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대팔은 준성 팀장과 저녁을 마친 뒤 전철에 몸을 실었다.
‘점포를 옮기면 괜찮아질까…? 명품이라는 상품군이 애초에 나와 맞지 않는 건 아닐까? 나는 이곳에서 뭘 하고 싶었던 거지?’
그는 자신이 어느새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주체적인 선택 없이 커리어를 이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발령받은 곳이 명품이었기에 그대로 맡았을 뿐, 싫지 않아서 버텨왔을 뿐이었다.
문득 예전 화장품 담당 시절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었지만 브랜드 공부, 상품 공부에 매달리며 하루를 보냈다. 협력사와 머리를 맞대어 기획을 다듬고, 때로는 본사를 찾아가 설득하며 행사를 유치했다. “열정적이다”, “쉬는 날인데 또 왔냐”라는 말이 따라다닐 만큼 그때의 대팔은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지금 명품 담당자로서의 자신은 달랐다. 협력사 본사를 찾아간다고 무언가 달라지지도 않았고, 팝업 하나 따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거절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사람 사이의 온기를 차단하고, 냉정하게만 일하려 들었다. 예전 같으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며 다시 붙잡았을 제안도 이제는 애초에 꺼내지 않게 되었다.
대팔은 나이가 들며 피로가 누적된 탓일까, 아니면 젊을 때부터 쌓여온 상처가 지금에서야 드러나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밤, 술기운에라도 잠을 청하려 했지만 좀처럼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저 버티면 좋아질까? 다른 점포로 옮긴다고 해서 달라질까? 결국 나를 이 자리까지 만든 건 거절과 스트레스였지. 그래서 냉철해지려 했던 건데… 이제는 그것마저 무너지고 있는 건 아닐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만은 분명했다. 곧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 어떻게든 이곳에 버티든지, 아니면 승부수를 띄우든지.
대팔은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의 앞에는 또다시 미오나르 팝업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마무리짓지 못한 전장터였다. 대팔은 한숨을 크게 쉬고, 1층 현장으로 가서 미오나르를 기다렸다. 현장에서 미오나르 담당자를 만나, 지난 미팅에 본인이 불참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고 현장에서 팝업 스토어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협의는 원활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미오나르 담당자는 글로벌에서 3D 도면을 보내줬다면서 대팔 입장에선 수용할 수 없는 도면으로 현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선을 조금만 잡아먹으면 가능하지 않겠냐, 높이 이 정도는 수용 가능하지 않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팔은 같은 이야기의 도돌이표라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지만, 미오나르 측에서 워낙 강경하게 나오고 있어서 일단 보고해보겠다며 돌려보내려던 찰나에 에르누아 매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아니, 너네가 잘못한 일인데 바꿔줘야 되잖아. 왜 이게 안된다는거야?"
그리고 에르누아 점장과 60대 남자 고객이 에르누아 매장 안에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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