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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Apr 10. 2023

글쓰기 전쟁

자신을 밝힌다

1. 독자를 향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 오소가 함께 있는 단톡방에서는 가끔 뜨거운 종교 전투가 벌어졌다.


  하나님이 있네 없네. 천국과 지옥이 있네 없네. 나는 영세중립을 선언했고, 오소는 열심히 도(道)를 전했다. 오소는 예수 믿고 천당 가고 기도해서 부자가 되라고 했다. 이리저리 토론을 하던 차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로 경제분야 책만 읽다가, 인문학 쪽에 손을 좀 더 뻗었다.


  그러다가, 표지 색깔이 마음에 든『알파벳과 여신』을 만난 후,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뼛속까지 깨달았다. 세상이 점차 보였다. ( 이 책은 집 근처 도서관 두 곳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

■ [서평] 알파벳과 여신...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인류가 알파벳을 얻는 대가로 잃은 것은 바로 ‘여신'이다. 알파벳이 인류에 안겨준 것은 바로 ‘여성혐오’와 ‘가부장제’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근본주의, 분파주의, 극단주의를 인류에게 심어주었다."
-미래한국 위클리-
< 알파벳과 여신 >

  인생의 퍼즐이 차근차근 맞춰지니 머리가 점차 시원해졌다. 2021년 8월부터 10인의 지인을 선정해서, 매주 2~3편 일방적으로 카톡 글을 써 보냈다. 그렇게 쓴 글들을 정리해 지금 브런치북 <나의 추억 사용법>과 매거진 <나의 추억 묵상법>으로 만들었다.



2. 아내는 글로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카톡 글은, 속으로 글이 숨어들지 않게 한 문단을 구성했다. 꽉 차면 다음 문단으로 넘기면서, 소제목을 붙였다. 그래서 브런치 글에도 소제목이 붙었다.


  아내는 내 글 읽기를 원치 않았고, 칭찬대신 차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그래도 가끔 나를 알려주기 위해 그녀에게 글을 보냈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할까. <1학년, 뽀뽀하고 포마드도 바르고>를 보내준 다음날, 글을 읽고 기억나는 게 있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손수건 달고 만화방에 갔던 얘기가 생각은 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뱉었다. 오히려 왜~그런 얘기를 쓰냐고 화살을 쐈다. 여자 얘기나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카톡으로 다른 사람들 괴롭히지 말라고 주의도 줬다. 공해라고 했다. 돈 되는 일이나 하라고 충고도 했다. 


  나는 상관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쏘아 부쳤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건만 나는 자주 수세에 몰렸다.


  서로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아내는 그동안 져주고 살았지만, 이젠 할 말은 하고 죽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자주, 링 위에서 권투 글러브를 낀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다 후퇴란 없었다.



3. 글 때문에 족발 앞에서도 다퉜다


  2021년 8월 29 일요일.


  집사람과 족발을 사서 처가댁으로 향하다, 길바닥에서 티격태격했다. 카톡 글을 왜 자꾸 써대냐고 아내가 따졌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울그락 불그락 언짢은 표정으로 장모님 댁에 도착했다. 잠시 후, 저녁 식사 사람 수가 늘어났다고, 아내는 나더러 족발 하나 더 사 오라고 했다.


  배달을 시키라고 하니, 배달비가 5천 원 든다고 갔다 오라고 한다. 왔다 갔다 시간과 기름값을 생각하면, 배달하는 게 더 낫다고 안 간다고 버텼다. 그래도 갔다 오라고 하니,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보다 못한 장모님이 처남에게 전화로, 올 때 족발 하나 더 사 오라고 해 일단락됐다.


  이날 밤. 아내는 더 이상 서로 말하지도 상관하지도 말자고 한다. 그러지 뭐~ 속으로만 생각했다.


   월요일이 밝았다. 오전에 백신 2차 접종 후, 오후부터 몸살기가 슬슬 올라왔다. 퇴근하니, 백신 맞은 걸 아는 아내는 저녁 먹으라며 말을 걸어왔다. 말을 안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왜 이럴까.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4. 아내는 가끔 나-전달법으로 말한다


  화요일 밤이 되자, 아내는 자신이 만든 이모티콘을 내게 보여주었다. 카톡에 출품할 거란다. 이모티콘에는 '퇴근이다'라고 쓰여있었다. 가방을 질질 끌고 녹초가 된, 사람 아닌 어떤 녀석이 있었다.


  나는 칭찬한답시고 내 폰 카톡 이모티콘 '퇴근이다'를 보여주었다. 한 손을 위로 올리고 기뻐하는 개 모양이다. 잘 만들었다는 격려의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폭탄이 쏟아졌다. 자기 것은 그거와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화염방사기로 분노의 불을 뿜었다.

  조금 후, 자기는 시아버지 앞에서 화낸 적이 없는데, 엄마 앞에서 그럴 수가 있냐고 아내가 따졌다.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쏘는 총알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나를 직접 겨냥하지도 않았으니까. 아내는 '나-전달법'( I-message )으로 공포탄을 쏘는 것 같았다. 아내가 감정표현을 잘하는구나~했다.


  나는 응사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니 그냥 자겠다고 일방적 휴전을 선포했다. 아내는 방문을 열고 한마디 했다.

  "앞으로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거니 그리 알아~"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5. 내가 누구인지 밝히려 한다


  수요일 새벽 5시 30분. 급히 나가려는데, 아내는 몸이 어떻냐고 잠결에 말을 걸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그날 반납할 책들을 챙겨 나왔다.


  오전 8시 11분에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다.

  "아빠는 몸컨디션 어때요?"

  아내가 치매를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고 또 말을 건다.




  나는 글을 쓴다.

  왜 쓰는지는 책에서 찾았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글을 쓴다."

-나탈리 골드 버그『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p.5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읽어 주는 고마운 분들에게

나를 밝히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다.


나는 '자표심(자기표현의 심리적 기초)'이니까.


ps

아내가 독자인 지금 

사후 검열이 있지만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다. 

암묵적인 보도지침을 어겨가면서.


※ 어제 밤. 아내에게 제 브런치북과 '말죽거리 잔혹사'가 들어있는 매거진 글 몇 편을 소리내어 읽어 주었더니, 새롭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 참고자료 >

1. [서평] 알파벳과 여신...여성혐오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미래한국 위클리, 2018.12.22

2. [글밭&책밭] 알파벳과 여신 , 경향신문 경향신문, 2004.07.30

3. [인문사회] '알파벳과 여신'…알파벳은 여자를 싫어했다, 동아일보, 2004.07.30


표지 이미지 : Image by Leopicture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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