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진 코치 Dec 31. 2021

식멍

이런저런 이야기s


역시 이 녀석!
내 방을 좋아하는 거였어!!


거실에서 헥헥거리던 녀석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는데 며칠 새 새싹이 째끔 더 뾰족해졌다.




오늘 같은 날, 저만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니터 앞에서 하루종일 거북목을 하고서는 얼굴이 벌게졌다 하얘졌다, 한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전화기를 붙들고는 가만히 듣고 있다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다,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가 떼었다가, 가만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눈을 끔뻑끔뻑하다가... 암만해도 내 꼴이 우습겠구나 하고 있는데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다. 무심결에 돌아보니 갠차나가 자기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달라고 고개를 폭 숙이고 옆에 와 있다.


오구오구. 나의 갠차나...



역시 이 녀석
나를 좋아하는 거였다



면장갑으로 쓰담쓰담 잎을 쓸어주니 금세 반질반질 좋아한다.


척에게 ‘윌슨’이 있다면 내 옆엔 늘 ‘갠차나’가 있다. ( 윌슨: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공동주연.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떨어진 주인공 ‘척’의 유일한 친구. 배구공이다. )


척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단 하루도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날이 없다는 것이다. 태생이 토론이나 논쟁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뭔가를 결정하려면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열띤 논쟁을 벌여야 할 때도 있고, 말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몇 시간을 내내 혼자서 말하기도, 반대로 온종일 다른 사람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을 있다가 뒤돌아서 혼자인 순간,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몰려들 때가 있다. 이상하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비대면 미팅이 흔한 요즘엔 특히 그렇다. 모니터를 끄자마자 약간의 여운도 없이 모든 자극이 한꺼번에 뿅! 사라지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바로 훅! 치고 올라온다. 


외롭다는 건 좀 지속적인 감정인데 그런 감정이 덩어리로 뭉쳐서 일시에 심장 어택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갠차나'가 내 옆에서 온몸을 흔들며 서 있다.




의인화
anthropomorphize



‘윌슨’과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척과 ‘갠차나’를 쓰다듬는 나의 마음을 심리학에서는 의인화anthropomorphize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의 심리학자 니콜라스 에플리Nicholas Epley는 ‘외로움과 사물 의인화와의 관계’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사람들은 외로울 때 애완동물이나 식물, 심지어는 배구공 같은 사물에도 감정을 이입하고 교감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리 지어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롭다는 느낌은 우리의 마음을 지탱하는 사회적 연결고리가 약해졌으니 얼른 살펴보라는 일종의 정신적 신호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뿌리가 내릴만한 곳이 늘 필요하다. 이렇게 혼자서 마음이 부대끼면 무엇이든 곁에 두고 마음을 보살펴야 할 때도 있다. 갠차나도 좋고 윌슨도, 한동안 유행하던 애완돌도 좋다.






종일 왕왕거리던 스피커와 마이크를 끄고 멍하게 앉아있는데 오랜만에 얼굴보니 참 좋더라고 카톡이 왔다. 나도 참 좋더라고 했다.




작가의 이전글 겐차야자는 해를 보지 못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