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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혜 Sep 21. 2022

결혼, 꿈과 현실 사이에서 어느새 소중함을 잊었다면

뮤지컬 하데스 타운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본 건

지난 결혼 11주년 기념일 즈음의 가을이었다.

남들은 특별하다며 이것저것 하는 10주년도

아무 일 없이 넘겼으니 11주년 역시 그랬다.

하긴, 결혼도 이벤트며 프러포즈 같은 게 없었다.

워낙 무던하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남자다.


뮤지컬 하데스 타운은

토니상 8관왕에 빛나는 브로드웨이 화제의 극이다.

이걸 세계 최초로 한국가져와 공연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돌아보지 말랬는데 돌아봐서 아내 뺏긴 멍청이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왜 봐야 해?라고 했다가
 끝난 후  본 내 주둥이를 원망던 극.


나오는 길에 다음 표를 잡아 남편과 보러 다녀왔다.

그날은 등학생 아들을 잠시 친정에 맡기고,

공연장 근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와 와인을 한 잔 하고 공연장으로 갔다.

내가 공연을 예매하자 남편이 식당을 알아본 것이다.


아, 속으로 불만을 쌓을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먼저 하거나 말을 하면 되는 거였구나.

가끔씩 이 간단한 걸 까먹네.

너 때문에 깨진 흥을 책임지고 있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 뮤지컬에는
두 커플이 나온다.

노래 만드는 재능을 타고난 오르페우스와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에우리디케.
둘은 금세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남자는 방에 박혀 세계를 구할 노래를 만들고
그사이 여자는 장작과 음식을 구하러 다닌다.


다른 커플은 년의 저승의 신 하데스와
세상에 빛과 따스함을 주는 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는 1년에 2/3은 지상에 머물지만
1/3은 남편이 있는 지하 하데스 타운에서 살아야 한다.
 시기에 지상 겨울이 찾아온다.

두 배우가 진짜 부부라 볼 때  더 꿀잼ㅋㅋㅋㅋ


밝은 에너지의 페르세포네는 답답하다.
아내가 집에 붙어있길 바라는 남편은

자꾸 일찍 찾아오고 늦게 데려다줘서
지하인 하데스 타운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지상은 계절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를 비롯해

지상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지고,
페르세포네 또한 남편이 사업에 몰두해

나이 들수록 냉혹하게 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다. 


그래서 지쳐가는 마음을 알코올로 달래 본다.


하데스는 하데스 대로 공장 돌리고 장벽을 쌓는 게
사랑의 증라며 열심히 일 한다.
보면서 우리네 아버님 아닌가 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으로써 가족들을 편하게 해 주겠다며

열심히 돈 벌지만 어느새 가족들과 유대감은 끊긴.

지친 페르세포네와 부부싸움을 한 하데스는
'아이씨 이런 거 고마워할 여자
내가 어디서 못 구할 거  같아서
너랑 사는 줄 아냐?'면서 (이런  사를 하진 않음)
남편 뒷바라지 중인 에우리디케에게 접근한다.

냉혹한 생계에 지친 에우리디케는

하데스를 따라 하데스 타운으로 가고
오르페우스는 뒤늦게 아내가 사라진 걸 알게 된다.


이  부분을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뭔가 지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느낌어서
돈이 좋고 희망을 따라가고 그런  아니라
그만 편안해지고 싶어 하는 모습에 찡해졌다.

오르페우스는 힘들게 지하 세계로 찾아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지난 사랑을 일깨우는

노래를 불러 하데스 설득에 성공한다.


하지만 조건이 붙어있다.

다 나갈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

지옥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보다 훨씬 간단해 보이고

에우리디케 또한 남편을 믿고 잘 따라가고 있었지만

오르페우스는 어두운 길을 걸으며 불안해진다.


결말을 알면서도 설마 하며 조마조마하다가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가 잘 있나 돌아보면서
음악이 뚝 끊기는 순간 정말 가슴이 철렁.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가던 헤르메스가 나타나

시간을 돌려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 슬픈 사랑 이야기를...
하지만 이상하게 희망이 섞인 이 이야기를.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뮤지컬을 보면서
오르페우스를 꿈에,
에우리디케를 현실에 비유하고 있었다.

꿈? 좋지.
근데 먹고사는 건?
힘든 현실에 밀려 하데스 타운으로 가면
다 같이 이름도 잊고 정체성도 잃고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삶을 산다.

결국 나를 나답게 하는 건 꿈인데,
그 길을 혼자 걷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앞이 캄캄하다, 이 길이 맞나, 제대로 가고 있나,
외로움과 각종 의심이 귀에서 속삭인다.

그 시간은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다.

결국은 나를 믿고 내 꿈을 믿고 앞을 보고 가야 한다.
알고 있다.
리로는 간단하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게 인간이다.

그렇다고 그게 끝인가? 가치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극이 말해주는 것 같다.


노래를 들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화해로
지상은 계절균형 평화를 되찾았고
그들은 다시 이 이야기를 반복한다.
이번엔 혹시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지만 다르지 않아도 괜찮 것 같다.
이 시간들 자체가 모여 인생이  되는 거니까.

하데스 타운을 보면서
나는 페르세포네가 되기도 하고
에우리디케가 되기도 하며 울고 웃었다.

극장 밖을 나가면 하데스 타운의 일꾼처럼

회색의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겠지만
튼콜 때 잔을 높이 들었던 마음은 품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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