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때가 있다.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가슴이 텅 비어버린 듯한 날. 그런 날에는 해야 할 일마저도 다 내팽개치고 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있다. 바로 방 안에 틀어박혀 패스트푸드를 잔뜩 먹으며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는 일.⠀
나만의 의식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패스트푸드가 필요하다. 햄버거가 꼭 두 개일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패티는 두 장 이상인 것이 좋다. 한 입 베어 물면 여러 겹의 패티에서 육즙이 줄줄 흘러나오는 종류라면 최고. 감자튀김과 콜라는 늘 부족하니 라지 사이즈로 시킨다. 사이드로 너겟이나 치즈스틱 같은 것도 있다면 금상첨화.⠀
종이봉투와 포장지를 죽죽 찢어 먹기 좋게 모든 메뉴를 펼쳐놓고 나면, 방송국 사이트에 접속해 다시 보기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다. 세상의 부조리는 왜 이리도 다양하고, 억울하며 안타까운 사연의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들의 한과 서러움에 공감하며 느릿느릿 햄버거를 먹는다. 평소라면 티슈로 닦아냈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손을 따라 흐르는 소스나 기름도 입으로 쪽쪽 빨아가며 다 뱃속에 채워 넣는다.
나만 삶에 아파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는 왜 이리도 다양하고, 억울하며 안타까운 사연의 사람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버거킹 햄버거 두 개를 사이드 메뉴까지 다 먹어 치우고도 또 배가 고파서, 맥도날드에 다시 햄버거 두 개를 더 주문해 먹은 적도 있다. 그렇게 먹고 있으면 내 포만감 중추가 고장 난 것이 아닌가 두려워질 정도이다. 그런 두려움과 함께 내 몸과 시간을 엉망진창으로 망쳐버리고 있다는 배덕감은 큰 쾌감을 준다. 열심히 일정을 관리하고 몸을 가꾸는 것 보다, 그를 뭉그러트릴 때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기분 좋음이 나를 치유한다. 두려움과 배덕감 그리고 토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할 정도의 포만감이 뒤섞인 채로 침대에 드러누워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자면, 몽롱한 기분에 황홀함마저 느껴진다.
그리운 것이 많으면 잘 채워지지 않는 법. 또 사람은 외로움을 곧잘 허기짐으로 착각하는 동물. 그렇게 두 편이고 세 편이고, 때로는 해가 뜰 때까지 천천히 목구멍에 고기패티를 쑤셔넣어 구역질을 막아내며 시사고발 프로그램 속 사람들의 억울함을 마주한다. 음식이 위에 가득 차 더는 삼키기 버거울 정도가 될 즈음이면, 다큐멘터리 속 사람들에 대한 측은함도 함께 내 안에 가득해져 눈물이 주룩 흐른다.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먹었던 음식을 잔뜩 토하고 나면 이유 모를 후련함이 한껏 찾아와서, 그 후로 며칠은 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와 대화하지 않아도 견뎌내며 살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된다.⠀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대신 이제 아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이유 없이 외로워하고 슬퍼지며 원인 모를 공허함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감정의 이유를 잘 모르는 만큼이나, 나도 사람들도 자신이 무엇에 위로받는지 역시 잘 모르는 것 같다. 다행히도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은 셈. 방에 홀로 틀어박혀 패스트푸드를 잔뜩 먹고 세상의 부조리함에 엉엉 울음을 토하는 것이 나만의 치유 방식이다.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보고픈 사람, 오늘에 대한 아쉬움이나 버거운 일거리 모두로부터 잠시 도망쳐 숨는 시간. 그렇게 패스트 힐링 푸드로 나를 뚝딱뚝딱 고쳐내고 나면, 또 많은 걸 잊은 채로 열심히 살아갈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좋아하는 책 ‘그리움은 모두 북유럽에서 왔다’의 양정훈 작가님 문체를 닮도록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