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할리스 속초 영랑해변 DI점>
88번 버스가 온다.
청대산 밑 동광사에서 출발하는 88번은 부영아파트를 지나 시내로 오다가, -1번 버스들처럼 속초 시외 터미널쪽으로 빠진다. 오늘의 목적지는 등대해변의 할리스. -1번이 붙지 않은 버스를 타야 카페 바로 뒤의 정거장에 내려주는데 어떻게 할까? 일단 타자.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카드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어 버스 계단을 올라섰다. 기사님의 얼굴이 내쪽을 향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하고 말을 건네었는데, ‘어서 오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늘 만난 기사님은 친절한 분이다!
버스 창 밖으로 6월의 시가지 풍경이 삭삭 지나간다. 새벽에 내린 빗물에 평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보이는 모습이다. 가는 동안 요 며칠 마주친 세 분의 버스기사님을 떠올렸다.
하루는 양양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로 오는 길이었다. 양양 시장을 지나 새로 생긴 종합터미널에서 외국인 청년이 탔다. 여행보다는 일하러 온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청년이 한쪽 손에 빨랫감이 가득 담긴 이불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성, 속초는 버스요금 단일화로 기본요금만 내면 되지만, 양양은 거리마다 요금이 달라진다. 그래서 기사님이 버스에 타는 사람마다 먼저 목적지를 물어보고 나서 요금을 조정하는 버튼을 누른 뒤에, 교통카드를 태그 하는 식이다. 승하차 태그로 요금이 자동계산되는 수도권과 비교하면 품이 많이 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버스를 타면, 힘든 일과에 지친 기사님의 짜증 섞인 응답이 돌아온다. 그 대상이 주로 노인층일 때가 많아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기분도 불편해진다.
그런데 이 외국인 청년. 한국말도 영어도 못하는 상황이었는지, 버스가 출발을 못하고 ‘웨어 알 유 고잉?’이라는 기사님의 물음에 갸웃대어버리고 만 것이다. 버스는 가야 되지 짜증은 나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정도로 기사님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청년이 스마트폰으로 갈 곳 주소를 보여드린 후에 교통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음날은 젊은 기사님이 운전하는 버스를 탔다. 그동안은 중년층 버스 기사님을 주로 만났었는데, 요즘은 젊은 기사님이 종종 보인다. 차분하고 친절한 느낌에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전날의 불편했던 마음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방금 전 내린 88번 버스에서도 친절한 기사님을 만나 기분이 좋다. 버스가 정거장에 설 때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씀하시니, 승객들도 꼭 답인사를 하고 내렸다.
‘천천히 조심히 내리세요 ‘
’ 감사합니다 ‘
’네 안녕히 가세요 ‘
기분이 좋은 채로 코너를 돌아서니, 목줄에 묶여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보였다. 잠시 쓰다듬어주고 다시 걸었다. 담장 아래 감꽃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할리스 커피에 도착했다. 일요일인 어제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공간이 한산하다. 평일 오전에 오면 평온해서 좋다.
커피를 기다리면서 보니, 음료 제조하는 곳에 수박 몇 통이 쌓여있다. 할리스는 수박으로 수박주스를 만든다더니 진짜였구나.
여름이 되니 프랜차이즈 카페마다 수박주스 전쟁이 붙었다. 진짜 수박을 쓰는 브랜드가 어디인지, 냉동이나 착즙액을 섞는 곳은 어디인지 인터넷상에서 정보가 돌아다니는 걸 봤다. 다음엔 수박주스를 먹어봐야겠다. 여름은 물론이고 사계절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