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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Sep 02. 2019

동동 떠있는 계절

여름아 제발 가라, 가을 좀 길게 보자.





내 기억은 두 살부터 서울 근교 도시에 살았지만 알고 보니 더 갓난아이 때는 서울에 살았더라. 서울이든 서울 근교에 살았든 간에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나의 여름방학은 늘 시골집이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멀미를 하다 잠을 청하고 휴게소 한 두 번 간 뒤 내리면 고모할머니와 삼촌들이 반겼다. 좁은 골목 어귀쯤 들어서면 솔솔 풍기던 한약재 냄새가 이제 곧 고모할아버지 집에 도착한다는 신호였다. 

1층에서 한약재를 다듬고 있는 고모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가파른 계단을 후다닥 올라가면 고모할머니와 고모와 삼촌들이 있었다. 

늘 너무 더운 여름날이었다. 삼촌들과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고 집 앞 개천에 나갔다. 각종 물에 사는 곤충들과 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나면 밥때가 되었고 축축이 젖은 채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다음 날 때쯤 되면 인근 지역에 사는 작은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차만 타면 졸던 나는 시골집 들어서는 입구 길 첫 집부터 인사를 한다. 

태복이 딸이가, 많이 컸네. 

태복이는 아빠가 시골집에서 태어날 때 탯줄을 몸에 둘둘 감고 태어났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아빠의 본명보다 나는 태복이가 더 좋다. 그렇게 한 집, 두 집 인사를 하고 거의 맨 끝에 있는 작은할아버지 집에 도착하면 이미 너무 덥다.

그러면 다시 근처 개천으로 나간다. 수영을 배운 적 없지만 그냥 팔다리를 휘젓는다. 

작은할아버지 집 앞에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넓고 좋아보지만 실제로 너무 깊고 귀신이 많다고 하도 삼촌들이 이야기하는 바람에 엄두를 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방학을 보내던 중, 열한 살쯤 다른 가족들과 바닷가로 놀러 간 적이 있다. 또래 친구가 있는 가족과 함께라 우리는 우리대로 바다에 몸을 넣었고 어른들은 모래사장에 앉아 술 한 잔 하고 있었다. 삼촌들이랑 놀 때는 언제나 내가 다칠까 봐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아 때로는 귀찮았는데 동갑내기 녀석은 연신 장난질이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면서 바다에 둥둥 떠서 돌다 깊게 온 파도와 녀석의 발장난으로 나는 너무 먼 곳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다리는 아무리 저어도 땅에 닿지 않았고 튜브 대신에 가지고 놀던 큰 플라스틱 원통에서 자꾸 나는 미끄러졌다.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기 위해 번쩍 올라가면 아빠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니다. 나는 잠기고 있었다. 

뒤늦게 눈치챈 아빠는 나를 구하러 왔고 나는 짠 바닷물을 다 토해내면서 백사장에 앉아 엉엉 울었다. 바다의 아득함과 공포, 물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평생 갈 줄 몰랐다. 


그때 이후로 여름은 내게 죽을 수도 있는 계절, 사계절 중 나에게서 가장 멀리 동동 떠 있는 계절이 되었다. 

물에 대한 공포는 나이가 들수록 심했다. 이상하게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이십 대가 되고 삼십 대가 되어서 더 선명하게 그 날이 떠올랐다. 여름이 시작되면 여름이 끝나기를 어느 계절에 머물 때보다 간절히 바란다. 점점 남들의 물놀이를 지켜보는 상황이 많아졌고 재미없었다. 물에 몸을 담그더라도 가슴 정도까지만 닿기 시작하면 심장박동 소리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물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나는 딱 그 부분을 함께 해줄 수가 없다. 물속에서 같이 노는 일 말이다. 참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입추, 처서가 지났는데도 아직 여름이 채 가시지 않아서 조금 화가 난다. 좋아하지도 않는 계절이 길어진다는 것에 대한 화딱지다. 이제 매미소리도 얼추 들어갔는데, 잠자리가 아주 낮게 날고 있는데 왜 여름 너는 가질 않니. 

최애하는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이 서운함마저 어쩔 도리가 없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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