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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부기 아빠 Dec 24. 2022

기록하고 싶은 기억의 단상 C-1

2013년 12월 24일 을지로 입구를 지나며...

  세상 불쌍한 대학원생이던 시절, 2013년 12월 24일, 명동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렸다. 밤이면 을지로입구역에는 노숙하시는 많은 분들이 자리를 펴고 계신다. 오늘도 변함없이 많은 분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박스로나마 자신의 잠자리 주위에 방풍벽을 설치하고 계셨다. 그 광경을 보며 지나치는 찰나에 어디선가 아빠의 손을 잡은 한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이 사람들은 왜 여기서 자?"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어딘가 자신의 가족이 나가야 할 출구를 찾느라 바쁜 와중에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응, 노숙자야"


.

.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노숙자를 하나의 정물과도 같이, 길거리 가로수와도 같이 여기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인 것 마냥 다루게 되었을까. 물론 아이의 아빠는 아무런 악의 없이 아이에게 보편적인 사실을 전하였을 뿐이며, 나는 그것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숙자들은 날 때부터 노숙자였을리는 없다. 아마도 사업의 실패나 실업,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빚, 혹은 불의의 사고로 인한 노동력 상실 등 저마다의 말 못 할, 혹은 우리가 듣지 못한 사연으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간혹 어떤 이들은 노숙자들이 게으르고 영악하여, 사지 멀쩡 함에도 일하지 않고 쉽게? 밥 빌어먹고 사는 이들이라며 이들을 향한 자선행위나 도움의 손길들을 그만두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노숙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 나눠보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가혹하게 비난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위 이미지는 stable diffusion 모델로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어찌 되었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언제부터 우리의 사회는 노숙자들을 사람 많은 서울역 어딘가, 혹은 밤이면 지하철 역사 안에 둥지를 트는 이들로 그냥 여기며 우리네 삶과는 동떨어진 일로 여기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물론 이들을 보며 긍휼의 마음을 품고 단돈 얼마라도 기부하는 이들 혹은 기부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엾이 여기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대다수는 당장 자신이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없기에,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그 큰 벽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그냥 방치하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나도 그렇다ㅠ) 물론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노숙자들 또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자면 노숙자들은 우리 몸 어딘가 상처 입은 부위이다. 어디든 몸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그 몸을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은 아기 예수가 태어나기 하루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하나님이면서도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남루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이를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의 짧은 삶은 거지와 죄인, 버림받고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한 삶이었다. 결코 힘 있고 권력 있는 이들과 잘 먹고 잘 살던 삶이 아니었다. 그의 추종자들 조차 꺼리는, 천대받고 병든 이들과 먹고 마시며,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삶이었다.




  나도 10년 전 그날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 본다. 대학원생이던 그날의 나는 '언젠가 미래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라도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기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10년이나 지나 직장인인 나는 그다지 그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세상을 통해 누리고 있는 것에 비해 내가 나누고 있는 것은 너무 작은 것뿐인 것 같다. 30년 넘게 한결같은 헌신을 하고 있는 청량리 밥퍼 목사님 같은 일을 당장 내가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무언가를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Reference>

- 노숙자 '밥퍼' 사역, 다일공동체 : https://dail.org/

- '을지로, 겨울이야기' 2009 KBS 다큐, https://youtu.be/UPqNdoCR_tQ

- https://keras.io/guides/keras_cv/generate_images_with_stable_dif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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