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질문이 된 단어 -¿por qué?

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프롤로그

by 로하

2001년 가을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본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고 한다면 억측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없던 나는 이 영화의 초반에 나오는 한 장면, 그러니까 6-70년대는 되어 보이는 낡은 자동차가 쿠바 아바나의 말라콘을 넘어오는 파도를 그대로 맞으면서도 유유히 달리는 모습에 시선이 멈추었다.


‘저런 곳이라면 내 눈으로 꼭 보고 싶다’


그로부터 3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쿠바 아바나를 보러 떠났다. 떠난 김에 3개월 남짓 남미의 다른 땅들도 만나보았다. 첫 해외여행 치고는 좀 세지 않느냐고 주변사람들은 말했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처음이란 다 센, 어떤 것이니까 말이다.


남미 페루의 마추픽추를 오르기 위해 3박 4일 잉카 트레킹을 할 때 같은 팀의 멤버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독일, 스리랑카 친구들 이었다. 그들 모두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 스페인어라고는 인사말 밖에 모르던 나는 매일 밤 그들의 스페인어 수다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영어를 하는 독일 친구가 가끔 통역을 해주었지만 소외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중 가장 많이 들렸던 단어가 ‘por qué́? (뽀르께) 였다.


“도대체 뽀르께가 뭐야?”

“왜? 라는 뜻이야. 스페인어에서는 물을 때도 뽀르께(¿por qué́? 왜?), 대답할 때도 뽀르께(porque 왜냐하면)라고 해. 그래서 아마 많이 들릴 거야”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았을까?’ 스페인어 인사말 다음으로 기억하는 첫 번째 스페인어 단어가 만들어낸 질문은 결국 한국에 돌아와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하게 했다. 딱히 무언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나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스페인으로 옮겨갔다. 고작 1년 정도 삶에 약간의 멈춤을 주자던 시간이었는데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을 더해 흘렀다.


흔히들 모든 시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스페인어의 첫 질문이 된 단어 ‘¿por qué́? (왜?)’

그 단어로부터 나의 두 번째 언어 스페인어와의 동거는 시작된 것이다.


2004, 12, 페루 마추픽추 가는길

스페인어에서 ¿por qué?(뽀르께)는 왜?라는 의문사이다. 대답할 때 쓰이는 '왜냐하면'도 발음은 '뽀르께'로 같지만 porque라고 붙여서 쓰고 끝을 내려 발음한다. 스페인어를 가르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질문이 '왜'라는 질문이다. 한국어로는 이유를 설명못해 안달이지만 외국어로 제대로 이유를 설명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많이 쓰는 표현이 'porque sí' (그냥 그러니까)이다. 허긴 모든 것에 꼭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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