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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ul 02. 2021

‘있는 밥, 없는 말’

쉬어가기

‘친구와 밥을 먹으며 나눈 대화’의 형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외로워서’였어요.


나이가 들고 좁은 사회에 속하니 주위에 사적인 대화를 나눌 사람이 크게 줄더라구요. 연구 미팅이 없어 업무 대화도 필요치 않은 날이면, 눈을 뜨고 다시 눈 붙일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 하루들이 잦았어요. ‘친구 사이는 연인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저는, 비슷한 논리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버렸어요.




애석하게도 저는 수다쟁이더라구요. 가만히 삶을 지속하기만 해도 가슴 속에 생각의 샘이 있는 양, 매일같이 여러 주제 거리가 외로움에 적당히 절여져 명치 언저리를 아프게 짓눌렀어요. 대부분의 생각은 염세적이었고, 일부는 다소 비현실적이었고, 가끔은 지나치게 감성적이었어요.


오래 사귀어왔던 제 친구들은 고마운 버팀목이었어요. 저는 그들에게 배설이라도 하듯 매일같이 제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들려주었죠. 대부분은 제가 쓴 글 속 주제들에 대한 생각 나눔이었어요. 다만 현실에서의 대화는 상상과 매우 달랐어요. 서로의 생각을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기에는 너무 다른 가치관의 대화들이 오갔죠. 저에게는 후련한 넋두리였지만, 친구들은 저와의 대화에 점차 지쳐가는 눈치였구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나 자신’과 대화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다만, 좀 더 여러가지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지금의 제가 아닌 ‘그동안의 나’를 몇 가지 특징별로 모아 ‘가상의 나들’을 만들었어요.

내가 싫어하던 나의 모습은 한데 모여 A가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태도들은 함께 모여 B를 이루었다.
지금보다 어리고 감성적이었던 나의 과거를 모아 C를 만들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하지만 잘 안 되는 강박에 ‘쿨한 척’을 보태어 D의 모습으로 빚었다.




결국, 앞선 글들의 성격은 ‘소설’이 되겠네요. 누군가와 먹은 밥에 제 실제 생각들을 화제로 얹어 글이 출발하지만, 상상 속에서만 나눈 대화를 ‘가상의 나’가 대답하며 마무리하는 글이니까요. 그래서 ‘있는 밥, 없는 말’이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결국 A, B, C 그리고 D는 모두 저의 모습이에요. 글의 내용은 ‘누군가와 실제로 이런 대화들을 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어떠한 가치관을 나눌까?’를 고민해본 결과물들이구요. 글 속에서, 저와 가장 다른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예요.


결국 A, B, C 그리고 D는 모두 저의 모습이에요.


이런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을 멈춘 이유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고마운 사람들이 생겼고, 함께하는 대화가 즐거웠어요. 그런데도, 외롭지 않아진 매일들 속에서 가끔은 저의 네 친구가 그리워지는 때가 있어요. 곧 다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분에게도 전해주러 돌아올 것임을 약속할게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은 저의 친구예요. 저와 가상의 식사를 함께 나누고, 제 부끄럽지만 언젠가 들키고 싶었던 생각들을 알아주신 소중한 사람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모든 고민에도 함께 아파할 친구들과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가득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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