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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17. 2021

“천만 원을 받을래? 아니면 더 잘생겨질래?”

A와의 수제버거에 맥주

“너는 지금 천만 원을 받고 싶어, 아니면 그 값어치만큼 더 잘생겨지고 싶어?”



A와 밥을 먹으면 어쩔 수 없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어도 술을 꼭 곁들인다. 술과 함께하면 A는 늘 이런 식의 질문을 해온다.
“글쎄, 나는 천만 원을 받을래. 카드 할부가 꽤 쌓였거든.”
“대부분 그렇게 답하더라고.”
내 대답을 들은 A는 조금 격양되어 보였다. 패티를 칼질하는 A의 접시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칼끝에 눈을 고정한 채로 A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더 잘생겨지고 싶어. 물론 돈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관리를 받든 성형을 하든 멋있어질 수 있겠지만, 나이 먹고는 잘생겨서 무슨 소용이야? 잘생긴 외모는 20대라는 젊음과 함께 공존할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능력인 거지.”
“하긴,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 외모가 관계에 주는 영향은 점차 줄어들겠지.”
“겨우 영향이 줄어드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걸. 외모의 가치는 20대 시절에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가도, 30대가 되면 확 시들어버린다고.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능력의 가치는 그 사람의 나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는데, 각각의 능력이 꽃피는 순간은 그 사람의 나이와 적절하게 맞물려야만 비로소 큰 힘을 가져. 예를 들어 외모는 20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니까, 10대엔 여드름 피부에 살찐 몸매였더라도 십 년 후 환골탈태하면 과거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고 인기가 엄청 좋아지잖아? 능력과 시기가 잘 맞아떨어지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오고 친해지려 할걸.”

나이 먹고는 잘생겨서 무슨 소용이야?


“시기에 맞는 능력은 뭐가 있는데?”
A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인생을 10년 단위로 나눈다면, 각각의 기간마다 가장 높은 가치의 능력은 일반적으로 이렇겠지. 10대에는 지력, 20대에는 외모, 30대에는 직업, 40대에는 재력, 50대에는 인맥, 60대에는 자식, 70대에는 건강. 예를 들어 스무 살에는 잘 생기기만 해도 사람들이 말 한 번 더 걸어주고, 쉰 살에는 좋은 인맥을 알면 줄 한번 서 보려고 사람들이 말을 붙인다고.”
“그럴싸한 말이네.”

“나는 사실 30대 이후론 이런 능력들을 시기에 맞게 잘 갖출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해. K대를 박사로 졸업하고 좋은 직업을 구하면 그 후는 일사천리겠지. 문제는 그 이전인데, 나는 20대라는 지금 이 시기와 잘 맞물릴 수준의 외모를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해. 내 외모의 객관적 수치에 속상한 것 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청춘을 그저 그런 외모를 가진 채로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매 순간이 갑갑한 거야. 속된 말로 공부는 서른 살에도 할 수 있지만, 길 가는 이성에게 번호를 물어보는 일은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잖아? 나이가 들고 성공한 삶을 살더라도, 내 20대를 되돌아보면 그 때만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하지 못하며 이렇게 낭비한 시간이 씁쓸하게 느껴질 것 같아.


“왜 그래 인마. 너 정도면 잘 생겼지.”
“길 가다 되돌아볼 정도의 외모는 아니잖아? 나는 그 정도를 얘기하는 거야.”
“너는 인생의 모든 순간 항상 빛나는 사람이길 바라는 거야?”
“당연하지. 그렇지 않은 나머지 순간들은 다 죽어가는 시간인 거잖아?”
A의 마지막 말에 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줘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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