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와의 크레이프 케이크
“어제 남친이랑 헤어졌어.”
“또? 이번엔 어떤 사람이었는데?”
파스타에 피자를 먹고, 화사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달콤한 디저트까지. D가 나와 평소에 즐겨 먹던 음식들과는 전혀 다른 메뉴를 먹자고 연락했을 때, 오늘의 대화 주제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애인과 싸웠거나, 아니면 헤어졌거나.
“너에게 소개해줘야 할 만큼 소중한 인연은 아냐.”
“며칠이나 사귀었어?”
“두 달 정도? 내 평균에 비교하면 긴 편이지.”
“누나는 왜 연애를 오래 지속하지 못할까?”
“금방 싫증 나니까? 누구나 한 사람을 오래 만나면 이성적인 ‘끌림’은 줄어들고 친구로서의 ‘편안함’에 의해 관계를 지속하잖아? 근데 나는 연애를 지속함에 있어 편안함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어. 설레는 감정만 짜릿한 사랑인 것 같고, 그게 아니면 정 때문에 애써 관계를 지속하는 기분이랄까”
“난 사랑이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시기에 따라 바뀐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누군가에게 금방 싫증이 난다는 건 사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냐?”
“개소리. 다들 나한테 그렇게 말해. 내가 아직 진짜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그리고 확실히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오히려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어.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빨리 질린 게 아니라, 너희가 아직 서로에게 질릴 만큼 사랑을 온전히 불태우지 않은 게 아닐까?’ 하고. 나는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때, 언제나 그 사람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웠어. 이런 상대적 비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했다고 딴지를 건다면, 그것도 헛소리지. 누군가를 사랑하긴 하지만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연애를 시작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어. 그런 걸 재고 따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연애 고자에 가깝지.”
나도 한때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바를 D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끌림이 남녀관계의 유지에 꽤 중요한 요소긴 하지. 하지만 끌림이 줄었다고 해서 사랑이 식었다거나 관계의 가치가 낮아졌다고 할 순 없어. 누군가를 처음 만나고 새롭게 알아갈 때의 끌림은 사랑하는 마음 위에 도파민을 비롯한 호르몬의 장난질이 얹혀 있는 거니까. 그 환상이 걷히고 나면 끌림이 줄었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
내 말을 듣긴 하는지, D는 멍한 눈으로 크레이프를 한 겹씩 포크로 돌돌 말아 걷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러려니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본질은 이거야. 누구나 연애를 할 때 자신이 상대방에게 있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길 희망하잖아? 그런데 내 경험들을 되짚어보면, ‘끌림’과 ‘편안함’ 중에서 타인에게 느끼기 더 어려웠던 감정은 ‘편안함’이었던 것 같아. 알고 보면 진정한 사랑의 형태는 함께 있을 때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연애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끌림보다 편안함을 먼저 느끼게 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걸지도 몰라. 그런 사람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면 끌림은 나중에라도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단순한 재료인 크레이프와 크림을 겹겹이 쌓아 올려 비로소 맛있는 크레이프 케이크가 완성되는 것처럼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케이크를 보며 든 그 생각을 D에게 얘기하고팠지만, 이미 그녀가 케이크를 다 헤집어둔 터라 잠자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