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일단 단위가 잘못된 거 아냐? 하루에 몇 번이 아니라?” “응. 일주일. 나는 남자친구한테 일주일에 한 번 연락해. 주로 주말에 연락하는데, 지난 주말엔 주중의 일과로 너무 피곤해서 이틀 내내 온종일 자 버렸어. 그래서 일요일도 다 끝날 무렵에야 겨우 카톡 몇 줄 남겼고, 그 일로 대판 싸웠지 뭐야.”
소고기, 숙주, 배추, 버섯. 괜찮아 보이는 식재료들이 냄비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냄비의 불을 조절하며 D에게 물었다. “남자친구가 이해해줘?” “아니. 너라면 일주일에 한 번 연락하는 여자친구를 이해하겠어? 나도 나를 이해하길 바라진 않아. 서로를 믿고 사랑하면 된 것이지. 나는 내 남자친구가 예상치 못할 나의 행동을 이해하기보단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사랑해주길 바라. 물론 나도 상대의 행동을 마찬가지로 대할 거고.”
“연락은 연애에서 굳건한 신뢰의 첫 단추잖아?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으면 걱정도 되고.” “나는 연인들이 도대체 왜 매일같이 연락하고 걱정하고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 못된 짓을 하고 있을지 의심돼서 보고받길 바라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매일 연락하고 사진도 보내줄 수 있어. 숙제처럼 말야. 서로의 하루가 궁금한 거라면, 잠들기 전에 그 날 겪었던 일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해서 알려줄 수 있어. 하지만 ‘걱정되어서 그런다.’거나 ‘만날 수 없으니 연락이라도 자주 하자.’는 논리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어.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것도 아니고, 정말 걱정되거나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보러 오면 된다고 생각해.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오래 걸려야 다섯 시간만 운전하면 갈 수 있잖아? 새벽 다섯시에라도 남친이 내가 보고 싶다며 찾아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뛰어나가 맞아줄 거야.”
나는 연인들이 도대체 왜 매일같이 연락하고 걱정하고 하는지 모르겠어.
나베의 국물이 한소끔 끓어오르기에, 나는 버너의 불을 줄이며 D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하지만 그런 목적도 아니라면, ‘연락’이라는 형태의 감정 교류가 어느 정도 성숙한 연애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거지? 괜한 감정 소모만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애초에 연락 며칠 안 온다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면, 본인에게도 문제 있는 거 아냐? 나는 남자친구와 실제로 만날 때 그 누구보다 서로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해. 왜 몸은 저 멀리 있어서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면서, 자기 마음 좀 편하자고 연락이란 굴레로 날 구속하려는지 모르겠어.”
“누나는 남자친구가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아도 궁금하거나 걱정되지 않아?” “나는 내 남자친구를 무조건 신뢰해.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아도 이 사람은 나만을 사랑하는 하루들을 보냈을 거고, 나와 만날 주말을 고대하며 즐거워했을 거란 믿음을 의심하지 않아. 행여나 그렇지 않고 바람을 피운다면, 그 역시도 내가 연락을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그럴 놈이었기 때문이지. 내 잘못이 아니니까 시원하게 욕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이별마저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
밀푀유 나베의 국물을 한 숟갈 맛보았다. 분명 좋은 재료들이 잔뜩 들어있는 요리인데도 맛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뭔가 이해할 순 있지만 공감할 순 없는 말이네. 미안해.” “전혀. 나의 이러한 연애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단 것만 해도, 너 역시 독특한 사람이란 뜻이야. 사실 내가 처한 환경 자체가 기형적 연애관을 키우는 것 같기도 해. 비정상적인 성비, 좁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이공계 사회, 외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학원이라는 생태계 등등은 나로 하여금 연애에 많은 시간을 들이긴 어렵다고 결론짓게 해.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내 마음을 불성실하게 투자하고 싶은 건 아냐. 만나고 연애하는 순간에는 내 온 감정을 쏟아 넣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는 평소에는 시간을 굳이 들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연애. 그런 이상적인 관계를 꿈꾼다면 아직 철이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