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그림은
뚫어지게 바라보는 관찰, 작고 귀엽고 따뜻한 감성, 자연과 우리 전통에 대한 사랑. 서정적인 색감, 만화풍
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그 누라 뭐라 한들 자기식으로 그린다.
배경과 소품은 달라지지만 인물은 동일하다.
5살에 개발한 이후 진화, 발전시킨 사랑해 마지 않는 자신만의 캐릭터이다.
우리 부부가 딸의 창작 세계를 위해 지원하는 것은
관찰할 수 있는 곳을 데리고 다니기, 관찰 시작하면 계속 관찰하라고 기다려주기.
나한테는 수학 점수보다, 영어 실력보다
딸의 창작 세계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그린 그림이 수천 장에 달한다. 장난감을 정리할 때에도 이 그림들은 절대 버리면 안된다 해서 모아두었다. 어느 날은 이 종이들을 보기 좋게 모아두고 싶다며 수천 장의 A4 용지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큰 바인더 두 개를 사주고 3공 펀치로 스크랩하는 요령을 알려줬다. 또 엄마의 욕심을 담아 간단한 카테고리 연습이라도 해보라고 인덱스 카드 쓰는 법을 공들여 설명해 줬건만 인덱싱 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보인다. 그렇게 수천 장을 인덱싱 하나 없이 ‘끼워두기’만 했다.
글이 몇 자 없어 난 아무리 봐도 그 그림이 그 그림 같은데 당사자는 다시 봐도 그 때 느낌이 생생하다고 낄낄거리며 즐겁게 빠져든다.
정리는 10, 다시 보면서 추억에 빠져 드는 게 90.
초저녁에 시작된 작업은 밤늦게까지 끝날 줄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이 스타일만 고집하더니 얼마 전부터 아이패드의 스케치 앱을 사용해 보더니 푹 빠졌다. 예의 좋아하는 그림을 펼쳐놓고 그대로 따라그리는 것인데 따라그릴 때에도 자기 풍이 살아있다. 아이패드에 저장된 자기가 그린 그림을 펼쳐 놓고 흘깃 흘깃 본다. 왜 계속 보냐고 물었더니 짜증날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면 그림이 좋아진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아빠가 사다 준 흑요석의 한복 일러스트레이션 책에 빠져 있다. "역시 한국 그림이 최고" 라며 단번에 민족적 자부심과 관심을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냐며 흑요석이라는 작가를 존경해 마지 않는다. 이 작가의 다른 책도 사달란다. 반 년 이상을 곁에 두고 교과서처럼 끼고 살았다.
얼마 전 화실 선생님이 그림 대회에 출품해 보라고 해서 그림 한 장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하루면 될 줄 알았던 그림을 10시간째 배경만 그리고 있다. 장인이라고 돌려 표현하시기는 해도 내심 10 시간 가까운 시간을 들여 밑그림만 그리고 있으니 주변 모든 사람들이 딸의 달팽이 같은 속도에 혀를 내두른다.
소묘도 아닌 수채화 밑바탕을 위해
말도 안되는 시간을 투입한다.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그리던 방식을 떠올려보면 한구석의 작은 디테일 그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정작 중요한 핵심과 색칠은 시간에 쫓겨 휘갈긴다. 그래도 본인이 아니다 싶은 것은 죽어도 대충 하지 못한다. 남다름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데서 오는 것. 당당하고 멋지다.
딸의 작업물은 그 당시의 생활, 풍경, 경험, 생각들의 총합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어디 있으랴.
몇 백 만원 주고 입시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서 만든 포트폴리오보다
몇 백배는 멋지다.
볼 사람 하나 없으니 몇 천 장을 인덱스 카드 하나 없이 꽂았다 한들 상관이 없다. 본인이 그림을 보며 울고 웃는 것으로 이미 최고의 포트폴리오이다. 나한테도 명문 학교 합격, 수상 실적보다 수천 배는 값진 딸아이 창작 활동의 결과물이다.
느린 아이는 부모를 답답하게도, 걱정시키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비할 수 없는 최강점이 있다. 관찰력, 세밀함, 확고한 내면, 집중력…
유명 아티스트의 전시회를 가보면 독특한 세계관, 혼자만의 작품 세상, 괴짜처럼 한 두 가지에 꽂혀 지낸 어린 시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보면 천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푹 빠져 했던 시간의 결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큰 성공은 시대, 운, 트렌드를 예견하는 안목 등 많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작은 성공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전시회에서 나올 때마다 정원이에게 “딸, 딸도 이런 애니메이터가 될 것 같애” “이런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것 같애.”라고 갖다붙인다.
말이 안되기도 하지만 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확고한 자기 세계'가 있기는 딸도 그 아티스트에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전시회에서 우리 딸은 어떤 사람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