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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혜 Oct 29. 2022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도, 누구를 용서하는 것도 나야

  뮤지컬 서편제

어렸을 때 영화 서편제를 보고 편견이 있었다. 시대와 남자들에 의해 희생당한 여성의 이야기 아닌가? 안 그래도 생활이 빡빡한데 우울한 이야기를 보고 싶진 않아. 그러다 2022년 공연이 라이선스가 완료되기 전 마지막 시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은 볼까 싶어 갔다가.... 아앗, 내 통장에 사고가 났어요!


뮤지컬 서편제는 내가 생각했던 극, 즉 아버지가 욕심에 딸 눈을 멀게 하고 남동생은 누나를 떠나고 주인공은 그렇게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 이게 그게 그건 맞는데..... 전체적인 틀이 비슷해도 추가된 대사나 행동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기에 여성 연출가 이지나 님의 이 극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와 둘이 살던 5살의 동호는 어느 날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 유봉과 7살 누이 송화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곧 유봉의 아이를 낳다 죽고 동호는 유봉, 송화와 함께 소리를 찾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쭉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다는 마음과 엄마는 유봉 때문에 죽은 거라는 원망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자란 동호는 판소리보다 막 들어오기 시작한 팝송에 마음을 뺏기고 미군 위문 부대에서 공연하는 밴드에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합격한다.


누나가 하고 싶은 소리가 있듯이 동호도 하고 싶은 소리가 생겼던 것이다. 떠나는 동호를 잡으러 온 송화는 그 이야기를 듣자 더 이상 잡을 수 없어 보내준다. 자신이 판소리를 사랑하는 만큼 동호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는 네 소리 찾고 나는 내 소리 찾고 다시 꼭 만나자며 헤어진 둘은 각자의 길을 걷는다. 동호는 밴드 스프링 보이즈의 멤버로 위문 공연을 다니고, 다시 유봉과 둘이 된 송화는 자신의 소리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한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송화는 노력과 연습에도 잘 되지 않는 속상한 마음에 아버지 유봉과 다투다가 소리 안 하고 동호 찾아가겠다는 말을 하고 방에 들어가 버린다. 사실 유봉은 젊은 시절 판소리의 촉망받는 인재였지만 조급한 마음에 모든 기회와 장래를 잃고 혼자 소리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던 처지였고 딸에게 모든 기대를 걸고 있었다.


딸과 평생을 바친 소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지금 한계에 부딪힌 딸에게 필요한 건 깊은 '한'이라는 생각이 맞물려 유봉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 딸의 눈을 안 보이게 만든 것.

처음엔 평생을 원망할 거라는 송화는, 자신에게 불가항력으로 닥친 이 불행을 끌어안기로 '선택'한다. 나중에 찾아와 화내며 울부짖는 동호에게 단호하게 말하는 부분에서 송화의 인생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도 나고,

하고 싶은 소리를 하는 것도 나고, 

누구를 용서하는 것도 나야.


너는, 네 소리 찾았어?"

그 말을 들은 동호는 더 이상 송화를 붙잡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모습에서 벗어나 직접 노래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그 사이 송화는 평생을 의지하며 살았던 아버지를 여의고, 동호는 혼자가 된 송화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찾아 헤매지만 닿지 못한다. 그렇게 둘은 만나지 못한 채 송화는 송화만의 소리를 찾고 동호는 동호의 길에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송화를 잊지 못하는 동호는 동료의 도움으로 결국 송화 앞에 나타나 소리를 청한다. 둘이 헤어져있던 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성장한 송화의 심청가를 끝으로 서편제는 막이 내린다.



보고 온 날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나는 나만의 소리를 찾았나. 찾는 과정 안에 있기는 있는 것일까. 이불속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결국 이 극 질책이 아닌 사랑을 말하는구나, 싶어 진다.


동호 엄마가 어린 동호를 염려하여 끈으로 묶고 일하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젊었을 땐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동호를 만나 묶였다, 아들도 언젠가는 자유로움의 외로움을 알겠지. 사랑한다, 는 내용이다.

유봉과 동호 엄마는 아이를 낳을 때 잡는 끈으로 둘 사이의 결실을 표현하고(결과는 좋지 않았지만ㅠ), 눈이 먼 송화는 원망스러운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유봉과 끈을 앞뒤로 잡고 걷고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반대로 송화가 끈으로 아버지를 인도해 저 세상으로 보내준다.

극에서 반복되는 끈이 뭘까 하면서 보니 사랑인 것 같다. 동호가 엄마에게 묶여있지 않으니 도망가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그건 자신이 선택하는 인생의 인연이라는 걸. 동호 자신도 남들이 보면 어리석다 하겠지만 꼭 매여있는 것처럼 평생을 송화를 찾아 헤매니까.

개인적으로는 동호가 스프링 보이즈 구경하다 잡혀서 유봉에게 대들 때 엄마를 돌려달라고 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유봉의 제일 약한 부분인 걸 동호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 싶어서 속으로 혀를 차다가, 유봉도 네 엄마 대신 네가 죽었어야 했다는 헛소리를 하면 객석의 나는 '저 부자는 결국 서로 닮았구나' 싶어 지기 때문이다.




석 달 동안 서편제를 보면서 극 중 인물들이 내 안에도 있는 한 단면을 각각 보여주는 것 같아 매번 같이 울고 웃었다.

 송화는 나의 꿈이었던 것 같. 뭔가 하고 싶고 해내고 싶었던 모습... 사실 송화처럼 어린 나이부터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있고 평생 매진하기는 쉽지 않. 인생에 갑자기 닥친 불행에도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도 나고, 누구를 용서하는 것도 나라는 심지 굳은 모습이 참 대단해 보이고 등대의 불빛처럼 의지 됐.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 동경하기도 하고. 아마 동호도 그랬을 것이다.

반면 유봉은 현실에 부딪히는 나의 청춘 같았다. 애쓰고 노력하지만 현실에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다 가끔 나 자신도 이해 못 할 선택을 하는,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런 행동을 했을 나. 40대라 그런가 항상 '청춘!!!!'이라며 단가를 부르다 죽는 유봉이 내 눈물 버튼이었다. 참 인생이 뭐라고.....

 동호는, 동호는 게 사랑이었다. 엄마에게 사랑받았고 그래서 송화를 사랑할 수 있는. 엄마에게 묶여있지 않으니 도망가라고 하지만 결국 자신도 묶여있지 않은 자유와 외로움을 선택하는 대신 유구한 세월을 사랑을 찾느라 바치는 인물.

송화는 아버지가 죽고, 동호 없이 정말 자신에게 소리만 있었으면 살 수 있었을까. 동호가 자신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매번 피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기쁘지 않았을까. 소리만 쫓는 외로운 길에서 그래도 동호가 있어 살자, 살아보자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사랑이란 인생에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서편제가 남긴 여운이 크다. 곧 있을 중계와 지방 공연을 찾아, 소리를 찾아 나도 유랑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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