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정 Mar 26. 2021

18주. 로얄 테넌바움(2001)

2019. 11. 03. by 만정

꼽아보니, 나는 웨스 앤더슨 영화 12편 중 9편을 보았다. 강박적인 대칭과 강박적인 미술, 강박적인 완성도로 창출해낸 영화적 세계. 처음 본 이래로 그 유명한 스타일에 끌려 반복 구매자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모든 작품이 고르게 좋았던 건 아니다. 그래도 신작을 기다리게 하는 매력은 충분하다. 그의 영화 9편에 대한 내 총평은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가장 잘 만든 영화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는 ‘문라이즈 킹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바로 오늘 이야기할 ‘로얄 테넌바움’. 그러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왜 나는 웨스 앤더슨 영화 중에서도 ‘로얄 테넌바움’을 좋아하는가에 관한 것이 되겠다.


‘로얄 테넌바움’은 테넌바움 가족의 이야기이다. 변호사 로얄 테넌바움(진 해크만 역)과 고고학자 에슬린(안젤리카 휴스턴 역)은 세 남매를 두었다. 불성실하고 가족을 돌볼 줄 모르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로얄은 일찍이 가족을 떠나고, 에슬린 혼자 자녀들을 키워낸다. 테넌바움의 삼 남매는 어린 시절 천재로 알려져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큰 아들 채즈(벤 스틸러 역)는 10대 초반에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고, 입양한 둘째 딸 마고(기네스 펠트로 역)는 9살에 극작가로 데뷔했으며, 막내아들 리치(루크 윌슨)는 US오픈 3회 우승에 빛나는 테니스 선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 삶에서 좌절과 사고를 겪고 그 과정에서 재능은 사라진다. 이제 누구 못지않은 실패자가 된 불행한 어른 삼 남매, 여기에 마침 돈이 똑 떨어진 아버지 로얄까지, 테넌바움 가족이 다시 집으로 모이면서 이 가정의 2회 차 이야기가 시작된다.


뻔한 가족드라마 같지만 웃음과 따뜻함, 감동이 넘치는 부류는 아니다. 나는 그 이유를 웨스 앤더슨 영화 특유의 정서, 서글픔 혹은 쓸쓸함에서 찾는다. 웨스 앤더슨 영화는 인형의 집 같은 세트장 안에서 인형 같은 옷을 입은 인형 같은 주인공들이 연기하는 것이 동화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는 "알고 보니 그들은 차가운 현실 속에 사는 이들이었답니다", 라는 식의 찬물을 끼얹곤 한다. 나는 그 얼얼함을 짠함 또는 서글픔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일 수 없이 꽁꽁 묶인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한 인물들이 발산하는 서글픔 말이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의 이 (가족) 영화는 그의 문법대로 쓸쓸하고 서글프다. 


‘로얄 테넌바움’의 큰 틀은 사실상 로얄 테넌바움의 성장드라마이다. 가족에 대해 무지하고 무책임했던 로얄이라는 문제적 가장이, 늦게나마 가족을 이해하고 마침내 가족을 가족으로 대하는 책임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스토리로 보자면 비극적인 요소는 마지막에 로얄이 죽는다는 것 정도이다. 로얄은 결과적으로 가족에게 돌아왔고, 받아들여진다. 로얄의 성장드라마로서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로얄의 삼 남매는 다르다. 영화에서 그들이 처한 현실이 내게는 우울하고도 서글프다.


테넌바움의 삼 남매는 천재‘였던’ 것으로 소개된다. 그들이 천재였다는 사실은 과거형으로 서술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천재, ‘그 후’이다. 테넌바움 집안의 천재들은 온전히 천재로 남아있지 못했다. 채즈는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슬픔에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불안해 보이고, 어쩌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마고와 리치는 사회적으로 금지되었으나 멈출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사랑에 괴로워한다. 마고는 욕실에 틀어박힌다. 당연히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리치는 마고의 결혼을 기점으로 코트를 떠나 배를 타고 세계를 떠돈다. 두 사람은 무기력해 보인다. 마고는 자신만의 비밀을 만들고 외부와 단절하며-어쩌면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리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리치가 행하는 극단적인 시도가 증명하는 것처럼, 이 세 사람에 대한 묘사는 정확히 우울증을 가리킨다.


누구보다 특별하고 비범했던 아이들이 우울하고 무기력한 어른이 된다. 그 비범함이 아직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더 이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천재가 되는가’가 아닌 ‘천재는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가’이고, ‘천재의 삶’이 아닌, ‘무너진 이후의 천재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는 인생이 주는 시련, 사고와 좌절이 자리하고 있다. 


당신 말대로 “내가 절대 그럴 리 없어”가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확언이라면, 그것은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삼 남매처럼 사람들은 예기치 못했고 기다리지도 않았던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조금씩 마모되고 부서지기도 한다. 나는 이 삼 남매에게 깊이 공감했다. 비범한 사람이 아닌 나 역시 얼마나 많은 상실감을 느꼈던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사실들을 마주할 때의 무기력함.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던 특질들을 상실하는 것 같다는 당혹감. 더 이상 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 쓸쓸함. 빛나고 특별했던 수많은 어린이들이 평범하고 부서진 어른이 되어가는 보편적인 서글픔. 아마 이 감정을 들추어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 영화 중에서도 내게 가장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영화 말미에 로얄이 가족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삼 남매도 할당된 해피엔딩을 부여받는다. 셋은 각자 어느 정도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또 어느 정도는 극복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천재의 자리로 복귀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이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치고, 평이 엇갈리는 그저 그런 희곡을 쓴다. 나는 이 결말에 대해 더 이상 아쉬워하지도, 안도해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의 내일을 잠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갈 수 있을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아직도 가늠이 되지 않는 나의 내일과 그 내일과 그 내일을.

이전 20화 17주.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20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