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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혜 Oct 23. 2022

우리가 금쪽이를 대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외국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답게 한국사람의 정서를 듬뿍 반영했다. 매우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웅장한 넘버와 어우러져 정신 차려보면 1막이 끝나 있고 숨 한번 쉬면 2막도 끝나 있을 정도로 흡입력이 굉장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가 인생이 망가진 인간의 이야기로 보인다. 소설은 주인공인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과학기술로 생명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시체를 모아 괴물을 만들었고, 막상 만들고 나니 흉한 모습에 흥미가 떨어져 괴물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뮤지컬은 엄마의 죽음에 트라우마가 있어 생명 창조에 대한 연구를 하던 프랑켄슈타인이  자기 대신 사형당한 친구를 되살려보고자 실험을 강행한다. 하지만 깨어난 창조물은 친구가 아니라 난폭한 괴물이었고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라는 생각에 오랜 시간 휩싸여서 살아간다.

프랑켄슈타인(뒤)과 전쟁에서 만난 친구인 의사 앙리 뒤프레(앞)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생명 창조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의 창조물이자 아이를 낳음으로써 창조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을 두 번, 세 번 볼수록 이건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부모가 멋대로 만들어놓고 이름도 지어주지 않고 사랑도 주지 않은 채로 자라야 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


소설 속 크리쳐는 도망치다가 한 집에 숨어 살면서 그 집의 가족들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처럼 그저 평범한 인간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외적으로 달랐고 그로 인해 배척당한다. 크리쳐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찾아가 여자 크리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박사는 그 꿈을 이루어주지 않는다.  


뮤지컬 속 괴물도 도망치다가 한 싸움판에 머무르게 된다. 오로지 괴물의 힘만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괴물보다 더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며 괴물을 학대하고, 감정을 교류했다고 생각한 여자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를 독살하려 하는 등 잔혹한 일을 거듭 겪는다.


크리쳐, 괴물에게 증오와 복수심을 채운 건 누구일까. 내가 만든 생명에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사랑을 줘서 키웠다면 어땠을까. 작가인 메리 셸리의 인생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열아홉 살에 프랑켄슈타인을 쓴 이 천재 소녀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지식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 새어머니와는 마찰이 있었고, 여자라는 이유로 소설은 남편 이름으로 발표해야 했다. 메리 셸리에 대한 책과 영화를 보면서,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고 차별받지 않고 싶어 하는 괴물의 모습이 마치 이 소녀의 비명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조건 없는 애정, 그것만이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낳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자 의무다. 최근 몇 년 간 기사에서 너무나 많은 아동 학대와 유아 살인을 접했다. 아이는 마음대로 만들었다가 버리거나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런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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