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여느 아이들처럼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법도 모르고 책임감도 없이 그저 예쁘다고 애완동물을 키운 결과가
애완견 공장, 유기견, 학대 같은 문제가 됐어.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절대 동물을 키우지 않을 거야.
동물을 알고, 사랑하는 법을 알고 배우고 나야 키울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똥도 잘 치워주고 산책도 시켜줄 거예요.”
“다짐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야.
정 키우고 싶으면 키우고 싶은 동물에 대한 책 세 권을 읽고,
다른 사람의 동물을 일주일간 봐준 후에 보자.
이 정도도 못하면 똥 잘 치우고, 산책 잘 시켜준다는 다짐을 지킬지 알 수 없어.
동물을 사랑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겠다 하면 그때 키울 거야.
그리고 만약 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사지 않고 입양하자,”
이런 조건을 내걸면 딸이 당장 책을 집어 들고 다른 집 강아지를 돌볼 줄 알았다.
예상외로 깨끗이 포기를 한다.
햄스터도 안돼, 토끼도 안돼, 물고기도 안돼...
그 무엇도 잘 기를 수 있는 행동을 보여주기 전에는 안된다 했더니 동물을 사랑하는 딸이 독점적으로 관찰하고 교감하는 대상이 길에 널려 있는 길고양이들이다.
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고,
이름을 송이라고 지어줬다.
하굣길에 송이 만나서 놀다 들어오고, 집에 있다가도 송이를 보고 오겠다고 나갔다 온다. 한동안 길고양이 송이에 애정을 보이더니, 학교 다녀와서 자기 시간 보내느라 정신을 뺏기자 송이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어느 날 폭염이 누그러져 저녁 기온이 살만해진 어느 날 우리 세 가족은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었다. 한 고양이가 아파트 주차장을 활보하는 정도를 지나쳐서 아예 차 지붕에 도도하게 앉아있다. 순간 정원이도 딸도 멈춤.
"뭐 해? 안 가고~~ "
둘 다 요지부동이다.
"송이야?"
"응"
둘이 절대 먼저 아는 척 안 하기 내기라도 하듯 바라만 본다.
먼저 송이가 어슬렁 어슬렁 내려온다.
그리고는 언제 침묵을 지켰냐는 듯 야옹 야옹 큰 소리로 울어대며 우리 가족의 주변을 맴돈다.
동물의 소리와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듯기에도 마치 여의도 불꽃놀이 축제라도 벌어진 듯한 기쁨의 소리이다. 둘의 교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캣맘이 조금씩 준 음식이던, 쓰레기 더미에서건 어떻게든 먹고 살았을테고. 아파트 지하건, 구석의 틈이던 어떻게든 비 피하며 살았을 거고, 폭염에 아파트 세대가 뿜어내는 더 뜨거운 환풍기 바람도 어떻게든 견뎌냈을 것이고, 병균 옮는다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뎌냈을 송이를 바라보고 만져주고 친구가 되어 준 사람이 딸 말고 또 있었을까.
먹을 것, 살 곳 다 필요하지만 죽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
사랑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딸이 많은 어른조차 하지 못했던 문자 그대로 "사랑의 실천"을 하고 있다.
딸과 헤어질 때쯤이면 인도끝까지 따라 오다가 쿨하게 자기 갈 길 가던 고양이들인데 이 날은 얼마나 그리웠는지 굽이 굽이 아파트 사이를 헤치고 집 앞까지 갸르릉거리며 따라온다.
송이랑 송이를 좋아한다는 친구 고양이 둘 다 지난 여름 생존과 사투를 벌인 듯하다.
비만이었던 송이는 몇 달 전보다 더 살이 올랐고, 친구 고양이는 반대로 삐쩍 마르고 털 상태가 형편없다. 마음이 아련하고 눈물이 핑 도는데 버려진 동물들을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사랑하는 법을 실천하는 마음도 지식도 부족하다.
이 날을 기억하자. 언젠가 버려진 동물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기약없는 다짐만 하고 우리 셋만 따뜻한 먹을 거리가 있는 아늑한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