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
작년 4월. 내 몸뚱이만 한 백팩을 메고 제주도로 떠났다. 어디든 발길 닿는 곳에서, 텐트를 치고, 자리를 깔고, 커피를 끓이고, 책을 읽고, 예능을 보면서 라면을 먹고, 쓰레기를 치우고, 텐트를 접기로 했다. 그즈음 나는 아침해가 텐트를 뚫고 부드럽게 공기를 채우는 것이나, 오전에 텐트에서 사람들이 산책하러 나와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면 어쩐지 마음이 찡해지는 기분이 좋아서 백패킹을 다녔다. 그러나 정작 3박 4일 동안 제주도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바람과 싸우며 누울 자리를 세팅하고 자리에 누워 가져 온 책을 읽고 있거나, 늦은 밤 아무도 없는 공공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이를 닦고 새벽에 말똥 하게 눈을 뜨면, 바람만이 가득한 희미한 사위 너머로, 옅은 박명이 스며드는 순간들이었다.
하루 두 번, 모든 것이 멈춘 듯한 탄탄한 고요 속에서 마치 나만이 살아있다는 듯이, 엷게 비춰오는 빛.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고요 속에 누워 나는, 제주도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얇게 저며 스치기만 해도 시린 박명 속에 눈물 없이 누워 있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세월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2주에 한 번도 비행기에 오르던 사람이, 지척에 제주를 두고도 1년간 가지 못했다. 일이 많아서, 바빠서, 같은, 노력하면 극복 가능한 대본 적 없는 핑계를 대면서. <지상 위의 숟가락 하나>. 박명 속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아름답고 푸른 거친 초원에 맺힌 빨간 이슬과, 몸뚱이들, 그리고 골육상잔이었다. 생각하면 오소소 소름이 돋아 침낭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제주도는 정치역학상 태평양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을 준비할 때부터 제주도를 전략적 기지로 선택하여 6만여 명의 군인들을 주둔시켰다. 전쟁에 패배한 일본군은 모두 떠나갔지만 일제에 부역한 경찰들은 그대로 남아 미군정의 치안 업무를 보조하는 군정경찰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많았지만, 군인들이 떠나가자 제주를 떠나 있었던 도민들이 일시에 돌아와 기아와 전염병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사회 문제도 문제였다. 심리적으로 각박해져 있는 상태에서 도민들은 실존적 위협 앞에서 무력한 채 공포에 시달려 쇠약해져 갔다. 육지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람이 분열하여 서로를 찌르는 허망한 다툼이 계속 됐다.
1945년의 해방은 반쪽짜리였고, 그 책임은 오롯이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에게 전가 됐다. 그리고 1947년 3월 1일, 3. 1절을 맞아 민주주의민족전선(좌파)이 전국적으로 기념집회를 열었고, 군정경찰은 이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고 이 날 관덕정 앞 광장에서 가두시위를 구경하고 있던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이 모는 말에 치여서 다치고 만다. 첨예한 갈등의 순간, 기마경찰이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성난 군중이 그에게 돌을 던졌고, 경찰은 그들에게 발포했다. 이 일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에 남로당은 군정경찰에 대항하는 활동을 전개하게 되고,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이 이에 합세에 제주도 거의 전체가 파업에 동참한다. 미군정은 좌익세력이 제주도 인구의 7할이라는 보고서를 채택하여, 좌익세력을 척결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군정은 파업 주모자들을 잡아들여 고문을 자행하고, 우도, 중문리, 종달리, 북촌리에서 절멸을 이유로 죄 없는 주민들을 학살한다. 11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내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소련이 거부하면서 남한만의 남독선거 방식이 유력해지자, 분단을 우려한 좌파, 우파 일부, 중도파까지 격렬하게 반발한다. 특히 남로당은 전국 총파업을 실시하고, 제주에서는 고문과 대량 학살로 흔들린 민심이 제주도당의 무장 항쟁 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만다. 4. 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이 결정에 의해 무장대가 도내 경찰서와 서북청년회 등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죽였던, 박명의 순간 시작 된다. 미군정은 민중이 내린 결정을 수습하고 다독이기보다 좌파 소탕의 기조를 유지하여, 본격적으로 절멸하기로 하고, 대대적으로 무장 인원을 확충한다.
