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Me llamo

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2

by 로하

외국어를 배우면 외국어 이름을 하나씩 만들게 된다. 나 역시 한국에서 처음 스페인어 수업을 들으며 스페인어 이름을 지었다. 첫 이메일 아이디 만들 때만큼이나 막연하면서도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 남들이 쓰는 흔한 이름은 싫어서 고르고 골라 내가 선택한 이름은 ‘로하(roja 빨강)’였다.

이 단어는 이름으로 쓰는 단어는 아니어서 이름을 이야기하고 나면 ‘왜’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오곤 했다. 사실 신중하게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이유가 그렇게 거창하진 않았다. ‘한국 성의 ‘홍’이 가진 하나의 뜻(본래 내 이름의 ‘홍’은 ‘넓은’의 의미지만 나는 ‘빨간’이 더 좋았다.)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다‘는 것이 다소 빈곤한 이름의 변이었다.


한국에서는 스페인어 수업에서밖에 이 이름이 불릴 일이 없지만 스페인 생활에서는 달랐다.

“Me llamo Roja 메 야모 로하(나는 로하입니다)”

라는 대답이 쌓이면서 제로에서 시작된 관계들이 조금씩 늘어나며 나의 ‘로하’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일상에서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처음에는 뭔가 어색했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익숙해지더니 어느 날 누군가 골목길에서 ‘로하’라고 부르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이름이 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재밌게도 나의 스페인어 이름 ‘로하’는 스페인에서 수명이 그다지 길지는 않았다. 1년, 2년 시간이 지나며 관계가 지속되는 친구들이 생기도 그들은 나의 한국 이름이 뭐냐고 다시 물어왔다. 그들은 내 본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했다. 여전히 발음하는 것을 힘들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내 이름을 자기 방식대로 불러주는 친구들의 성의가 고마웠고, 그 이후로는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굳이 나의 이름을 스페인어 이름으로 말하지 않았다. 길면 1년 정도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조금 씩 늘어나면서 ‘임시’로 부여하던 것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단어나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름 안에 있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 시간들이 함께 불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쌓인 이후에는 나는 무엇으로 불리어도 사실 상관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나의 지인들이 우리가 쌓은 각자의 시간을 담아 나를 다양하게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 돌아와 스페인어 수업을 하며 스페인어 이름을 만드는 미션을 줄 때 항상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준다. 그냥 있는 이름을 찾아 쓰기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단어나 느낌을 담아서 한번 지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짧게 사라질 이름일 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의 두 번째 이름이 될 지도 모를 단어, 그 단어를 선택하는 일에 조금 힘을 주어보아도 괜찮을 테니 말이다.



스페인에서 이름을 묻는 질문 중 하나인 “¿Cuál es tu nombre?꽐 에스 뚜 놈브레 (네 이름이 뭐야?)"를 보면 ‘Qué’께(무엇)이라는 의문사 대신 ‘Cuál’ 꽐 (어느)’이라는 의문사를 쓴다. 스페인어 이름은 한국어처럼 조합으로 무한정 만들어 내는 단어가 아닌, 있는 것 중 선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이름이 유난히 많다. 나의 스페인 헨드폰 주소록에도 ‘바에서 만난 마리아’ ‘학교 친구 마리아’ ‘플라멩코 마리아’ 이런 식으로 저장이 되어 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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