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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진 코치 Dec 27. 2021

겐차야자는 해를 보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s


잎이 다 탔다.


원래는 내 방에 있던 아이를 미관상, 말이 좋아 미관상.

남 보기 좋으라고 밖에 꺼내놓았는데 보름 만에 이 사달이 났다.

잎끝을 만져보니 곧 부서질 듯 바스락 소리를 낸다.

사실은 며칠 전에 봤는데 누가 우리 집에 들른대서 그냥 거기 두었다.

잎이 타는 건 나만 알고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베란다 2중창을 넘어와서 거실 끝에 걸쳐진 햇빛에도 눈이 부실 거라고는 정말로,

진짜 처음에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분명 양쪽으로 갈라진 잎 중에 해가 드는 한쪽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미안해..


원래 겐차야자는 세게 들이치는 빛을 보지 못한다.

해를 못 보는 야자수라니. 너도 참….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어두운 내 방에서 지내는 것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잎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괜히 영양제를 놔주고 그랬다.

거실에 내 놓고는 내가 보기에 좋았으면서 ‘넓은 데서 좋겠구나~’ 중얼거렸고

잎이 한쪽만 타들어 가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물 탓, 화분 탓을 했다.


얘 이름은 ‘갠차나’다. 원래 이름은 ‘겐차야자’.

처음에 ‘갠차나’라고 이름을 지어주고는 혼자서 막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보니 내가 힘들 때 가장 가까이서 늘 함께한 셈인데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다.

이젠 내 키보다도 더 커버린 이 녀석을 낑낑거리며 비좁은 내 방으로 다시 들였다.


아까보다는.

그래도 아까보다는 맘이 조금 나아졌다.



이제 진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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