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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08. 2021

돈가스집 아저씨처럼 살고 싶어

혼자서 점심을 먹다가, 꿈을 좇는 삶에 대해 고민했다.

오늘은 학교 근처 돈가스 전문점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가끔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이 식당에 오곤 하는데, 이 곳의 묘한 매력은 계피 맛이 나는 돈가스 소스보다도 가게 특유의 분위기인 것 같다.


답답함이 느껴질 만큼 좁 않지만 부담될 만큼 크지도 않은 크기의 공간, 창이 나 있는 덕에 내가 주문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주방, 그 곳에서 여유롭지만 정갈한 손놀림으로 요리하는 40대 후반 정도의 아저씨 한 분. 혼자 밥을 먹을 때 가장 위축되지 않을 분위기 아닐까.


주문한 음식을 요리하시는 아저씨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그 과정에서 경험이나 연륜이 느껴진다. 불필요한 동선이나 칼질 없이 저렇게 효율적으로 요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덕에 요리하는 아저씨의 모습에선 자신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완성된 음식을 가져다 주실 때나 계산할 때에는 옅게 웃어 주시는데, 그런 미소를 보면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시는 것 같아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저렇게 정갈하고 효율적으로 요리하기 위해선, 그동안 많은 경험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많이 변했다. 굶는 것보다 싫어하던 혼자 먹는 밥이 사실은 꽤 먹을만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문에 있어서는 학점보다 지식의 획득이 중요하다 생각지만, 대학원을 입학할 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성적표 위 숫자 세 자리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입학 초창기의 나는 큰 꿈을 꾸며, 심지 굳은 이상으로 하늘을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보다 사회의 통념을 더 따르려 노력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억눌린 채 내 앞길도 보기 어려워졌다. 학부생 때 ‘나는 내 능력을 믿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라고 내게 되뇌었던 횟수보다 더 많이, 요즘은 ‘나는 특별하고 내 미래는 다를 거라고 착각하지 말자, 제발.’ 하며 나를 다그치곤 한다.


기대 받는 삶, 기대하는 미래가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 같다. 기대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바탕으로 미래를 책정하기에, 그 기대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요즘 들어 돈가스 전문점의 아저씨 같은 삶이 참 좋고 안락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신이 만든 요리가 맛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작고 단발적인 기대만을 반복하며 사는 삶. 손님이 요리를 먹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주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기대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삶.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도 없지만 더 나빠지리라는 걱정도 없는 생활. 이러한 삶이 누군가의 눈에는 비루해 보일지라도, 나는 이러한 인생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서의 내 모습을 매일같이 걱정하는 삶, 다른 사람들의 과한 기대에 억눌려 이들만을 매일 만족시켜 나가는 하루살이 삶. 이것이 요즘의 내 대학원 생활이고, 많은 대학원생들 역시 그리 살 것이다.

기대 받는 삶, 기대하는 미래가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 같다.


반면 돈가스집 사장님은 얼마나 평온한 생활인가. 허상에서 비롯된 거짓 기대를 단념하고 현실의 흐름에 함께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말할 수 없으며, 문제될 것도 없다. 오히려 이성의 궁극을 추구하는 척 하는 대학원 과정보다 훨씬 이성적인 판단을 이룬 삶이 아닐까? 손님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그들의 힘든 삶을 동정할 여유는 있지만, 적당히 바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무던히 막을 수 있는 삶. 인생을 지속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나쁜 삶이라 감히 말할 수 없다.


학부 졸업식 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올해 K대에서 졸업하는 학부생의 수보다 석∙박사의 수가 더 많더라’ 고. 매 해 한 학교에서만 해도 이렇게 많은 박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젊음을 10년 이상 바쳐가며 박사를 딴다 한들 세상이 보는 내 가치가 높아질 것 같지 않다는 취지의 말씀이셨다. 학부생 때의 나는 '대학원 과정'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꿈을 쫓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한 대학원 생활은 하루하루 '어떻게 처세하면 더 현실에 완벽히 순응하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적어도 부응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소모적인 삶이었다. '돈가스집 아저씨'를 업으로 한다고 인생의 꿈이 없는 삶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대에 의한 헛된 억눌림의 무게를 포함하여 인생의 목표추를 저울질해 보았을 때, 무엇이 더 기대되는 삶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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