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역삼 카페
아침 7시 반.
하지가 지났지만 여전히 해는 5시 조금 넘으면 뜬다. 동명항 앞바다에 구름 뒤에 숨은 태양빛이 잔잔히 일렁이는 시간, 부지런히 걸어 속초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서울에 가는 길이다. 아주 오랜만에 혼자서.
오징어난전을 지나는데 벌써부터 천막 아래 손님들이 오징어회를 먹고 있다. 어우 나는 이 시간에 빵도 잘 안 들어가던데. 일찍 열고 해 질 때 닫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아침 7시 무렵에도 영업을 하는구나. 요즘 너무 더워서 차라리 이 시간이 조금 시원할지도 모르겠다.
영업은 저녁 6시 50분까지. 가을이 오면 해가 짧아져서 캄캄해질 무렵인데, 그 시간에는 휴대폰 조명에 의지해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가게가 아니라 천막이긴 해도 냉장고, 수족관의 산소통 다 있는데, 전등만 없다. 어치피 일찍 닫으니까 등을 안 만들었나 보다.
오징어난전 건너편 수복탑을 지났다. 걸어서 3분~5분이면 터미널이다. 속초에서 출발하는 프리미엄 버스 첫차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내렸다. 아침부터 터미널에 사람이 많았다.
서울에 도착했음을 느낄 때는, 한강 다리 건너 저편에 키 큰 테크노마트 건물이 보일 때다. 승용차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보니, 다리로 진입하며 오른쪽으로 꺾일 때 아슬아슬한 마음도 든다. 지난번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던 한강 위로 까치 몇 마리가 날아들었다.
30분 만에 역삼역에 도착했다. 가려던 곳은 강남역인데, 2호선을 타고 오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저번에 이쪽 숙소에 묵을 일이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산책했던 기억이 났다. 가벼운 차림으로 한들한들 걸어 나왔는데, 거리엔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흐름이 너울댔다. 엉겁결에 근처에 보이는 블루보틀 커피에 들어가, 나는 모르는 타인의 일상을 한참 구경하다 왔다. 그냥, 그 생각이 나서 그 주변으로 쓱 지나가나 볼까 생각했다.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대로 양쪽으로 늘어선 빌딩들과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멋진 도로를 걸었다. 너무 두리번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걸었다. 그 길 위의 모든 사람은 갈 길이 비빠보였다.
얼마쯤 걷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야쿠르트 아줌마. 낯선 길 위에서 익숙한 존재를 만나니 마음이 놓인다. 새로 나온 윌을 사 먹었다. 동전지갑에 남은 오백 원짜리를 탈탈 터니까 윌 하나 값이 나왔다.(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야쿠르트에서 나온 반려견용 음료 이름은 ‘왈’이다)
그리고 들어선 이곳.
강남 N타워라는 빌딩 1층에 있는데, 대로변이라 걷다가 파란색 물병 로고가 보이면 쓱 들어가면 된다. 위로는 사무실이 모여있고, 1층과 지하는 식당가. 좀 앉아있으니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이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와이파이도 빌딩 공용 와이파이를 쓴다. 저번 산책길에는 창가에 앉았었는데, 해가 뜨거워서 앉기 어려웠다. 빌딩 로비 쪽 창가에 앉았다.
배달기사들이 수시로 오가고, 이곳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모두가 분주하고 바빠 보인다.
사진첩을 보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바다 사진들이 멀게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찍은 텅 빈 하늘, 바다, 화암사 가는 길 숲 풍경. 빌딩숲 안에서 보니 멀구나 여기와 다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었던 거구나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니는 동안 눈 둘 여유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로 광고가 보이고, 지하철을 타면 가까이 있는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려 핸드폰이라도 봐야 한다.
심지어 버스 천장에도 광고용 모니터가 2개나 붙어있었는데, ‘여러분 가끔은 핸드폰 말고 하늘도 좀 보세요’ 같은 문구가 나오길래 살짝 감동하다가, 그게 맥콜 광고라는 걸 알고 실망했다.
블루보틀에선 주문할 때 이름을 쓰게 하고, 음료가 나오면 불러준다. 두근두근하면서 모니터에 내 이름을 썼는데, 바로 앞이라 그런지 가져다주셨다.
