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화) 색(色), 계(戒) (장아이링)
욕망과 계율 사이에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성과 감정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인간의 삶은 많은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선택의 결과가 모인 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미래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한 때 모 코미디언이 연기했던 인생극장을 떠올려 보면, ‘그래 결심했어’라고 말한 후 선택으로 인한 다른 삶이 연출된다. 물론 실제 인생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같은 시간을 여러 번 살 수 없기 때문에 갈등한다. 선택의 순간 이성이 차지하는 부분이 95%이고, 감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5%라고 할 때 과연 우리는 95%의 이성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까? 상식적으로 자신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알게 모르게 감정에 의존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장아이링의 <색계> 역시 이러한 인간의 선택에 대한 갈등을 보여준다.
왕지아즈는 연극에 이끌린다. 무대에 서본 사람들은 그 설렘을 즐기거나, 도피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왕지아즈는 설렘을 즐기는 쪽이다. 그녀의 삶 자체를 연극 속으로 몰아넣는다. 맥 부인을 연기하는 왕지아즈는 암살하려는 대상인 이선생과 사랑에 빠진다. 암살 동참자 왕지아즈, 이선생을 사랑하는 맥 부인. 하나의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삶이다. 나중에는 연기가 삶이 되고, 삶이 연기가 될 수 있다. 경계에서 외줄 타기를 하듯 살아가지만, 결정적인 순간 이선생에게 도망가라고 한다. 이 순간으로 인하여 암살을 실패하고, 암살을 기도했던 일당은 모두 목숨을 잃는다. 왕지아즈도 예외일 수 없다. 자신이 마음에 둔 여인을 죽이라고 명령할 때의 이선생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물론 소설에서는 순간처럼 지나가지만, 내면의 갈등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이선생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건 여인을 버린다. 남성은 머리로 결정하고, 여성은 가슴으로 결정한다는 추론을 할 수 있지만, 개인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색계>는 소설에 비해서 영화가 더욱 디테일한 느낌이다. 분량이 짧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소설에 없는 부분을 추가해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세 번에 걸친 정사장면이라던가, 불안한 심리를 나타내는 눈빛 연기는 소설과 다른 재미를 준다. 선택에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에게 올바른 선택이 타인에게는 잘못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급박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은 많은 오류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타인에게 결정을 위임하거나, 죽음밖에는 없는 것일까?
유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