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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연필소리 Dec 18. 2023

애니타 브루크너의 <호텔 뒤락>, 1984 (2)

글쓰기로 존재하기(2)

현대 영문학의 버지니아 울프 혹은 제인 오스틴으로 꼽히는 애니타 브루크너가 그녀의 페르소나 이디스를 내세워 축조한 세계답게 <호텔 뒤락>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여러 향방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다. 본작은 여성이 자기 자신과 결혼생활로 결정되는 자아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날카롭게 고찰하고 있다. 이디스가 쇠락해 가는 호텔에서 만난 여성들은 결혼 생활로 정의된 자신의 의미에 갇힌 상태로, 선택해 본 적 없는 미래에서, 임신, 쇼핑, 잊혀짐과 같은 역시 선택한 적 없고 자신의 선택으로 좌우할 수도 없는 결과로 일상을 정의(정할 정 定, 옳을 의 義) 당한다. 일상과 찰나야말로 삶과 영겁을 만드는 최소단위라는 점에서 일상을 타이로 종용받는 것, 물론 자의도 섞여있지만, 은 삶에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폭력이다. 본작은 호텔에서 ‘배정해 준’ 자신의 방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배된 이디스가, 처음에는 방이 소고기 색깔이라고 생각하며 거부감을 갖다가, 나중에 떠날 날이 다가오자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호텔을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사회와 타인이 개인의 일상에 가하는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무채색으로 물들이고 마비시켜 가는지를 설명한다.



이디스는 자신이 간절히 원하지만 비상식적인 행위인 연인과의 불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착하고 성실한 남자와의 결혼이라는 상식으로 도망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타인의 상식이라고 해서 자신이 추구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최고의 기치인지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고, 결혼식에 불참한다. 이 일로 그녀는 반강제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유리되어 뒤락으로 유배된다. 뒤락에서 그녀는 예의 여성들과, 자신과의 자유로운 결혼을 요구하며 상식으로의 편리한 도피를 제안하는 남성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세속의 기준에 자신이 상식을 맞추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자신의 자아를 재단할 것을 고민하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갈’ 것을 공표한다. 아마 그녀는 그녀가 작가이자 직업인으로서 쓰는 통속적인 로맨스소설과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고 세상에는 자본력과 권력이 훼손할 수 없는 소중한 정신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 한 여성이 쓰는 러브레터 사이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디스가 글쓰기로 실존을 이룩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삶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 잘못된 점을 직접 교정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이디스가 자신의 여러 페르소나를 인정하고 주체적 자아와 주변적 자아의 공존과 균형, 그 간극의 극복을 함축한다. 물론 이디스가 호텔 뒤락에서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로 무례한 태도로 삶을 방어하거나 타인의 삶을 공격하는 인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주체적 자아를 발견하는 이 과정을 통해 모두 경계인이라 할지라도 타인과 자신의 경계를 넘어 다니며 파괴해서는 안 되는 삶의 자취가 있음을, 자신이 상식이라고 믿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삶을 비난할 수는 없음을, 사랑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 하더라도 사랑 없는 삶을 옳지 못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음을 체득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추구하는 데에 어떤 피해도 수반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디스가 자신의 상식과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는 이유로,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이유로, 불륜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불륜과 파혼이라는 타인에게 상처를 남겼으므로 씻을 수 없는 잘못을 바로잡고 자신이 만든 비상식적 환경을 교정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정원을 가꾸러 온 소년에게 밥을 해주고, 마당에 앉아 글을 쓰며 일상을 회복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일상에서부터 외연을 확장해 나가며 조금씩 문제를 바로잡고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갔으리라고 믿는다. 삶은 오늘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위대한 가치는 일상의 힘이 모여야 이루어진다. 호텔 뒤락은 일상성의 배제를 상징하고, 이디스를 비롯한 여성들의 호텔에서의 생활은 그녀들로부터 주체적인 삶의 운용의 에너지와 그것이 가능할 터전을 앗아간다. 생활은 있되 삶은 없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존은 없는 장소에서, 그녀들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자문자답할 수 있는 일상의 추동력을 얻지 못한다.