다른 공간, 다른 공기, 다른 사람들 속에서 얼마간은 이방인이 된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더위를 식히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원래 목적지는 강남역 5번 출구와 가까운 콩국집이었다. 대구식 콩국 체인점이 여기 있다고 해서, 저번에 부산 부전시장 근처에서 사 먹은 노점 콩국과 어떻게 다른가 먹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작은 가게에 이미 근처 회사원들이 점심 식사 중이어서, 아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 궁금했던 샌드위치를 먹어봐서 만족!
리나스라는 샌드위치, 샐러드 체인점인데 알고 보니 spc 계열이었다. 평소에 즐겨 듣는 SBS 라디오 <박하선의 씨네타운>에서 예술의 전당 리나스가 맛있다고 들어서 꼭 한번 먹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맛있고, 비싸기도 비싸다. 자리가 3 테이블뿐이라 그중 하나에 앉았는데, 주변 직장인들이 계속 와서 포장해 갔다. 대부분은 여성들. 남성 직장인은 와서 보기만 하고 다시 나갔다. 아무래도 이 돈이면 다른 메뉴 생각도 나겠지.
그나저나 서울은 어쩐 일로 간 거였냐면,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수요일 낮공연을 보러 갔다. 뮤지컬 가격이 요즘 진짜 비싸졌는데, 수요일 3시에 하는 공연은 ‘마티네’라고 부르면서 할인을 해준다.(하지만 15% 할인가에 예약하고 며칠 있다가 굿바이 할인 30%가 생김. 이런...)
저저번 글에 모모스 온천장 본점 갔던 일을 썼는데,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와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었다. 그때도 마티네.
이때 뮤지컬을 보기까지 내 안에 쌓인 빌드업들이 있었다. 자주 듣는 라디오에 계속 "너와 나 단 한 번의 순간“하는 광고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라디오 게스트로 그 뮤지컬에 출연하는 최재림 배우가 나왔다.
이야기 자체에 호기심이 생겨서 검색해 봤더니, 메릴 스트립 주연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자 주연) 작 영화가 있네? 지니티브이로 결제하고 봤는데, 엄마가 반해버렸다. 그렇게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다보고 여행길에 뮤지컬까지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원래 뮤지컬을 사랑하는 나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원작 소설과 집중해서 보지 못한 영화를 뒤에 남겨둔 채, 그만 뮤지컬에 저격을 당해버리고 만 것이다.
설거지할 때도, 씻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뒤에 누군가 있는지 확인한 뒤에) “기나긴 시간을 건너”하고 혼자 뮤지컬 넘버(노래)를 흥얼거렸다. 로버트 킨케이드를 따라갈까 말까 자동차 손잡이를 잡고 갈등하던 영화 속 프란체스카처럼 고민하다 그냥 고! 를 외쳤고, 두 번째 관람을 하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차지연 배우가 두 번 다 ‘프란체스카’ 역할이었고, 사진작가 ’ 로버트 킨케이드‘를 처음엔 최재림 배우, 이번에 봤을 땐 박은태 배우가 맡았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 속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배우 자신이 가진 성정과 매력이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는 걸 다시 느꼈다.
가족이 축제에서 돌아오고, 로버트를 따라가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놓인 프란체스카가 주방에서 ‘로버트-’하며 탄식에 찬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있다. 너무나 그리워서 저절로 나오는 이름이다.
그 마음처럼,
로버트 최재림 씨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저의 7월은 온통 '단 한 번의 순간‘ 그리고 ’ 내게 남은 건 그대‘ 뿐이랍니다.
덧붙이는 글)
1992년에 발표된 미국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남자 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 역할을 맡고, 메릴 스트립이 여자 주인공 ‘프란체스카’ 역할을 연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25년 7월 13일에 끝나는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번에 세 번째로 공연되는 작품.
꿈 많은 이탈리아 소녀가 전쟁을 피해 미군 남편을 따라, 미국의 시골마을 아이오와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주부로 살며 중년에 접어들었다.
그러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일생에 처음 진정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사진작가를 우연히 만나, 단 나흘간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죽을 때까지 서로를 잊지 못했던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놓았지만, 결국은 불륜이 아니냐는 평가도 듣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