 털에 붙은 변을 닦아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맨질맨질한 피부에 묻은 것을 닦는 것과 달리 얇은 털에 뭉개어져 붙은 건 살짝 문질러서는 잘 닦이지가 않았습니다. 뭉치가 더 놀랄까 봐 살살 닦아주려 하는데 만지기도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아주 작고 조그마한 솜뭉치여서요. 뭉치 입장에선 커다란 제가 얼마나 무섭겠어요.
"이거 설사 완전 큰 일인 걸. 우리가 집에 없을 때 설사했다고 생각해 봐. 완전 난리 나겠는데."
남편이 저보다 깔끔한 성격이라 그런지 큰 일이라면서 뭉치가 설사를 하니 다시 샵에 맡겨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전 샵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싫었고 뭉치가 샵의 유리 케이지 안에서 보살핌을 받느니 제가 관리를 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남편은 회사를 다니고 저도 일이 있어 하루 종일 보살피기는 어려웠어요. 사실 그것보다도 고양이를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아기 고양이를 제가 잘 케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쏨이는 한 번도 설사를 한 적이 없어서 고양이가 설사를 할 경우 어떻게 관리해줘야 하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적절한 사료를 챙겨주는 것도 저보다는 경험 많은 사장님에게 맡기는 게 나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샵의 사장님이 어린 고양이들을 닭가슴살 생고기를 갈아주니 확실히 건강해졌다면서 저한테 생고기를 갈아주라고 알려주고 고양이 분유도 챙겨 주셨었어요. 이 모든 게 생소한 데다 설사까지 하니 아무래도 사장님한테 맡겨서 조금 더 크고 다시 데려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일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후회됩니다. 뭉치를 다시 샵에 맡겨 둔 게요.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왔지만 중간에 샵에 가봤을 때 마침 2층에 동물병원이 들어오는 공사를 하는 중이라 공사 소음이 꽤 있었거든요. 게다가 공사일하시는 분들이 펫샵에 연결된 계단으로 다니셨는데 겁 많은 뭉치가 계단 옆 유리 케이지에 있었어요. 우리 뭉치 얼마나 긴장되고 스트레스받았을까 생각하면 정말 속상합니다. 어떻게든 제가 보살펴줬어야 하는데 전부 부족한 제 탓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쏨이가 뭉치를 입양한 다다음날부터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힘 없이 축 늘어져 있고 사료도 전혀 먹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쏨이가 예방 접종을 하던 지인에게 추천받았던 병원입니다.
(지금은 다시는 가지 않습니다.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열이 나고 콧물도 나서 고양이 감기에 해당하는 '허피스'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을 받고 체온계도 구비했습니다. 열이 너무 많이 오르면 의사 선생님께서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알려 주셨어요.
고양이 몸은 털이 많아 체온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귀를 만져보면 체온이 잘 느껴집니다. 당시 쏨이는 정말 뜨거웠어요. 입맛도 없는지 사료는 입도 안 대고 힘없이 계속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츄르는 잘 받아먹었어요. 츄르를 많이 주면 안 좋다고 하지만 사료를 전혀 안 먹으니 츄르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이며 츄르에 사료를 몇 알이라도 섞여서 간신히 먹였습니다. 약을 먹이는 일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고양이를 다루는 게 서툰 저는 겁도 났어요. 그래도 한두 번 해보다 보니 점점 요령이 늘었는데 제가 느는 요령만큼 쏨이도 피하는 기술이 늡니다. 힘이 없으면서도 요리조리 약을 안 삼키려고 요령을 부리네요.
주둥이 털 손실을 극복하고 뽀송해진 쏨이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코가 거뭇거뭇해졌습니다. 웬 곰팡이 균인가 싶어 알코올 티슈로 빡빡 닦아주고 싶었지만 얼굴 부위라 따뜻하게 적신 물수건으로 살살 닦아주었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나다 이제 좀 걸어 다니나 싶었는데 한쪽 다리를 살짝 저는 게 아니겠어요?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에 걱정이 되어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칼리시'라는 병일 수도 있다는 어마무시한 말을 들었습니다.
해열제를 먹은 후에는 열이 내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이 오르는 등 며칠 째 열이 오르는 상황에서 다리를 살짝 저는 게 단순히 '허피스'가 아니라 '칼리시'라는 바이러스 일 수도 있는데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움직이다가 다리를 살짝 삐끗해서 그러는 것일 수 있으니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너 다리를 삐끗한 거야? 아니면 그냥 갑자기 다리가 저려??'
칼리시일 경우는 영구적으로 다리를 절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듣고 뾰족한 대책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 얼마나 걱정되고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예전엔 몰랐지만 동물들의 병이란 게 진단이 빠르고 정확하게 나오지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소하게 의심되는 모든 질병을 일일이 검사하면 '과잉 진료'와 '과다 청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병원에서도 확실해 보이지 않으면 검사를 권하지 않는데 고양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을 할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상태로만 진단을 내리기가 참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질병을 얘기해 줬다가 나중에 다른 질병이면 문제가 되니 동물병원에서는 대체로 여지를 남겨두며 병에 관해 모호하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하루이틀 만에 걷는 모습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아프기 시작한 후 열흘 정도가 지나고 이젠 많이 회복되어 의자에도 올라가고 털도 다시 뽀송함을 찾고 있습니다.
머리끈을 흔들어주니 사냥하려고 팔을 뻗는 게 거의 다 나은 듯 보입니다!
내일 당장 뭉치를 찾으러 갑니다!
쏨이가 아팠던 탓에 정신이 팔려 뭉치를 샵에 맡긴 지 13일 만에 뭉치를 데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미안하고 뭉치와 함께 하지 못했던 13일의 시간이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작은 방에 펜스를 쳐서 분리해 두었습니다. 천천히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하려고요. 이때 겪은 일을 떠올리며 쓴 시가 "아프지 마"입니다.
아프지 마
말도 못 하면서
아프기 금지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 할 거면
아프기 금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도 못 할 거면서
아프기 금지
초보 집사는 이렇게 조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하던가요?
만렙 집사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고양이와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