사랑 없이 우리는 '잘' 살 수 없다. 본작은 일터와 가정 모두에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여성들이 알파걸로 칭송받는 현대에서 여전히 유효한 문제 제기로 읽히고 있는 만큼 본작이 다른 허다한 중요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본작에서 거의 없다시피 한 이디스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장면, 이디스와 구혼자와 설전을 벌이는 장면에 애니타 브루크너가 여성의 삶과 관련하여 근현대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특히 이디스가 버지니아 울프를 닮았다는 점에서, 뒤락에서 머무는 여성들의 상황을 버지니아 울프가 던진 질문들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고, 쓰고자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이것은 이제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방 그 너머의 삶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Du Lac(호수)에 고인 채로, 흐르지 못하고. 볕이 좋으면 내키지 않아도 윤슬로 빛나야 하고, 바람이 불면 둥그런 테두리 너머로 여울지지 못한 채로 원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삶.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본작은 개인, 단체, 사회, 구조로 단계를 넓히며 이들이 스스로, 혹은 타의로 갇혀 있는 호수에 대하여 가만히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에 대한 논의점들 사이에서도 나는 이 문장을 참 아끼고 사랑한다. 사랑 없이 우리는 ‘잘’ 살 수 없다. 이디스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편을 선택하고, 부정(不, 깨끗할 정 淨)한 자신의 페르소나를 고통스럽게 바라보며, 세속적 가치가 사랑보다 우선되는 뒤틀린 상식을 거부하고,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이디스의 정의(正義)가 가장 인상적인 착점으로 가슴에 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대답하기 위하여 글로, 소설로, 편지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들. 현대의 유연해진 도덕관과 신뢰 관계에 대한 해이(풀, 깨달을 해 解, 늦출 이 弛)해진 믿음이, 사랑과 양심, 신뢰와 같은 보존이 당연한 마음을 유별난 로맨티시즘으로 힐난할지라도, 고결해서 때로 바보 같은 마음이 결국 양립이 힘겨운 가치들 사이에서 고통받는 여린 존재들에게 해결책이 되어준다. 그 존재가 당연한 마음들이 타인이 재단 후 제시하는 삶의 향방 때문에 갈 길을 잃고 사그라드는 것은 결코 옳은 선택이 될 수 없다.



종종 나의 이런 미력한 글도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나의 이 무상한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냐는 비아냥 섞인 질문을 받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하여 태어난 이 글에 지적 허영심, 몇 줄의 글로 사회의 일원으로 내가 수행해야 하는 사명(부릴 사 使, 목숨 명 命)을 다했다는 자위가 섞여 있지 않다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글들을 잣는 이유는 주로 내가 나이기 위해 이 행위가 꼭 필요하다는 극히 사적이고 실존적인 필요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무위로 인하여 우리 세계가 발 밑에 밟히는 흙 한 움큼만큼이라도 나아간다면, 종종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작은 씨앗으로 남는 긴 농사의 짧은 순간으로라도 남는다면, 나는 몇 번이라도 심지에 불을 붙일 것이다. <작가란 무엇인가>의 서문에서 김연수 작가는 작가(지을 작 作, 자기 집 가 家 / 작가가 특정한 일가, 세계를 구축하는 창조자라고 생각한다)는 평생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한줄기 빛을 내기 위해 평생 타는 초와 같다고 했다. 감히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일기도 그런 꿈을 꿀 수는 있지 않나 생각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우공이산을 꿈꾸는 무모함일지라도.  약소하지만 자신의 옷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기품을 유지하는, 호텔에서의 유배가 끝나면 어느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어느 노부인의 팔꿈치를 잡고 살롱으로 들어서는 이디스의 뒤락에서의 마지막 밤처럼. 나의 삶은 나의 뜻대로. 그리고 나를 품어 준 이 소중한 연대가 조금이라도 연대의 뜻으로 걷기를. 늦었다고 생각하는 황혼의 끄트머리의 짧게 남은 삶도 여전히 소중하고 그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발걸음에 단 몇 초라도, 이 몇 글자가 연료로 쓰이기를. 나의 글쓰기는 그렇다. 위대하지만, 소박한 소망으로.


바프 찍은 날 메컵 받은 김에 떨어본 주접...




치앙마이에서 했던 약속을 지킵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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