갈등은 절정에 다다르고, 마을 전체가 불타는 숱한 비극이 계속된다. 제주도에서의 선거는 무효로 돌아가고 재선거를 실시하지만 이마저도 무산되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승만 정부는 이 선거 무효 사태를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고 11월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후 정부는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외의 지점, 중간산마을과 산악지역 전역에서의 거주를 금지하여, 아이들과 노인들까지 모두 내모는데, 갈 곳 없는 사람들은 되려 계속 산으로 숨게 된다. 중간산 마을은 계속 불태워지고, 서북청년당과 군경은 주민들을, 이유 없이, 집단으로 사살한다. 조천면 북촌리에서는 50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총살당하고, 설상가상 밤에는 살아남기 위해 군경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무장대가 마을을 습격하여 집을 태우고, 사람들을 죽인다.
주민들의 삶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에 끼어 무참히 으깨어진다. 1948년 12월에 계엄령은 해제되지만, 군경은 사면정책을 미끼로 하산한 주민들을 검거하여 육지의 형무소로 보낸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고, 이데올로기 간의 혐오감이 극화되자 보도연맹 사건으로 형무소 입소자들이 폭증한다. 정부는 4.3 사건으로 인해 형무소에 수감된 국민들을 먼저 사살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잠깐 확인하고 넘어가는 이 사건은 무려 5년 넘게 지속된 거대한 사건이다. 제주 4. 3 사건은 공식적인 사건희생자 신고 접수 결과 1만 4532명의 희생을 만든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무시무시한 시대가 지나고 민선 대통령이 선출되고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다가 2000년에서야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대규모 희생에 대하여 유가족들에게 사과, 공동체적 보상 등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유골들이 전국에 흩뿌려져 있고, 심지어 제주 공항에서 유골이 발견되는 등, 제주 전역에서도 아직 피의 역사가 수습되지 못한 채, 모진 바람을 맞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늘, 투쟁이었다. 그것이 이 세계에 이제 없는, 떠난 이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눈이 내리려면 구름이 머금은 수분뿐만 아니라 재와 먼지 등 불순물이 필요하고, 불순물과 물은 늘 우리 세계 안을 맴돈다. 그러니 지금 창 밖에 내리고 있는 비는, 눈은, 몇천 년 전에 이 땅에 내리고,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이 땅에 다시 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역사는 그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독립군의 전투를 돕기 위해서 탄약을 실어 나르던 소녀는 동상으로 인해 4개의 발가락을 잃고도, 두 개 손가락을 잃을뻔한 인선도, 잃을지도 모르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신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깝지도 않아 한다.
본작은 이 땅에 나리는 눈과 비처럼,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두 가지를 꼽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소녀와 인선을 지탱했던 힘, 신념이다. 지금은 옳지만 시간이 지나면 틀려지는 것도 있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옳은 상태를 유지하는 진리도 있다. 인간의 자아는 전자에 비슷한 편인데, 인간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고, 어떤 자아가 주된 자아로 발현되느냐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 생각이 세월을 넘어 늘 일관적일 수 없고, 우리는 내적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맞닿은 세계에도 전해져 세계 또한 변화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신념이나 사람이 있다면, 변화하지 않는 이런 존재들을 보며, 그와의 관계 속에서 그간 변하지 않고 세월을 견뎌온 나의 한 조각을 깨우칠 수 있고, 거대한 메타포인 이 세계 속에서 나는 어디쯤에 닿아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실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단연 사랑인데, 첫 번째보다 더 중요하다. 작품은 잊혀 가는 역사적 비극을 조명하고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역사, 아니 우리의 역사가 골육상잔의 비극의 한가운데를 지나오면서도 어떻게 생존에 닿았느냐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제주도 4. 3 사건, 6. 25 전쟁, 보도연맹 사건, 4. 19 혁명, 5. 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 세월호 사건으로 기억되는 지독한 폭력을 겪었으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아직도 숨 쉴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라고. 단언컨대 그것은 사랑이다. 환각이 찾아오면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인선이 행여나 차디찬 얼굴로, 눈이 내려도 녹지 않는 얼굴로, 스러질까 봐, 그녀를 안고 식탁으로 기어 들어가 숨는 인선의 늙은 어머니. <밝은 밤>의 백정의 딸로 태어났던 지연의 증조할머니로부터 지연까지 백 년을 흐르는 보호와 포옹의 역사.
