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가는 길 중간에 모퉁이를 돌아 왼쪽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 장례 절차 때 쓰였던 상여를 보관하는 허름한 집이 있었다.
공동묘지를 생각만 해도 음침한 분위기가 밀려왔다. 더욱이 어스름한 상여 보관 집은 뭔가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올 것만 같은 항상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그 상여 보관하는 집은 말이 집이지 낮은 창고 형태로 비만 피하게끔 만들어졌다. 관리가 소홀해서인지 오래된 짙은 회색으로 바랜 초가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고 항상 어둠침침한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이상한 소문이 마을에 돌았다. 2~3년 전에 죽은 처녀, 총각이 몽달귀신, 처녀 귀신이 되어 이따금 간모레기 고개에 나타난다는 소문이었다. 간모레기 고개는 실제 마을 뒷산 쪽에 있었으며 C시나 D시로 가려면 그 고개를 넘어야 했다.
몽달귀신 등의 이야기는 전혀 헛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마을에 사는 한 청년이 같은 마을에 좋아하는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웃어른들이 반대해 결혼을 막는 바람에 두 남녀는 건너편 산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흉측한 소문도 소문이려니 와 허름한 상여 보관 집은 간모레기 고개와 멀지 않은 데에 위치해 괜스레 섬찟했다. 더군다나 간모레기라고 통상 부르던 고개는 간이 모레쯤이면 떨어지리만큼 어두컴컴한 어둔이 산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소문도 겁나는 데 모퉁이를 돌아서 상여 보관 집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로 갈 때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곤 했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서.
모퉁이를 지나면 그 상여 보관 집은 내 뒤편에 위치하므로 매번 뒤통수 쪽이 무엇인가가 잡아끄는 듯 항상 켕기었다.
문제는 학교를 파하고 돌아올 때이다. 그 상여 보관 집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모퉁이를 돌아가므로 어김없이 어두컴컴한 그 집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다.
먼 길을 택해 아랫길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나 친구들 앞에 무서움을 인정하는 꼴이어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이 작당하여 그 집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자고 나를 부추겼다. 두려움이 밀려왔으나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서 마지못해 쫓아갔다.
그날은 나에게 최악의 날이었다. 어두컴컴한 상여 보관 집 장막을 빠끔히 젖히는 순간, 어둠에 가려졌던 상여의 부분 조각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상여의 부분 조각들은 요란한 채색도 채색이려니 와 기묘한 형상들로 구성된 나무 조각들이 얼기설기 해체되어 벽 쪽에 세워 놓았다. 그 나무 조각들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무서운 괴물들이 당장이라도 습격할 것 같은 자세였다.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실내의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상여의 실체는 올곧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나무 조각들이며 다만 색칠을 울긋불긋 요란하게 하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존주의 상담학파는 두려움에 대해 직접 마주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불안에 떠는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의 실체를 낱낱이 벗겨 그 진짜 모습을 알게 한다.
상여 보관 집을 점거한 괴물들은 상여의 부분별 나무 조각 뭉치들에 불과한 모습이라고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비록 나무 조각 들이 울긋불긋 색칠하여 괴기한 형상의 괴물처럼 보였지만.
그때 단순한 나무 조각 뭉치인 것을 보면서 ‘별것 아닌 데, 괜히 무서워했네.’라며 두려웠던 기억들이 사그라지는 것과 같다.
나는 만약 상여 보관 집의 내부를 직접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오랫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먼 아랫길을 택하여 오고 갈 것이다. 보는 것을 피하려 안전감 뒤에 숨고자 했기 때문에.
또 나는 그 길을 어차피 가야 할 때는 상여 보관 집을 눈으로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회피하는 자세를 오랫동안 지속했을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땅만 보고 가는 달갑지 않은 지질한 모습으로.
비록 아이들 꼬임에 말려 상여 보관 집을 보기는 했으나 그때 보았기에 망정이지 나무 조각 뭉치들을 오랫동안 귀신 나부랭이로 착각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때 이후부터 나는 어떤 두려움도 ‘견딜 만하다’라는 간이 비교적 큰 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