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자아
겪으면서 한번, 해석하면서 한번,
두 배로 풍부하게 사는 날도 있을지어다.
"손님, 제가 생각해봤는데 아까 손님이 하신 말씀이 너무 기분이 나빠서요."
"..."
"아니 제가 아까 판교에 있는 랩이라고 착각을 하고 한 100m 잘못 들어갔다 나온 건 맞는데요. 손님 말씀하신 것처럼 3천 원, 4천 원 때문에 이 일하는 거 아니거든요. 제가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너무 기분이 나빠서 전화드렸어요."
"..."
"손님이 잘못하셨다는 게 아니라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데요. 제가 3천 원 돌려드릴 테니까 계좌번호 알려주실래요?"
"제가 돈 돌려받겠다고 그렇게 말씀드린 건 아니고요. 평소에 출근할 때 택시를 자주 타는데 17,000원 근처로 나오던 택시비가 오늘은 21,000원이 나왔다고 말씀드린 건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손님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고요.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을 수 있겠죠.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너무 기분이 나빠서요."
"기분 나쁘게 해서 죄송하고요.
그냥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예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에 만나면 커피 한잔 사드리겠습니다."
월요일 아침, 아니 사실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는 회사로 가는 길에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찾아본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을 때 즈음, 지하철을 잘 타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버린 습관이다. 이번 주 월요일은 출근길이 뻥 뚫려있었고 지하철을 타기에 컨디션이 애매하여 택시를 불렀었다. 도착 예정 시간대로면 9:48쯤 회사에 도착하니까 당연히 이득이라고 생각했는데 "득 보다 실이 많은" 소비를 할 줄은 몰랐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랩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기사님은 본인이 아시는 운중동의 어느 랩으로 착각하시고 자신 있게 달리는 중이셨다. 창밖으로 왠지 모를 운중동의 아름다운 정취가 느껴진 나는 깜짝 놀라서 목적지가 여기가 아니라 정자동이라고 다급히 말씀드렸다. 예상 시간보다는 15분 정도, 예상 비용보다는 4,000원가량 더 소비당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10:02에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10:10분에 "카카오 케이 택시입니다."라고 운을 떼는 전화를 받았다.
처음엔 내가 감정 쓰레기통인가 싶었다. 주간 회의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눈치를 보며 통화를 하고 있으니, 아니, 통화라기보다도 일방적으로 하소연을 들어주는데 가까웠다. 성장환경 속에서 나를 스쳐갔던 여러 에피소드들은 나를 폭력적인 모든 것에 대해 유난히 겁을 먹게 만들었다. 이런 대화 중에서는 감히 난폭한 에너지를 확장시키지 못하고 절대적으로 회피한다. 아무리 자그마한 폭력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나는 긴 시간 동안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위축된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 내가 겪은 일을 공유했더니 친구는 비속어를 섞어가며 아주 큰 감정의 동요를 드러냈다. 뭐 저렇게까지 화를 내지 싶었는데 며칠 있어보니 그 친구가 냈던 역정이 큰 위로가 될 줄이야. 나 대신 열을 내주는 친구를 통한 대리만족이었을까.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친구는 본인을 정말 잘 아는 사람이다. 무엇이 본인을 속상하게 하는 지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것들에 마주하여 자신에게서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 화가 나면 그저 화를 낼 뿐이다.
그는 솔직해서 멋있다. 아닌가? 그는 솔직한데도 멋있다.
월요일 아침에 만났던 택시기사 아저씨도 물론 아주 솔직했었다. 그런 자신을 외면하려는 노력이 10분을 채 넘지 않았고 상한 기분을 나에게 가감 없이 드러냈다. 지각하여 부랴부랴 주간회의를 준비하던 나는 그 솔직함으로 난감한 월요일 오전을 보냈지만 그의 입장에서야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아저씨의 모습을 높이 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그 한없는 솔직함을 미워해야 하는 걸까?
정신과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TCI 검사(기질 및 성격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사회적 민감성 지표가 0에 가까웠던 것은 나로서는 의아한 결과였다. 나는 나에게 미처 다 드러내지 못하는 섬세함이 굉장히 수준 높게 자리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내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얘기한다. 그저 공감하지 않는 걸 선택할 때가 더 많을 뿐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공감을 할 때 느껴지는 감정들은 나를 귀찮게 한다. 의견이 다르기라도 하면 상대와 내 의견 각각의 옳고 그름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나열된다. 솔직함을 버리면 나는 공감을 하고 위로를 건넨다. 솔직함을 탑재하면 그냥 집에 가는 게 답이다. 내 조언 따위를 누가 필요로 하겠는가. 애초에 그냥 좀 들어달라고 날 찾아온 것일 텐데. 머릿속에 있는 옳고 그름을 다 해석하면서까지 굳이 납득을 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약간의 공기를 섞은 듯한 목소리로 "그랬구나" 한 마디만 하면 대충 넘어갈 수 있는데. 뭐 그렇게까지 열을 낼 일이라고.
그 뒤로 가끔은 "낮은" 사회적 민감성도 주변인에게 불필요한 불편함을 준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조금은 나를 드러냈던 것인데... "맞아, 내가 공감능력이 좀 떨어지지ㅋㅋㅋ"라는 반응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 가볍게 뱉을 수 있었던 말은 아니었다. 그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방법" 같은 주제로 한백 자는 쉽게 채울 수 있을 만큼 훈련이 잘 되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반응이었을 뿐이다. 나는 나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었다. 그래도 될 것만 같았으니까. 4000시간 이상의 아르바이트와 2년 반의 직장생활을 할 동안 나는 사회적 자아를 빌드-업해가는 자신을 뿌듯해하기까지 했었다. "모든 사람에게 솔직해질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하게 말을 할 때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솔직하지 않을 때도 죄책감은 밀려온다.
우리는 자신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타인은 또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감정이란 것은 귀찮고도 덧없다. 그저 먹어버리고 던져버리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금방 지나가는 것이라서 한번 해보면 두 번째는 더 쉽다. 시간이라는 엄청난 조력자의 도움을 받게 되면 더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된다. 먼 훗날, 그 감정들이 없어지지 않은 채로 잔뜩 축적되어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줄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2018년 가을, 문득문득 숨이 안 쉬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수 차례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외과에서 내과, 정신과까지 시간 날 때마다 병원 투어를 다녔고 결국에는 정신과와 상담센터로 정착하게 되었다.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공황장애인 것을 알았을 때에도,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다. 사회적 자아를 정성 들여 만들어가면서 팔자에도 없는 이상주의에 빠져들었다.
공황장애는 왜곡된 생각의 대가라는 말이 맞는 이론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고 현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인식하고 집에 와서 끙끙 앓아도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영원히 이별 중인 연인처럼 무뎌지지 않을 가시밭길로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이상적인 자아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빌드-업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사회적 자아는 이 길에 가시로 가득한 장미꽃을 심고 있는 또 다른 자아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