호헌철폐, 독재타도, 하고 거리를 채웠던 절규. 박종철을 살려내라고 소리치며 거리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 5월의 금남로, 뜨거운 햇살 아래로, 쫓기는 학생을 숨기던 손길, 배곯을까 주먹밥을 건네는 마음, 어린 아들에게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을 물려주려 했던 아버지, 그렇게 떠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품에 안은 아이. 세월에 바래 희끄무레한 노랑으로 철망에 걸려 흐느끼는 리본을 고쳐 묶고, 그 옆에 다른 리본을 걸어매는 그들의 친구,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 어머니, 아버지, 사람들. 피와 살을 나눈 사람들을 찢어 죽인 끔찍한 밤을 보낸 숲에도, 박명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동이 트고, 봄이 오고, 소리 없이 동백이, 매화가, 화들짝. 망울을 터뜨린 이유는. 보듬어 안은 그 손. 그 마음. 파랗게 선 동맥이다. 사랑이다.
한강의 <흰>은 인간의 살과 근육을 찢으면 쏟아져 나올 새빨간 색깔 사이로 희고 단단한 뼈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의 한숨이다. <채식주의자>는 내면이 긁혀 흐르는 피를 식혀 녹색 그릇에 담으며, 그릇의 남은 자리에는 오로지 내 안의 줄기에서 터져 나온 열매만을 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떤 나무의, 단단한 소망이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희미한 박명이 비추는 신념의 우듬지에 대한 이야기다. 부커상 수상작가들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눈에 보이는 듯한 색채감, 톱톱한 마음이 한강의 작품 전반을 대표하는 특징인데, 이 작품 역시 희미한 박명의 이미지와 촉각과 시각의 성공적인 이미지화를 통해 마치 눈앞에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생생함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몸이 구석구석 저릿한 통각이 생생하다. 한강 작가는 늘 벼랑 끝에 매달려 글을 쓰는 것 같다. 작중 경하처럼.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러도, 시대는 흐른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매화가 피고, 동박새가 찾아온다. 우듬지 가득 붉은 이슬을 먹고 자라 이슬만큼이나 붉은 꽃이 공기를 찢듯 터져 나온다. 그렇게 막을 수도 없이, 고통스럽다고 피할 길도 없이, 죽은 새의 시체 위에서 땅 아래 묻히고, 겨우내 눈과 얼음에 덮여 꽁꽁 언 신념이 선연한 붉음으로 피우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하되, 작별하지 않는다. 서로 떨어져도, 끝내 헤어짐을 고하고 인사를 나누지는 않는다. 이별로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못하더라도, 존재 자체와 사유는 나란히 앉아있을 수 있다. 이별(떼어놓을, 갈라질, 나눌, 가를 離, 헤어질 別)하더라도 나란히 놓여 있는 그 방법으로 내내 존재와는 작별(지을, 창작할 作, 헤어질 別) 하지 않는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세계는 우리의 것이지만, 떠난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작별하지 않는다.
올해는 제주에 가려고 한다. 가서 핏빛 이슬을 먹고 사랑으로 피운 꽃이 가득한 숲에서, 서늘한 나무에 기대 우듬지를 올려보고자 한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무의 파란 동맥과, 역사의 아우성, 나의 핏빛 과거가 들려올 것이다. 나, 죄 어수다. 하고 뻗어 오는 손이 있을 것이다. 기꺼이 그 손을 맞잡고, 알고 있다고. 이제 이 땅의 모두가 안다고. 그러니 꽃으로 가득 피어달라고. 마음을 전해야겠다. 아름다운 땅에 나무로 자라고, 꽃으로 피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 2022. 3. 쓰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끌어안은 아이. 이 사진은 독일의 유명 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아이가 겪은 비극이 아이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이루는 모두의 것이며, 전 세계의 것임을 만국에 알렸다. 지금은 어른이 되었을 그가 어떤 생각으로 땅을 딛고 서있을지. 궁금하고, 조금은 걱정된다. 부디 안녕하기를.
필갤러리에서 본 매화. 요즘 내가 자주 다니는 거리에 매화가 한창이었는데 오늘 비를 맞아서인지 후두두 다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대신 필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모용수 작가님의 사랑합니다 전시에서 보았던 작품 사랑합니다> 들의 사진을 첨부한다.
모든 작품의 제목이 <사랑합니다>이고, 액운을 쫓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호랑이와 눈이 땡글땡글한 동박새,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매화가 <작별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이미지라서 가져왔다.
악몽 때문에 실톱을 깔고 잠을 청하던 인선의 어머니에게 이 그림이 있었다면 호랑이가 악몽을 쫓고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