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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27. 2021

그것이 알고싶다와 패스트 힐링 푸드

외로워 허기진 마음을 채워 넣는 방법

가끔 그런 때가 있다.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가슴이 텅 비어버린 듯한 날. 그런 날에는 해야 할 일마저도 다 내팽개치고 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있다. 바로 방 안에 틀어박혀 패스트푸드를 잔뜩 먹으며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일.


나만의 의식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패스트푸드가 필요하다. 햄버거가 꼭 두 개일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패티는 두 장 이상인 것이 좋다. 한 입 베어 물면 여러 겹의 패티에서 육즙이 줄줄 흘러나오는 종류라면 최고. 감자튀김과 콜라는 늘 부족하니 라지 사이즈로 시킨다. 사이드로 너겟이나 치즈스틱 같은 것도 있다면 금상첨화.


종이봉투와 포장지를 죽죽 찢어 먹기 좋게 모든 메뉴를 펼쳐놓고 나면,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해 다시 보기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다. 세상의 부조리는 왜 이리도 다양하고, 억울하며 안타까운 사연의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들의 한과 서러움에 공감하며 느릿느릿 햄버거를 먹는다. 평소라면 티슈로 닦아냈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손을 따라 흐르는 소스나 기름도 입으로 쪽쪽 빨아가며 다 뱃속에 채워 넣는다.


나만 삶에 아파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는 왜 이리도 다양하고, 억울하며 안타까운 사연의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버거킹 햄버거 두 개를 사이드 메뉴까지 다 먹어 치우고도 또 배가 고파서, 맥도날드에 다시 햄버거 두 개를 더 주문해 먹은 적도 있다. 그렇게 먹고 있으면 내 포만감 중추가 고장 난 것이 아닌가 두려워질 정도이다. 그런 두려움과 함께 내 몸과 시간을 엉망진창으로 망쳐버리고 있다는 배덕감은 큰 쾌감을 준다. 열심히 일정을 관리하고 몸을 가꾸는 것 보다, 그를 뭉그러트릴 때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기분 좋음이 나를 치유한다. 두려움과 배덕감 그리고 토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할 정도의 포만감이 뒤섞인 채로 침대에 드러누워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자면, 몽롱한 기분에 황홀함마저 느껴진다.


그리운 것이 많으면 잘 채워지지 않는 법. 또 사람은 외로움을 곧잘 허기짐으로 착각하는 동물. 그렇게 두 편이고 세 편이고, 때로는 해가 뜰 때까지 천천히 목구멍에 고기패티를 쑤셔넣어 구역질을 막아내며 시사고발 프로그램 속 사람들의 억울함을 마주한다. 음식이 위에 가득 차 더는 삼키기 버거울 정도가 될 즈음이면, 다큐멘터리 속 사람들에 대한 측은함도 함께 내 안에 가득해져 눈물이 주룩 흐른다.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먹었던 음식을 잔뜩 토하고 나면 이유 모를 후련함이 한껏 찾아와서, 그 후로 며칠은 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와 대화하지 않아도 견뎌내며 살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대신 이제 아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이유 없이 외로워하고 슬퍼지며 원인 모를 공허함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감정의 이유를 잘 모르는 만큼이나, 나도 사람들도 자신이 무엇에 위로받는지 역시 잘 모르는 것 같다. 다행히도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은 셈. 방에 홀로 틀어박혀 패스트푸드를 잔뜩 먹고 세상의 부조리함에 엉엉 울음을 토하는 것이 나만의 치유 방식이다.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보고픈 사람, 오늘에 대한 아쉬움이나 버거운 일거리 모두로부터 잠시 도망쳐 숨는 시간. 그렇게 패스트 힐링 푸드로 나를 뚝딱뚝딱 고쳐내고 나면, 또 많은 걸 잊은 채로 열심히 살아갈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좋아하는 책 ‘그리움은 모두 북유럽에서 왔다’의 양정훈 작가님 문체를 닮도록 써 보았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로 글 쓰기 - 양정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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