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몸에는 병에 걸리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은 없지만, 완벽한 평형 혹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면서 균형이 무너졌을 때 다시 균형을 잡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건강해지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행복이 없으면 치유도 없다.(p.21) 안드레아스 모리츠, <건강과 치유의 비밀>
자연식물식 77일째다. 아침은 거의 과일이나 채소를 먹지만 오늘은 바쁘기도 하고 생각이 없어서 건너뛰었다. 점심은 외식할 일이 있어서 월남쌈 샤부샤부집에 갔다.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외식을 할 때에는 비빔밥이나 월남쌈이 딱 좋다.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고, 고기는 얼마든지 빼고 먹을 수 있으니 편안하다. 오늘도 채소 위주로 먹고, 소고기 육수가 우러난 국물까지는 먹었다. 고기는 먹지 않았다.
저녁에는 연근 부침개를 했다. 친환경 매장에서 손질한 뒤 적당한 두께로 썰어져 나온 연근이라 사용하기 편하다. 연근을 한 번 씻은 다음 찹쌀가루를 넉넉히 뿌렸다. 프라이팬 첫 판은 연근에 찹쌀가루를 묻혀서 바로 구웠다. 기름은 넉넉히 둘렀다. 원래 자연식물식 음식에는 정제 기름이 포함되지 않지만, 부침개나 튀김 요리를 할 때에는 얼마간 쓰고 있다. 연근에 찹쌀가루를 바로 묻혔더니 얼마 묻지 않아서, 나머지는 찹쌀가루에 물을 약간 섞어서 부쳤다. 물을 섞으니 찹쌀가루에 연근에 훨씬 많이 엉겨 붙었다. 그렇게 두 판을 더 부쳤다. 이전에는 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사용했는데, 찹쌀가루를 처음 사용해 보았다. 밀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해서 연근 부침개를 하면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는데, 이번에 찹쌀가루만 사용한 연근 부침개는 나름의 맛은 있지만, 깜빡하고 소금은 넣지 않은 바람에 간이 맞지 않았다. 초간장을 곁들이긴 했지만, 본연의 간이 너무 싱거우니 둘째 아이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완성된 연근부침 위에 소금을 뿌리고 다시 구워 줬지만 그것도 몇 개 먹더니 말았다. 다음에는 다시 묽은 밀가루 반죽을 입혀서 구워야겠다.
둘째 아이의 감기가 며칠이 지나도록 떨어지질 않는다. 며칠 동안, 학교와 학원을 보내지 않고 푹 쉬게 했는데도 똑 떨어지지 않고 잔기침이 오래간다. 이럴 때일수록 조바심을 내지 말고, 도라지청이든 꿀물이든 먹이며 신경 써 보아야겠다. 둘째 아이와 주로 식사를 함께 한 나도 컨디션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감기가 옮지는 않았다. 아니면 감기가 옮았는데 약하게 지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심한 감기에 걸린 적은 없다. 가족들이 감기에 걸리면, 감기기운이 살짝 올 때도 있지만, 감기기운은 금세 사그라들고 만다. 건강은 관리하는 것이지만 일정 부분 타고나는 것도 있고, 운이 좌우하는 것도 얼마간 될 텐데, 어릴 때에 태열이 있었고, 자라면서부터 아토피가 있는 것에 대해서 속상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에 떠올리는 생각이 있다. 누구는 금수저로 태어나고 누구는 흙수저로 태어나지만,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모두 잘 사는 것도 아니고 흙수저로 태어났다고 모두 못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태열을 타고났고, 아토피로 진전되는 것을 막을 만큼 열심히 관리하지도 못해서, 흙수저로 보일지라도, 계속 피부가 약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관리하는 시간이 더욱 깨끗하고 건강한 피부를 만들어 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몸의 자연치유력을 믿으며 오늘도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