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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Mar 15. 2021

“나쁜 남자의 매력은 도대체 뭐야?”

C와의 꼬치에 사케

“나쁜 남자의 매력은 도대체 뭐야?
왜 많은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C는 잔을 채워주기가 무서울 정도로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침울한 표정이었다.

“나라고 그걸 알겠냐. ‘나한테만 착할 것 같다.’든가, ‘가끔 잘해주니 덜 질린다.’, 뭐 그런 거 아니겠어?”
“나쁜 남자가 뭐 좋다고… 세상 여자는 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나 봐. 게다가 나쁜 남자는 ‘착한 척’이라는 무기까지 사용한다니까. 나쁜 남자가 착한 척은 곧잘 하던데 왜 착한 남자가 나쁜 척하는 건 이렇게 어려운 거야?”
“원래 착한 척이 쉬워. 못된 척한다고 사람이 나빠 보이겠어? 그냥 머저리처럼 보일 뿐이지.”


C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의외였다. 그의 다정하고 섬세한 성격은 꽤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난감해진 나는 그저 꼬치를 먹는 데 집중하며 C의 푸념을 들었다.
“나는 왜 착한 남자일까?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면서도 그들의 나쁜 점에 때때로 상처받더라. 그러면 그 곁에 있던 바보 같은 나는 곧잘 위로해주고 상담해주고. 그렇게 실컷 다독여주고 나면, 정작 예전의 나쁜 남자에게 돌아가 버려. 나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이길 자청한 채 혼자 슬퍼지는 거야.

C는 순식간에 취한 듯 보이다가, 한 차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또 멀쩡해졌다. 친구로서 따끔하게 한 소리 하고 정신 차리게 만들고 싶었다.
“다정하고 착한 사람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을 걸? 사실 ‘착하기만 한 남자’가 매력 없고 부담스러운 거지. 착하지만 주관과 자신감이 있고 ‘센스’를 겸비한 사람이라면 인기 없기도 힘들잖아. 착한 성격을 바꾸지 않아도 다른 매력을 가꾸면 충분히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어.”
“착한 것 외의 매력이 부족한 것도 맞지만, 나는 마음 주는 데에 맺고 끊음이 확실치 못한가 봐. 이 사람이 내게 마음 없다 싶으면 나도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하는데, 힘들어하거나 부탁하는 일이 있으면 또 도움을 주고 마음도 주고 하니까.”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하다 해야겠네. 선택과 집중을 해.”

사실 ‘착하기만 한 남자’가 매력 없고 부담스러운 거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사실 마냥 나쁜 남자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 생각을 C에게 건넸다.

“네가 착하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밉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누가 나쁘거나 착하단 평가는 사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가깝잖아? 여자가 매력을 느낀다는 나쁜 남자는 ‘늘 나쁜 놈이 아니라 자길 무심히 대하고 그래서 ‘나빠 보이는 남자’가 아닐까?

“자길 건성으로 대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욕하면서도, 또 좋아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싶.”

“내 말은 이런 뜻이야. 여자 X에게 무심하고 종종 상처도 주고, 그러다 가끔 잘해주는 남자 Y가 있다 치자. Y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X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란 거지. Y가 X에게 무관심한 이유는 그가 가진 잘난 면 때문에 X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인 거고. 다른 여자 Z 앞에선 그도 마냥 착한 남자일지 몰라. 상대적이라고.”


C는 내 얘기가 길어지자 인스타그램으로 누군가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가 짝사랑하는 L이었다. C는 폰에 눈을 고정한 채 내 의견에 질문을 던졌다.

“그럼 Y와 Z가 잘 돼야 하는 거 아냐?”

“아니, Y에게 호감을 크게 느낄 사람은 아마 Z가 아닌 X일걸? Y가 X에게 ‘나쁜 남자’처럼, 무성의한 이유일 그의 잘난 면이 반대로 X에겐 그만큼 호감의 이유가 되는 거지. 남여 구분 없이 사람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 끌리잖아? 그 잘난 사람은 또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자기에겐 건성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으니, 매력적인 사람에게 '나쁜 사람' 프레임이 씌워지는 거라 생각해. ‘나쁜 여자’라는 말이 없는 이유는 그저 연애 시장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건 상대적으로 워낙 일상적인 일이니까, 세상 남자들에게 모든 여자가 처음엔 ‘나쁜 여자’이기 때문인 거고.”


C는 내 말이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주문벨을 눌러 사케 한 병을 더 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관심한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수는 없는 일이고, 누군가가 좋으면 마냥 잘해주고픈 내 태도를 바꿀 수도 없잖아? 자기 앞에선 마냥 착해지는 날 그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뭐 그렇게 말하냐. 네 매력의 기준을 세상의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세상이 너의 매력을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착하고 다정하고 섬세한 네 모습이 누군가에겐 분명 매력이 될 거고, 그렇게 네게 끌린 사람은 지금도 너를 오히려 나쁜 남자라 생각하며 혼자 가슴앓이할지 모르는 거야. 그리고 이런 푸념은 내 앞에서나 얘기하지, 밖에 나가선 안 하는 게 좋겠다. 너무 없어보여.”

어느새 안주로 주문한 꼬치를 다 먹어버렸다. 말하느라 바빴던 C 앞에 놓인 빈 꼬챙이는 두 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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