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위상과 보수교육
이제 2019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맘때면 거리에 속속들이 연말 분위기가 한창일 때인데 나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나눔의 손길들 덕분에 더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 그래도 바쁜 이 시기에 나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한 가지 남았다. 사회복지사들은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 못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열어 남은 보수교육이 있는지 검색해 보니 올해 제주도에서의 교육은 이미 마감되 버렸다. 어찌됐거나 올해 안에 보수교육을 이수하려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야할 판이니 이런 낭패가 또 없다. ‘연 초에 진작 미리미리 받아둘 걸......’ 매년 하는 후회를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하고야 말았다.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
나에게 보수교육은 올해처럼 그렇게 뭉그적거리다가 연말이 돼서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억지로 마지못해 가고야마는 그런 교육이다. 하지만 내 게으른 핑계와는 달리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은 「사회복지사업법」 제13조 제2항에 따라 진행되는 법정교육이다. 사회복지법인이나 시설에 종사하는 사회복지사(주5일, 40시간 이상 근로자)라면 1년에 8시간씩 의무적으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나처럼 뭉그적거리다 혹시라도 보수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면 사회복지사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태료 20만원을 내야하는 어마어마한 교육이다. 아직까지 과태료를 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지만 나는 그놈의 20만원이 무서워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수교육을 받아왔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로서 국가가 정한 절차를 통해 획득한 전문자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보수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이하 한사협)는 보수교육을 “다양한 사회적 욕구와 문제에 시의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직무능력유지 및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 수준 높은 서비스제공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WHO(2005)에서도 보수교육은 “최근 정보를 갖고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고 종사자 측면에서 자신들이 전문직으로서의 경력과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고 했다. 또 미국사회복지사협회(NASW, 2003)는 “사회복지사들은 보수교육에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서비스제공에서 숙련도를 유지하거나 향상시키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기술이 정교화되고, 또 전문적 태도가 강화되며, 더 나아가 사회복지사 개인의 삶이 변화한다.”고 했다. 이정도만 보더라도 사회복지사에게 보수교육의 필요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할 만큼 매우 중요한 교육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회복지사인 나는 1년에 한번 보수교육을 받기가 이다지도 힘든 것은 사회복지사로서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보수교육의 추억
내가 보수교육을 자꾸 뒤로 미루는 이유는 아무래도 스스로 게으른 탓이 가장 크겠지만 사실 보수교육이 내키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또한 핑계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보수교육이 재미가 없다. 교육을 무슨 재미로 듣느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생각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막상 보수교육을 받으러 가서 교육장의 분위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원래 보수교육이란 것이 동종업계(?)의 사람들끼리 모여 대충 알만한 내용을 다시 듣다보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어느 시설장 강사의 경험담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강의 커리큘럼도 경력(직급)이나 직무에 상관없이 윤리와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딱히 실무적인 내용이 없고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제대로 된 보수교육을 받고 싶어 그나마 괜찮은 강의를 고르고 골라봤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교육의 내용 따위는 안중에 없고 빈자리가 남아 있는 교육이면 아무거나 들어야 할 판인데 올해는 이마저도 힘들게 됐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협회에 집단적으로 요구(거의 항의수준)를 하면 추가개설이 이루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는 이미 글렀지만 지난 보수교육을 추억해 본다. 요즘 같은 연말에 마지막 보수교육은 항상 북적인다. 막차를 잡아 탄 이유들이야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이렇게 바쁜 연말에 일과를 제치고 하루 종일 강의실에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심정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평소보다는 서둘러 30분이나 먼저 교육장에 도착했건만 명당자리(맨 뒷자리 또는 구석자리)는 이미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그나마 나도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맨 앞자리만큼은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 보수교육을 자발적으로 왔을 리 없는 사람들이, 그것도 100명 가까이 모여 앉은 교육장의 분위기는 당연히 좋을 리 없다. 강의 도중에도 전화를 받으러 들락날락하는 것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보나마나 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 아니면 다른 기관에서 걸려온 전화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측은한 마음으로 모른 척하는 것이 암묵적인 매너다. 혹시라도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될 것에 대비해 보조배터리를 챙겨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요즘에는 아예 교육장에 보조배터리 비치해 두거나 충전기를 설치해 놓은 교육장도 있어서 사회복지사들끼리의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도시락까지 먹어가며 하루종일 교육을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 강의부터는 몰려오는 졸음에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강의 중에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딴짓(?)을 많이 하는 것도 다 졸음을 쫓기 위한 것이라 믿고 싶다. 눈치 빠른 강사가 잠시 교육을 멈추고 단체 스트레칭을 시킨다. 다들 곧잘 따라한다. 한걸음 더 나가서 초면인데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라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짓은 더이상 안해도 좋을 듯하다. 스트레칭을 했지만 그 때뿐이다. 교육이 막바지로 갈수록 집중도는 점점 더 떨어진다. 그래도 보수교육의 최종목표인 출석부에 사인을 해야 하기에 끝까지 버티고 또 버틴다. 그렇게 대망의 세 번째 사인을 하고 교육장을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언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보다는 홀가분한 기분만이 남는다.
의무대상과 희망대상
올해는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이 시행된 지 딱 10년째 되는 해이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법안이 통과되던 2007년 당시만 해도 다른 전문가단체가 없애려는 보수교육을 왜 굳이 하려고 하느냐는 질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강령과 법정 보수교육의 유무가 전문가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굳게 믿고 지금까지 보수교육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전문가적 위상을 발전시켜 왔다고 한다(한사협, 2018). 대한민국 사회복지사를 대표하고 보수교육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써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내가 지난 10년 동안 빠지지않고 보수교육을 잘 받아서 얼마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지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회복지사의 전문가적 위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수교육의 통계를 보면 한 가지 원인은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 사회복지사 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작년에 1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회복지사는 5만 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사회복지사 통계연감, 2018). 그나마도 1만 명 정도는 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회복지사(의무대상)와 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복지사(희망대상)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동안 나는 사회복지사의 5%도 받지 않는 교육을 그다지도 꾸역꾸역 받아 왔단 말인가.
사회복지사와 보수교육
우리협회 회장님께서는 “보수교육에는 문제가 없고 과제만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우선 사회복지사 중에서도 보수교육의 대상을 따로 정해 놓았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복지 공무원은 또 보수교육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사회복지사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보수교육이라고 못 박으면 될 것을 무슨 이유로 주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보수교육을 주관하는 한사협은 우리나라에 사회복지사가 자격증을 가진 100만 명인지 아니면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5만 명인지 그것도 아니면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3만 명인지 그것부터 명확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집단의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할 때만 100만 사회복지사라고 외칠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스스로도 자신이 보수교육의 대상인지 잘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나도 얼마 전에 우연히 내가 보수교육 의무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나는 뭐하려고 보수교육을 받아왔는지 한심하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보수교육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전문가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했으면 좋겠다. 보수교육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위상을 높일게 아니라 반대로 사회복지사 스스로 자신의 위상부터 찾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내년에는 나도 사회복지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제대로 보수교육을 받아보고 싶다.
...알쓸복잡
<참고문헌>
한국사회복지사협회, 2018, 사회복지사 보수교육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한국사회복지사협회, 2018, 2018 사회복지사 통계연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