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지하다
1. 소풍 전날
소풍을 갈 때면 나는 전날 많은 준비를 했다.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찾을 수 있도록 가방도 여러 번 정리하고 비상시 가방을 가볍게 들고 도망갈 수 있도록 짐도 줄였다. 실용적으로 여러 상황을 생각하며 옷을 의자에 걸쳐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야 잠에 들곤 했다. 그러면 소풍 당일에는 편하고 여유롭게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시간, 친구들이 어울려 놀 때마저도 여유롭게 멀찌기 앉아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들이 나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사전 준비를 정확하게 해야 바삐 돌아치지 않을 수 있었다. 억척스럽고 싶지 않아서 생각이 참 많았다.
2. 첫 해외여행
20살이 되던 해 여름, 캘리포니아에서 한 달 정도 자유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 가고 싶었던 여행지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예약을 해놓고 못 가는 걸 아까워 하지만 like just for seconds, 가진 것도 없으면서 씀씀이는 어찌나 여유로운지. 그래도 나는 억척스럽고 싶지 않았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도 딱히 아쉽지 않았다. 시행착오와 금전 낭비가 조금 있었지만 그런 즉흥적인 변주들이 주는 좋은 점도 분명히 있었다. 모든 여정에서 장점을 찾으려고 하고 한 문장이라도 생각해내려고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3. 42,000짜리 수업
대학교 3학년 때 주 2회 필라테스를 끊었다. 시립대학교 학생이면 월 42,000의 저렴한 가격으로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할 수 있었다. 나는 딱 한 번 갔다. 42,000짜리 수업을 들은 것이다. 시간이 없었던 건 80% 사실이다. 20%를 빼는 이유는 그래도 50분 수업인데 정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뛰고 양해를 구하고 알람을 맞추고 씻는 등 부차적인 에너지가 조금 필요했을 뿐이다. 그 에너지는 생각만으로도 참 억척스러웠고 나는 억척스럽고 싶지 않았다.
4. 별거 아닌 일
졸업작품을 할 때 옆 파티션을 쓰는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수업이 없을 때 학교 IT Help desk에서 근로를 했다. IT Help desk는 학교 예산으로 구입한 컴퓨터나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it문제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서였다. 어느 날, 한 아저씨가 우리 학교 대학원생이라고 하면서 개인 노트북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근로학생은 원칙대로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젠틀했던 아저씨는 본인이 교수 어쩌고 하면서 말을 흐리더니 급기야 반말을 하시며 고쳐달라고 강요했다. "너네 이런 식으로 너네 편하려고 일처리 하면 안 되지” 오빠는 옆에서 듣다가 “그쪽도 반말하시면 안 되죠”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아저씨는 오빠에게 갑자기 폭언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느낌이 쎄 해서 녹음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녹음한 파일로 아저씨를 고소했다. 알고 보니 동네 목사였던 아저씨는 우리 학교에서 학부를 졸업하긴 했었다. 그는 나중에 오빠에게 사과를 하러 왔고 오빠는 고소를 취하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는 오빠가 참 억척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오빠에겐 참 별일 아닌 일이었다. 오빠는 오히려 내가 같은 도면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여러 번 다시 그리는 게 훨씬 억척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나에겐 설계하고 도면 그리는 일이 참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말이다.
억척스럽다는 건 나한테 어떤 의미였을까.
돈 몇 푼 아끼려고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한참을 노동하는 것, 인스타그램을 매일매일 체크하는 것, 고가의 소비를 하기 전 뱅크 샐러드에서 잔액을 확인하는 것 등은 모두 억척스럽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겐 감자전을 먹으려고 감자를 가는 것도, 도보시간을 줄이려고 줄을 서서 버스를 환승하는 것도 억척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나도 어쩌면 남들 입장에서는 억척스럽게 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억척스럽다;
[형용사]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몹시 모질고 끈덕지게 일을 해 나가는 태도가 있다.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무언가를 주장했던 적이 없다. 이건 나의 콤플렉스에서 변주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끈기가 부족한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끈기가 부족한 어른이다. 누군가는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판다. 나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부럽기도 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쪽 하늘에 매일매일 해가 뜨듯이 나에겐 매일매일 호기심이 생긴다. 한 우물만 파기에는 그 호기심에 지배당해서 가던 길을 자꾸 멈추게 된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말하면 그냥 하라고 한다. 예전에는 꾸준히 해보라는 말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싹수가 보이는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는 식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궁금한 것을 알아보거나 경험해보면 나는 안도감이 생긴다.
자유;
[명사]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상태와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
내 인생을 지휘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생생하게 느낀다. 나에게 호기심이 찾아오는 그 순간은 유일하며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열렬한 사회성에 힘입어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정의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사회성,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으로 타인의 삶을 실컷 엿보지만 나의 삶을 엿보는데 딱히 시간을 쓰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 인생에 필요하지도 않은 영감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건 아닐까. 나를 알아가는 것보다 남을 알아가는 것에 더 많은 심혈을 기울인다. 하나의 사회 구성원이기 이전에 나도 하나의 주체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그중에서도 제일 심각한 상황은 다른 사회 구성원을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비교하는 것이다. 너무도 관성 같은 성질이라 인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것도 사실. 그저 비교와 대입이 난무하는 의식장애랄까.
자신을 존중하려면 이 고리부터 멈춰야 한다. 나는 가장 보통의 사람이면서 유일한 사람이다. 그 누구와도 같은 인생을 공유하고 있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고유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가치관은 선택의 기로에서 나에게 어울리는 길을 쉽고 빨리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핸들을 내어준다. 가끔 말도 안 되는 일 앞에서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앳된 나의 마음을, 또는 자존감을 지켜주기도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한다는 것이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동일시되는 건 문제가 있다. 그와 나의 다름을 인지하고 그와 다른 나를 존중해줘야 한다.
나는 억척스럽고 싶지 않았다. 재고 따지는 걸 멈추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는 참 별거 아닌 일로 유난이라고 할 것이다.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