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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7. 2021

52주. 헤일, 시저!(2016)

2020. 06. 28 by 만정

나는 마지막 영화를 일찌감치 정해두었다. 19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자의 하루를 그린 코엔 형제의 ‘헤일, 시저!’이다.  영화에 대한  요약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라고 쓰지만 속마음을 밝히자면 전혀) 없을 것이다.  요약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영화의 세계에 경배를!


영화사 캐피틀 픽처스의 제작자인 에디 매닉스는 밤낮없이 일하는 유능한 관리자이다. 영화 속에서 현재 촬영 중인 것으로 등장하는 영화만 여섯 개다. 당연히 그는 이 모든 프로젝트의 캐스팅, 제작 진행상황 점검, 감독의 고충해결에 직접 관여한다. 이만해도 그의 유능함은 충분히 증명될 테지만, 유능함을 뛰어넘는 위대한 재능과 가없는 노력이 더욱 빛나는 것은 다른 업무들 덕분이다. 영화사 몰래 외설사진을 찍는 여배우, 대중에게 순수한 이미지로 사랑받는 중인데 아빠도 없는 아이를 낳겠다는 여배우(그녀는 이미 “reliable” 하지 않았던 두 남편과 이혼한 상태이다. 이 두건의 이혼 역시 에디의 업무였음을 눈치챌 수 있다), 연기력 좋은 영화배우일 뿐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사랑받는 대스타에 대한 폭로 기사를 싣겠다는 기자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 역시 에디인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이 모든 것을 해낸다. 이쯤 되면 유능함이나 성실이 아닌 헌신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에디의 남다른 “경영 관리”능력을 높이 산 록히드(그렇다 록히드 항공사의 바로 그 록히드이다)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금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그를 영입하려 한다. 그런데도 에디는 어쩐지 록히드로의 이직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제작 종료를 코앞에 둔 올해 최고의 대작 ‘헤일, 시저!’ 촬영 중에 주인공 베어드 휘트록이 사라진다. 그 뒤를 감싸고 있는 공산주의(스탠포드 대학의 ‘마르쿠제’ 교수와 애완견 ‘엥겔스’가 등장한다)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매카시즘 하에서 영화계 공산주의자들에 닥칠 탄압에 대한 암시는 당신이라면 알아챌 것이다. 베어드 휘트록의 행방을 좇는 탐정 영화적인 구조 속에서 5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각종 장르들-기독교, 서부극, 수중발레, 고전 드라마, 뮤지컬이 코엔 형제 식으로 재현된다. 여기서 ‘코엔 형제 식’이라는 것은 오뜨 꾸뛰르처럼 고급스러운 혹은 최고급 수공예처럼 1분 1초가 아름다운,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탐정이자 해결사인 에디 매닉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동안, 우리는 가만히 앉아 혀만 내두르면 된다.


물론 내가 26편의 영화 글을 쓰는 동안 내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A4 한 장 반 남짓한 분량 안에 영화에 대한 평가와 감상, 그리고 2주에 한 번 주어지는 정기적인 기회를 통해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내 이야기와 근황을 골고루 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몇 편인가 영화평론 비슷한 것을 해보려고도 시도해봤지만, 내가 영화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재미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구멍이 나 가라앉는 배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덜 중요한 부분을 걷어냈을 뿐이고, 남은 건 당신에게 전할 내 이야기였다(미안하지만, 당신 글에 대한 코멘트는 가장 먼저 버린 쪽에 속한다. 할 말은 많지만 시간과 지면이 충분치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당신 역시 읽고 놀라고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겠지, 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당신은 그 코멘트 없음이 좋았다니... 다행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명백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26번, 격주로 이 노아의 방주에 실어야 할 아끼는 영화를 선정하고 그 영화를 내가 왜 그토록 아꼈는가를 탐구하는 시간은, 당신 글을 즐기고 그 속에서 그간 몰랐던 당신을 발견해나가는 시간만큼이나 소중했다.


영화계가 진지하지도 않고 가짜인 데다가 괴짜들 비위나 맞춰주는 산업이라는 말에, 에디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난다. 그는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과 만드는 사람들, 그들 모두가 기거하는 영화라는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거기에 신학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으로 본질적인 가치 같은 것은 없다. 다만 그는 그것이 그럴만한(그렇게 과로할만한) 가치 있는 세계라고 믿었고,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에디 매닉스를 빌어 하는 코엔 형제 자신들의 고백임이 뻔하다. 영화에 대한 사랑의 고백 말이다. 바로 이 때문이다. 어쭙지않은 영화광으로서 내가 우리 소중한 프로젝트의 마지막 영화로 이 영화를 선정한 것은. ‘일요일엔 소설을’ 이라든가, ‘일요일은 논픽션을’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나는 마감 소식을 전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니 당연히 대단한 일을 했다는 엄마의 찬사와 그의 마감 기념 선물(테팔 퀵 스티머를 받았다! 야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나만의 글을 쓸 기회를 강제해 준 당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온갖 손바느질들-수중발레며, 카우보이 묘기며, 도저히 이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채닝 테이텀의 호모섹슈얼한 뮤지컬 장면-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다 말하기 위해서는 몇 장이고 수다가 이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기어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최애 장면이 하나 있다. 고전 드라마의 거장 감독으로 분한 랄프 파인즈가 대사 한 줄 제대로 못 치는 서부극 배우에게 연기 지도하는 시퀀스다. 랄프 파인즈는 이 대책 없는 배우에게 전형적인 랄프 파인즈 연기를 가르친다. 그 우아하고 고결하면서 시니컬하고 근저엔 우울함이 깔린 눈빛과 영국식 발음. 그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따라 하는 초짜 배우의 모습과 그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감독의 모습은, 아무리 우울한 순간에도 날 파안대소하게 한다. 분명 당신도 보면 많이 웃을 영화다.


마지막으로 나도 수미상관에 기여하자면, 당신이 말한 김연수의 신간을 나는 무려 예약 구매했다. 다음 주 목요일이면 백석을 모티프로 한 그 소설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도전’인 이유는, 고백하건대, 그의 장편을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김연수의 에세이와 서문의 광신도이고, 어떤 단편들은 무척 아끼지만, 도저히 장편만큼은 다 읽기 힘들었다. 이번 소설 역시 작가의 말에 홀려서 구매했다. “언제부턴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은 소설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바로 그 말에 말이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소설가로 만들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로 인해 이루어진 모든 현실과 이루어질 현실뿐만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과 앞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적어져 가는 모든 일들이 나에겐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다음에 당신을 만나면, 우리가 다시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면, 이 말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우울증 약을 먹는 이 순간에도 나는 삶에 대해 꽤 낙관적인 편이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지난 일 년을 마감하는 동시에 당신과 내 앞에 펼쳐질 날들, 우리의 남은 삶을 어쩐지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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