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사원을 잡아준 것은 짧지만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대팔은 한 마디를 더 하려다가, 굳이 그 말이 도움이 되지 않겠다 싶어서 상담실로 빠르게 내려갔다. 내려가서 고객을 응대하고 있는데, 고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엘라 화장품의 직원들이 처음부터 본인을 위 아래로 훑어봤다는 등, 상품 소개를 해주길 바랐는데 비싼 상품만 소개를 하더라는 등, 나는 시엘라 화장품을 잘 모르면 입문템부터 소개를 시켜줘야 하는거 아니냐며 왜 비싼 아이템을 소개시켜주는거냐며 대팔을 붙잡고 본인의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셨다. 대팔도 처음에는 고객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려다가, 점점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 하더니 나중에는 대답도 건성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객이 스스로 하소연을 쏟아내며 화를 누그러뜨렸기에 망정이지, 예민한 고객님이었다면 담당자의 태도에 대해 한 마디 하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네 고객님, 저희가 추후에 서비스 담당자와 함께 교육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고객을 보내드리고, 대팔도 터덜터덜 상담실을 걸어나가려고 하는데, 상담실장님이 뒤에서 대팔을 불렀다.
“대팔 주임님! 음료수 한 잔 하고 가세요!”
상담실장은 대팔에게 박카스를 건넸다. 대팔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바로 박카스를 뜯어서 원샷을 했다. 박카스의 진한 카페인이 식도를 타고 들어와 에너지를 전해주는게 느껴졌다.
“캬아, 오늘 정말 힘든 하루네요 실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주임님. 이제 정신이 좀 차려져요? 그럼 잠시만 앉아볼래요?”
“네? 무슨 일로..”
대팔은 순간 푸드코트에 주문한 짬뽕이 다 불어터졌을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상담실장님이 어지간해선 대팔을 앉힌 적이 없어서 살짝 당황한 기색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임님. 오늘 많이 힘드셨죠”
“아, 네. 실장님. 방금은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말이 좀 격해졌습니다.”
상담실장은 본인 테이블 앞에 놓인 물을 잠깐 마시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주임님이 오늘 힘든 하루를 겪었을 거라는거 저희 상담실 직원들은 다 알죠. 저희만 해도 오늘 네 번이나 주임님께 연락을 드렸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늘이 주임님이 입사하고 최고로 많은 컴플레인을 경험한 날일 것이구요. 게다가 오늘 살펴보니 파트장님과 팀장님도 안계시더라구요. 선배님들이 없었을 테니 주임님이 오늘 심적 부담감이 컸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주임님, 오늘 주임님이 오전부터 지금까지 컴플레인을 처리하는 태도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는거 알아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컴플레인 이제 수십번 처리해보니까 모든 상황이 다 눈에 들어오는 것 같죠? A 라는 방법을 제시하면 고객이 이렇게 말할 거 같고, B라는 방법을 제기하면 고객이 또 다르게 이야기할 것 같고, 이제 뭐 그런 상황들이 눈에 익숙해져서 대략의 상황이 주임님이 생각하는대로 흘러갈 것 같나요? 지금 주임님이 컴플레인을 대하는 태도가 제일 위험한 태도라는거 아시나요?”
상담실장은 대팔에게 진정으로 본인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었다.
“고객의 성향은 100명이면 100명이 모두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이라고 해도 주임님은 네 번의 사례에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줬어야죠. 물론 힘들다는 거 알아요. 좋은 일로 고객을 만나는 일이 아닌데 그걸 하루에 네 번이나 하면 당연히 진이 빠지죠. 하지만 고객은 그렇지 않잖아요. 고객에게는 영업 담당자를 만나는 일이 오늘 처음 있는 일인데 상대방이 그렇게 건성으로 마치 네가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안다는 투로 대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그때 대팔은 마치 뒷통수를 망치로 맞은 게 아니라, 누군가 와서 세게 후려친 듯했다. 역으로 생각했을 때 오늘 대팔의 태도는 고객이 봤을 때 상당히 위험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네 번이나 컴플레인 상황을 맞이하다보니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양 고객을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대팔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실장님. 실장님의 말을 듣고보니 제가 오늘 많이 경솔했네요. 오늘 같은 날이 처음이라 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 힘든 기분이 마치 태도가 되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위험한 태도를 보이면 많이 지도편달 해주세요.”
“주임님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입사한지 2년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컴플레인 처리를 스무스하게 하는 담당자 많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 주임님이 연차에 비해서 명품잡화팀 선임 담당자가 되어 있다보니 앞으로 주임님에게 더 어려운 컴플레인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럴 때 주임님이 작년에 국현대리처럼 대처를 잘 해줘야죠.”
그랬다. 대팔은 입사한지 18개월차였지만, 위에 대리가 없었다. 지난 겨울 발령 때 국현대리는 다른 점포로 발령이 났고, 대팔이 맡은 1층에는 대팔과 윤혜, 그리고 지난 겨울에 입사한 지현이 있었다. 꼬꼬마 세 명이서 백화점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대팔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빨아들였다. 대팔은 덤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때 망치로 누가 뒷통수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종이 땡~ 하고 울리는 느낌이었달까? 이 분 앞에서는 내가 한 마리 어린 양인데 내가 지금 일을 하는 방식이 얼마나 가소로우셨겠어. 한 번쯤 말씀을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 그런데 참 그 말씀이 젠틀하시면서도 단호하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내가 컴플레인 자체가 너무 짜증이 날 때면 늘 이 말씀을 기억하려고 노력해. 모든 컴플레인은 각각 개별의 사건이고, 우리는 늘 새로운 일을 접하는 것처럼 이 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더라고.”
대팔은 여기까지 말을 한 다음에 시안을 쳐다봤다. 시안은 입술을 쭉 내민 채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최소한 대팔의 이야기가 시안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대팔은 슬며시 웃으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임님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데, 오늘 컴플레인 처리를 하는걸 보니 마치 어린 시절 내 생각이 나서 그냥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그 친구도 사정이 있었을꺼야.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물어봐.”
“그래야겠죠? 다음에 그 친구 만나면 한 번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요!” 시안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는 마치 생각을 정리했다는 듯이 대팔과 함께 카페를 나왔다. 시안에게는 주니어 시절의 대팔과 달리 그래도 이럴 때 상담해주고 처방전도 내려주는 선배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잠깐의 커피 타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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