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잔, 두 잔 기울이는 술잔
"지글지글지글보글보글보글"
한 눈에 봐도 얼큰해 보이는 곱창전골의 벌건 국물이 칼칼해 보였다. 국물 한 숟갈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풍성해보이는 곱창전골 속 곱창의 곱이 '오늘 술맛 좀 나지?' 라는 듯 준성 팀장과 대팔 사이에 두고 소주가 빠르게 비워지고 있었다.
"야, 무슨 말인지 이야기를 해야 내가 위로를 하든, 솔루션을 주든 하지. 윤호 과장도 없이 둘이 보자고 해서 난 또 무슨 큰 고민이 있나 했는데 뭘 이리 시덥잖게."
"아니 팀장님. 윤호 과장님 바빠요. 거기 형수님 곧 출산이어서 술 먹기 힘들다고 했단 말이예요. 맨날 팀장님이 불러서 안간다고 말도 못하고 얼마나 안절부절 했는데요."
대팔은 한껏 업텐션이 되어서는 준성 팀장과 소주잔을 부딪히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준성팀장과 대팔은 취미가 비슷했다. 야구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종종 하며, 여행을 좋아하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준성 팀장은 가족들과 함께 캠핑을 즐기는 쪽이었고, 대팔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혼자 불쑥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아니, 그래서 올해 두산이 어쩌고 롯데는 어쩌고.."
"올해 진짜 가을야구를 가나 싶었는데.."
"아오, 제가 응원하는 팀은 올해도 텄어요 텄어. 왜 이렇게 애들이 뒷심이 모자라나 모르겠어요. 다 이기다가도 불펜싸움으로 가면 훅 밀리더라니까요!"
대팔은 준성에게 마치 한풀이를 하듯 본인이 응원하는 야구팀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다. 몇 년 째 가을야구를 못갔다는 둥, 올해에도 상위권에 있다가 내려왔다는 둥 대팔은 여전히 준성과 술을 마시면서 사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준성은 다시 한 번 대팔과 술잔을 부딪히면서 대팔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대팔아. 너 요즘은 다닐만 한거야?"
순간 대팔이 술잔을 잠깐 들여다보다가 술을 털어넣는다.
"크으~ 갑자기 소주가 쓰네요."
술잔을 내려놓고 대팔은 말을 이어갔다.
"팀장님. 제가 요즘 힘들긴 힘든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명품 세일즈매니저로 지금까지 올라온건 이성적이고, 뒤끝없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최선의 판단을 하는게 8할이야 라고 팀장님도 늘 말씀해주셔서 저도 최대한 그 부분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해오고 있었는데요. 요 며칠이 저한테는 이상하게 쉽지 않은 나날들이 된 것 같습니다."
준성도 잠깐 술잔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소주를 들이키면서 말했다.
"대팔아. 네가 늘 해왔던 일이고, 늘 잘해오고 있던 일이야. 멘탈이 위협받을 때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좋아. 명품쪽 일을 하다 보면 여러 번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지? 이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 맞아 싶을 때가 있지.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서포터로 잘 해왔잖아. 명품은 굳이 관리하기 보다는 서포팅이 중요한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대팔은 준성에게 소주를 한 잔 따르면서 답변을 한다.
"팀장님. 제가 요즘 부딪히는 지점이 그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는 명품 브랜드의 충실한 서포터즈가 되면 되는걸까요? 저의 주관이나 저희가 준비한 기준을 브랜드에 이야기를 하면 그쪽에서는 노발대발을 해버리니 제가 요즘들어 좀 혼란스럽습니다. 행사 컨셉을 좀 다르게도 가져가보고 싶고, 전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하나로 좀 이끌어보고 싶은데 그게 안되는걸 아니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딪히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그게 좀 심해진 것 같아요. 브랜드들은 점점 선을 넘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구요."
준성도 소주를 들이키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그치. 몇 년 동안 거의 유일하게 꾸준하게 매출이 올라온 곳이 명품이고, 그러다보니까 백화점 매출에서 명품 브랜드 비중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지. 그러다보니 일부 브랜드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하고. 우리는 눈치를 보게 되고. 여튼 대팔아. 올 연말이면 너나 나나 점포 옮길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 조금만 견디자. 나도 뭐 지금은 너한테 이 말밖에 해줄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점포가 1번 점포고, 아직 발령 시기도 많이 남았는데 지금 옮겨준다 어쩐다 말을 하고 싶진 않다. 그거 사탕발린 말인거 알잖아."
"맞아요 팀장님. 답은 제가 가지고 있어요. 잘 이겨내볼게요."
대팔은 생각이 정리가 된 듯, 한결 밝아보이는 표정으로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속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무거움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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