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세속화되어서

by 스테파노

나는 수유리에 있는 4.19 공원묘지를 자주 가는 편이었다. 지금은 이사 와서 멀리 떨어져 있어 가지는 않지만 젊었을 때는 괴로워도, 외로워도, 서글퍼도 그곳을 찾았다.


4.19를 추모해서 기념일 날 간 경우는 딱 2번 밖에 없다. 대학교 때 서클에서 회원들과 함께 가서는 추모의 글을 읽고 그 글이 문제가 될 것 같아 추도문을 서둘러 파괴했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번은 대학원 시절 같이 다니던 친구와 고교 동문 선배들이 한 팀이 되어서 갔었다. 그중에는 민청학련 때 옥고를 치른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를 위시한 우리 일행과 묘지 주위에 추모의 뜻이 없어 보이는 젊은 패거리들과 시비가 붙어 소란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그리고는 기념일에는 간 적은 없다.


기념일에 대한 기억은 추모보다는 추모를 감시하는 사람들, 추모를 자기들만의 특권인 양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 추모와는 거리가 먼 동네 왈패 같은 사람들이 참배객보다는 훨씬 많아 보였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참배객이 적은 평일에 많이 갔다. 사람들도 얼마 없고 참배객은 없거나 간간이 한둘 보였다.


나는 묘지와 묘비명을 보면서 나를 반성해보는 일이 많았다. 젊은 나이에 그분들이 죽음 앞에 마주해서 한 고뇌는 어떠했을까? 그분들이 죽음 앞에서 한 고뇌의 질적 내용이나 양적 크기를 나의 하찮은 고민거리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닌가?


저분들은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나는 조그마한 신상의 고민을 해결치 못하고 이렇게 절절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더듬으면서 걷다 보면 나의 가슴이 차분히 내려앉으며 고민은 해결의 길이 보였다.


공부하다가도, 진로를 고민할 때도, 직장에서 일이 안 풀려도, 나는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멀어서 못 간다. 아니 멀어서 못 간다는 것은 핑계이고 내 마음이 세속화되어서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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