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설악산

라 몬타냐 설악산점

by Julie

모처럼 하루가 통으로 비는 날.

봄부터 가고 싶었던 설악산의 날이다. 전날부터 어딜 갈까 도시락은 뭐로 할까 신나게 생각을 했다.


일단, 7번(또는 7-1번) 버스를 타고 소공원까지 가는 거야. 거기서 만만하게 갈만한 코스는 세 군데다.


1. 비룡폭포(체력이 되면 토왕성 폭포 전망대까지)

2. 비선대(체력이 되면 금강굴)

3. 흔들바위(울산바위는 무리지)

일찍 나가는 거야 한 9시? 그럼 도시락은 몇 시에 싸야 하나. 가만있어봐 1+1 해서 사둔 유부초밥이 있지?

내려오면 땀날 거 아니야 너무 덥지. 그럴 땐 시립도서관에 붙어있는 수영장이 딱이지. 저렴하고 오랜만에 물에 몸도 좀 담가볼까? 거기서 씻고 나오면 딱이네~ 내친김에 속초 해수욕장도 갈까? 수영복 입은 채로?


여기까지 떠올렸을 때 문득, ‘근데 수영장 하겠지?’ 생각이 들어 찾아봤다. 지난달 말에 문자가 왔었네. 에이~ 어쩐지 뭔가 찜찜하더라.


그렇게 수영장은 취소, 자동으로 혼자 가기는 번거로운 해수욕장도 취소. 그냥 설악산만 가자. 그런데 왜 자꾸 눕고 싶지?


빨래 널고, 설거지하고, 두부 유부초밥이랑 산에 가서 먹을 간식거리 좀 챙기고 나니 어이어이 시간이 이게 맞아? 아휴, 일단 버스나 타자.


그렇게 소공원 대불상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오후 1시 42분. 새벽 산행을 마친 사람이 하산할 시간이다. 애매하다. 올라가 말어? 그보다 올해 처음 온 건데 안 힘들려나? 생각하며 신흥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 온 사이에 신흥사 앞 카페로 이어지는 다리 ’비선교‘가 새 느낌이 나는 게 바뀐 것 같다. 가슴을 내밀고 있는 미니 해치가 귀엽다.

신흥사 올라가는 언덕 아래 두 갈래 갈림길이 나오면 경로를 정해야 한다. 비선대 가는 왼쪽 길인가, 흔들바위로 향하는 오른쪽인가.

흔들바위를 갈 생각으로 나왔기에 신흥사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신흥사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흔들바위가 나오고, 거기서 더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쯤 오르면 울산바위다.


비선교에서 신흥사로 가는 길목에 아담한 한옥 찻집이 있다. 처음 생길 땐 로스터리 카페였는데, 주인이 바뀌었는지 지금은 전통차나 팥빵 등을 파는 찻집느낌으로 변했다. 바뀌기 전에 두어 번 가본 적 있는데, 비 오는 날 처마 아래로 펼쳐지는 설악산 풍경이 정말 멋지다. 신흥사 스님들도 가끔 손님으로 오신다.


카페에서 신흥사 쪽으로 꺾어지는 언덕 초입, 이곳에 엿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내가 10살쯤, 동생이 7살쯤일 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설악산에 놀러 왔었다. 나무막대에 돌돌 말린 끈적한 엿을 하나씩 사주셔서 먹었는데, 그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다.


기억 속 할머니는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쪽진 흰머리를 하고 계셨다. 큰 대야를 하나 앞에 두고, 사진 속 그 자리에 앉아서 엿을 파셨다. 지금은 모두 철거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비선대 가까운 곳에도, 흔들바위에도 감자전, 비빔밥, 컵라면 등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비선대 휴게소, 비룡폭포 휴게소 뭐 이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건네주신 엿은 조청 같은 진한 갈색에, 막대기에 붙어있을 정도로 끈끈했지만, 이에도 잘 달라붙었다. 한창 이가 빠질 때라, 조심해서 핥아먹었다. 지금은 카카오 70% 함유 다크 초콜릿 같은 걸 찾아 먹지만, 그땐 그 달콤함이 최고였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신흥사 쪽으로 올라갔다. 외국인들이 신흥사 입구의 사대천왕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신흥사 안쪽을 거쳐 가는 길도 있지만, 그대로 지나쳐 걷는다.


가다 보면 다리를 건너기 전에 ‘울산바위 전설’이 그려진 담장이 있다. 재미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길.

날은 산에 가기 딱 좋게 흐리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며 저마다 다른 나무들의 초록빛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올라가는 사람은 나 혼자,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내려가는 중이다. 슬슬 불안해진다. 너무 늦었나?


안양암을 지나 좋아하는 굴참나무가 있는 곳까지 와서 일단 앉았다. 이렇게 초반부터 쉬면 속도가 안 난다. 오늘은 텄다.

