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어제 룸메이트에게 방에서 음식을 먹지 말아 달라고 싫은 소리를 한 터라, 방에서 빵을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휴게실에는 누군가가 의자에 드러누워 핸드폰 너머의 여자친구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아래층과 그 아래층 휴게실도 사용중이었다. 체념하고 복도에서 빵을 먹다 사레가 들었고, 이어 눈물이 났다.
이번 랜덤 룸메이트는 방에서 컵라면을 먹는 유형의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수건이며 옷가지, 벽지 할 것 없이 온통 라면 냄새가 배는 기분이었다. 나는 성격 탓에 싫은 티도 내지 못하고 석 달째 버텨보다가, 어젯밤에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컵라면같이 냄새가 강한 음식은 휴게실에서 드셨으면 좋겠어요. 방에서 먹게 되면 쓰레기라도 바로 치워주시고요.”
서른 살에 룸메이트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생 딱지를 달고 사는 삶의 무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무거웠다. 아버지께서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결혼하시고 직장을 구해 정착하셨다. 융자가 좀 껴있었겠지만, 가족을 위한 집도 구하셨다. 자신의 가족, 자신의 공간, 자신의 벌이가 있는 주체적인 삶을 살면 어떤 기분일까? 지금도 아버지를 바라보면 내 모습이 죄송해 마냥 가슴이 먹먹해진다.
서른 살에도 비좁은 공간에 몸을 우겨넣고 사는 삶에 문득 눈물이 났다. 자신의 가족, 공간, 벌이가 있는 주체적인 삶을 살면 어떤 기분일까?
살아갈수록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몇 년째 붙잡고 있는 연구는 이제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고, 친했던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이다, 병역이다 하며 학교를 떠났다. 연구실 동기이자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취업하며 학교를 떠날 때, 랜덤 룸메이트와 지내야 한다는 두려움은 내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걱정과 견줄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낯선 이와 살아보니, 그저 서로를 여섯 달 동안 투명인간으로 대하면 그만인 쉬운 일이었다.⠀
룸메이트를 투명인간으로 대하기 너무나 쉬웠던 이유는, 사실 내가 투명인간으로 사는 법을 너무 잘 알아서였다. 나는 내 나이대의 사회인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사회적 위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사회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투명인간이 되었다. 부모님은 어느새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드셨는데, 나는 용돈을 드리기는커녕 아직도 부모님을 뵐 때마다 돈을 받는다. 그런 내 모습이 사회에 비추어 비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싫어 나도 사회를 투명하게, 마치 없는 듯이 대하게 되었다.
비사회인인 서른 살의 내가 늘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이유는, 나의 세상이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할 만큼 투명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랜덤 룸메이트와 함께 살아가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에게서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비춰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