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 미 Jul 18. 2019

넌 좋은 사람이야

너와 내가 친구라고 자랑하고 싶었나 봐 




    나이가 하나 둘 먹어가면서 발길 닿는 공간이 줄어든다. 집이 더 좋을 때가 많고 누구든 만나면 즐거워하던 마음의 크기가 작아졌다는 걸 느낀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만큼 상처 받는 너가 걱정이라던 친구의 손편지가 무색하게 타인을 견디는 일보다 지금은 나를 견디는 일이 더 어렵다. 좋은 사람과 함께면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게 싫었던 탓인지 내 기준의 다른 좋은 사람을 불렀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면 나도 좀 좋아질 거라는 착각이었을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는 일이 즐거울 때가 있었다. 그마저도 나에게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발 닿는 공간이 줄고 만나는 사람이 적어져서 지금은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난 아직도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를 소개하고 있었다.


새로 사귀게 된 친구든 누구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세심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사실 세심한 게 아니라 그저 관찰이 좋다. 누군가의 관심사, 취향, 생각이라는 것이 어쩜 이리 다를 수 있는지를 경험하는 일은 나를 풍성하게 만든다. 또한 우린 그런 만남들 사이에서 비슷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면 크게 기뻐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참 진귀한 경험이다. 내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누구나 특별하고 누구든 자신의 모습, 자신의 것이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아는 누군가와 누군가에게서 설명하기 어렵지만 비슷하게 느끼는 향과 온도가 있다. 그 순간 서로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진다. 촉, 느낌, 온도, 향과 같이 글로 표현해 내기 어려운, 오감이 바짝 서서 느낀 무엇이라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렇게 만나게 된 몇몇은 연애 중이다. 그들 중 결혼한 커플도 있다. 내가 아는 ‘누구'와 내가 아는 ‘아무개’가 만나는 상황은 맞다. 결론은 주선자이기도 하면서 보증인이기도 한 사람이 된다. 


    사람을 소개하는 일은 신중해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몇 차례 주선자가 되어 보니 친구가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드는,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 벌어진다. 지금처럼 연애를 하고 있거나 결혼을 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던 간에 연인이었던 관계는 보통 주선자였던 친구인 나로 인해 서로가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져 헤어짐을 겪는 동안 연락이 뜸해진다. 그렇게 뜸해진 연락은 결국 나와의 사이마저 어색하게 만들고 말더라.  왠지 나도 모르게 그, 혹은 그녀의 실연에 한몫을 더한 것 같아 생채기가 생기고 만다. 








    몇몇 사람을 지그시 오래 만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새로운 사람을 늘려가며 만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만나고 친구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흡사 여행과도 같아서 종종 떠나지 못하는 날에는 누군가든 만나러 가길 좋아한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그 온도가 다르지만, 예전에 비해 나는 요즘 누굴 만나러 가는 길, 대부분의 온도가 뜨겁다. 약속된 시간보다 서너 시간 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만약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설렘과 행복은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러 가려는 과정에서만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계획할 때 여느 때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여행지를 향해 가는 길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즐거울 거라는 무한한 긍정과 같다. 하지만 여행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겪거나 도착하자마자 밀려오는 피곤을 느끼게 되는 바와 다르지 않게, 모든 만남이 기대만큼 유쾌하거나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에 조금 게을러졌을 뿐 놓지 못하는 이유는 만나는 사람으로 인해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측 불허함과 호기심 덕분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 아직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 적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분명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얼마 전 10여 년간 알고 지낸 술친구인 A에게 연락이 왔다. 연인과 1주년 되는 기념으로 만났던 펍에 가기로 했으니 나도 오라는 것이었다. 심신이 지쳐 있던 상태라 사실 그 자리에서 축하해 줄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다 약속시간보다 한참이나 뒤에 자리에 갔다. 그녀와는 A보다 먼저 알고 있던 사이지만 특별히 둘이 깊게 오랜 시간을 보낸 사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물론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이 나로 인한 것은 맞지만 내가 더 고마웠다. 한 해의 사계절을 함께 추억하고 나눌 만큼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되려 내게 기쁨이었다. 이왕 이럴 거였으면 쓸데없는 고민 따위는 집어치우고 일찍 나와 함께 자리를 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자리였다. 진심으로 그들이 오래 아름다운 사랑을 해주길 빌었다. 


    나도 종종 만남의 자리에 초대받기도 한다. 서로 만나면 좋을 것 같다는 추천사를 듣거나 우연한 자리에서 지인들이 그동안 이야기해왔던 인물이 나타나는 경우다. 얼마 전 한 자리를 통해 그녀를 만났다. 추천사를 던지는 부부와 함께 하던 자리에 말로만 듣던 그녀가 나타난 거다. 동갑내기인 그녀는 이틀 동안 끝도 없는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여럿이 함께인 자리라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긴 어려웠지만 이미 나를 제외한 그들의 세월이 십여 년이라 시시껄렁한 말에도 애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틀 만에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건 그나큰 오만이란 걸 아는 나여도, 그녀의 닫힌 마음 한 켠에 작은 틈이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웃고 떠들고 있지만 얼굴에 스민 외로움의 흔적이 아른거렸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오감이 던지는 느낌으로, 말로 설명 안 되는 무엇 때문에 나의 오지랖이 또 발동되겠거니 싶었다. 그때의 나는 깊은 속앓이를 하던 중이어서 낯부끄럽게도 나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다른 사람과의 자리를 만들고 말았다. 참 우습게도 합석한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함께 하는 자리에 익숙한 듯 보였고, 나쁜 마음이었다고 생각하는 나만 그 자리를 딴 세상에서 지켜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섞이지 않고 있는, 이제야 그런 느낌이라도 받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벌 서는 상황이었음을.

충동적이고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는 늘 이렇게 실수를 반복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오감 따위를 믿음의 근거로 두고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게 된 사람,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서로와 서로를 만나게 하는 일이 전적으로 ‘나’를 기준으로 한 이기심이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딱 잘라 말해 그건 오만이다.


정말 촉이 좋아서, 그래도 그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지켜봐 온 모습이 있어서 서로가 연인이 되기도 하고 결혼한 인연도 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친구가 된 사이도 있지만 그건 촉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말 딱 그만큼 운이 좋았을 뿐이다. 

부부를 통해 만난 그녀와 그들과 쉽게 하루 사이에도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건 그들이 가진 매력도 있지만 결코 주선자 역할을 한 부부를 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 부부가 보증한 관계라는 점 때문에 일정 정도의 위험 요소가 걸러진 상태로 받아들인다. 나를 통해 만난 ‘서로’도 그러한 부분이 있겠지 라고 새삼 생각해보니 어려운 일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했구나 싶다. 






그러나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넌 좋은 사람이야’라고. 

왠지 내가 어떤 말로 설명해도 너는 못 알아들을지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넌 좋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어쩌면 동네에서 사귄 멋진 친구를 놀이터 한복판에 서서 ‘내가 이 녀석 친구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여서 멋진 누구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가 보다. 

아, 그렇구나. 결국 자랑하고 싶었던 거였어. 너가 좋은 사람인 것과 그 좋은 사람과 친구인 사람이 나라고.  



나는 너에게 자랑할 만한 사람인걸까.





이전 03화 멘토가 행운이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