오랜만에 굴참나무를 만져봤다. 와인 코르크마개 재질로도 쓰는, 폭신폭신한 느낌이 드는 겉껍질이 있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이 겉껍질로 집 지붕을 올린 전통가옥이 있다고 본 기억이 있다. 역시 산에 있는 나무라 올려다보니 한참 위까지 솟아있었다.


굴참나무 근처 벤치에서 쉬다가 천천히 다시 내려왔다. 다시 비선교 쪽으로 와서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까마귀가 자리를 피하면 끝까지 따라가서 깍깍하는 것이 부부가 틀림없다

까마귀를 찍고 다리를 마저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카메라를 목에 건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잠깐만, 다리를 찍는 중년의 사진가?

큰일이다. 이제 온 세상 카메라 든 아저씨가 로버트 킨케이드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가줘요 로버트 킨케이드 씨!

(참고/ 지난 글: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보고 온 날)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전,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들렀다.

강릉의 <라 몬타냐>라는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았는데, 올해 설악산점이 생겼다고 해서 기대 중이었다. 본점은 화덕피자, 파스타, 커피를 팔고, 설악산점은 화덕피자와 커피만 판다. 케이블카 타는 곳 근처에 있다.


환경보호를 위해 산속에 있던 음식점들을 모두 철거하고, 지금은 소공원에만 가게들이 모여있다. 한 때 롯데리아가 있었던 적도 있다. 식당에선 막걸리에 감자전, 비빔밥을 팔고, 아무래도 관광지 느낌이 강한 가게들이 많아서 잘 가게는 안 됐었다.


<라 몬타냐 설악산점>이 있는 설악산 소공원은, 버스에서 내려 입구로 들어서면 펼쳐지는 평지구간이다. 여기까지는 길이 편해서 유아차나 휠체어로 다니기 좋은데, 풍경도 깊은 산속 못지않게 멋지다. 한옥 느낌의 카페 뒤편으로 케이블카가 다니는 권금성이 있다. 웅장하다.

카페 이름도 ‘La Montagna'라니! 이탈리아어로 ‘산’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생길 운명이었던 거다.

권금성 쪽이 보이는 창가자리가 인기 있는지 거의 차 있어서, 사람 없는 소파 자리에 앉았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이쪽 자리도 멋질 것 같다.

40분쯤 뒤에 오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여기 앉아있다가 버스 출발 시간 10분 전쯤 걸어 나가면 되겠지.


올해 처음 찾은 설악산. 한 때는 매주 산에 다니던 때도 있었다. 오늘처럼 그냥 왔다가 돌아가고, 또 조금 더 걸어보고, 그러다 울산바위까지도 가고. 마음이 답답할 때여서 그렇게 다닌 시간이 좋았던 거지, 꼭 높은 곳까지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설악산은 아빠의 동네다. 설악산 아래 설악동, 그중에서도 벼락바위라는 곳이 아빠의 고향이다.


대청봉 산장에 동네 형 누가 일한다던지, 예전에 봉정암 지을 때 기왓장을 짊어지고 옮기는 일을 했었다던지, 동네 사람들이 벽돌을 옮겨가며 설악동 성당을 지었다던지 하는 이야기들은 내 마음 서랍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나뿐인 LP가 걸려있는 플레이어를 통해. 아빠가 그토록 지겹게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잘 몰랐을 때의 일들이다.


아빠가 떠나고 설악산 동네와 나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다. 대신 나 혼자 산을 다니며 새롭게 친해졌다

버스 실시간 위치를 보려고 와이파이를 켰다. 감격스럽다 산속에서 와이파이가 된다니! 다음에 오면 화덕피자도 먹어봐야지. 다른 사람이 주문하는 걸 들었는데, 도우가 얇아서 1인 1 피자가 가능하다고.

얼마 전부터 속초 버스 실시간 위치를 알 수 있는 사이트가 생겼다. 속초에 다니는 버스라도 고성군 관할 1번, 1-1번 버스나, 양양군 관할 9번, 9-1번은 보이지 않는다.

타려는 버스가 어디까지 왔나 보고 나갈 시간을 가늠해 봤다. 3:36에 설악산 소공원 종점에서 출발하는 7-1번 버스가 오고 있다. 슬슬 나가볼까?


주의)
15분 일찍 출발할 것!


3:29에 출발해서 3:32에 설악산 입구 정문까지 왔다. 멀리 정거장에 버스가 와있길래 뛰었다. 3:34에 탑승했는데 원래 3:36에 출발할 버스가 1분 전에 츨발했다. 생각보다 버스 정거장까지 거리가 있으니, 여유 있게 15분 일찍 출발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설악산 소공원 카페 <라몬타냐>에서
속초 시내 가는 버스 정보


실시간 버스 위치는 여기서


7번, 7-1번 버스 시간표(설악산 출발 시간 확인)

출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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