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완행열차는 더디게 갔다. 경기도 북부 D 역에서 충북 중부의 B 역까지 6시간이나 걸렸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작은아버지 댁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B 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훌쩍 지나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나는 역 근처에 있는 중국집으로 가자고 했다. 배도 고프고 입맛에 당기는 짜장면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국밥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국밥집은 조금 걸어야 했다.
매번 장손의 의견을 우선으로 삼던 할머니는 그날따라 주장하심이 의외로 강하셨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기차를 오래 타서 멀미가 나신 데다가 삶은 달걀, 오징어 등을 드셔서 속이 불편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미안함에 군소리 없이 할머니가 주장하신 국밥집으로 갔다. 국밥은 뚝배기에 밥을 밑에 깔고 소고기, 파를 우려낸 국물을 부은, 말 그대로 한 그릇의 국밥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우고 덤으로 나온 국물까지 다 비웠다.
나는 “차멀미하신 것은 어때요?”라고 여쭤보았다. “뜨끈한 고깃국물이 들어가니 더부룩한 속이 시원하게 내려갔어, 미안하구나, 짜장면을 사주어야 하는데, 나중에 사줄게.”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짜장면을 못 먹은 나의 서운함은 할머니의 알아주심에 눈 녹듯 사라졌다.
“오이냉국은 뱃속까지 시원하지만 뜨거운 국밥을 드시면서 왜 시원하다고 해요?”라고 할머니께 의아심을 숨길 수 없어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뜨끈한 국물이 속을 편안하게 했으니 시원하다고 말하는 거지.”라고 말씀하셨다. 설명을 들어도 나는 산바람을 맞을 때처럼 청량함이 온몸으로 느껴져야 시원하다는 고정관념에 푹 잠겨 있었다.
2년 후 나는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충북 C 시로 갔다. 중학교 1년 말쯤인가 아버지와 함께 ‘00 육개장’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친척 집에 기거하며 공부하던 나에게 아버지는 뜨거운 고깃국물이라도 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육개장은 할머니와 함께 먹었던 국밥과 유사하나 훨씬 감칠맛이 있었다.
그때도 아버지는 “국물 맛이 깔끔한 게 속을 편안하게 하는군, 국물이 아주 시원한걸.”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 배려도 잊지 않고 “돈 생각하지 말고 출출할 때 이 집 육개장이 시원하니 종종 들러 사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아버지도 시원하다고 하시면서 속을 편안케 한 따끈한 고깃국물의 효능을 인정하셨다.
중,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이따금 고깃국물이 그리울 때면 아버지께서 길 틔워주신 00 육개장집을 갔었다. 그 집 육개장은 나를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었다. 국물이었다. “국물이 아주 시원하네.”라고 감탄하면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온몸으로 시원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원하다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홀로 육개장집을 다니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뜨끈한 국물로 속이 펑 뚫리듯 편안해질 때 ‘시원하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국어사전에서는 ‘음식이 차고 산뜻할 때’도 또 ‘음식이 뜨거우면서 속을 후련하게 하는 점이 있을 때’도 시원하다고 한다. 후련하다는 ‘좋지 않은 속이 풀리거나 내려서 시원하다’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시원하다는 ‘뜨거운 음식으로 불편한 속을 풀리게 하거나 내릴’ 때도 사용한다.
사전에서는 ‘시원하다’를 ‘불편한 속을 풀리게 하는’이라고 마치 치료의 기능을 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나는 홀로 육개장집을 다니면서 뜨끈한 고깃국물이 더부룩한 속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때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생각해보니 그 집을 자주 찾은 것은 맛 때문은 아니고 속을 편안하게 하는 치료의 효능에 반해서였다.
그 집 육개장은 다른 집과는 확실히 달랐다. 우선 국물이 진하면서도 깔끔하고 순해서 속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소고기와 대파에서 우러나온 국물이 불편한 속을 다스리는 효과가 있었다.
또 그 집의 육개장은 씹기와 목 넘김이 아주 수월했다. 삶은 파 등과 어우러지게 소의 살코기를 손으로 결대로 가닥가닥 찢어내어 씀으로써 쫄깃한 육질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입안을 환하게 했다.
그 집은 뭐니 뭐니 해도 주인아주머니의 다정함이 물씬 풍기었다. 학생 처지에 주머니가 얇아 3~4개월에 한 번 또는 6개월이 지나서 어쩌다 들려도 “그때 그 학생이구먼, 공부하느라 힘들지?”라며 나를 알아보곤 반갑게 맞았다. 한 그릇을 다 비워갈 때쯤 가닥가닥 찢어낸 고기와 국물을 한 그릇 덤으로 더 주곤 했다. 가외로 얻은 국물이 애초의 육개장만큼이나 실하였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그 육개장이 그리웠으나 일부러 먹겠다고 C 시까지 갈 수는 없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C 시로 출장 가는 김에 모처럼 그 집을 찾아갔다. 주인이 바뀌었다. 육개장은 그대로 팔고 있었으나 예전의 그 맛은 아니었다.
속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시원함을 느낄 수 없었다. 육개장의 깊은 맛을 그리워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뭔가 아쉬운, 또 서운한 감정이 밀물이 덮치듯 했다.
나중에 고향 친구에게 알아보니 건물주가 그 육개장집을 내보내고 직접 운영한다는 소식이었다. 전 00 육개장집은 인근 도시인 T 시로 옮겼다고 했다. 나는 그냥 기억 속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시원한 국물이 있는 맛집으로.
나는 직장에서 식사할 때 시원한 국물이 있는 집을 자주 들렀다. 직장 생활은 스트레스도 많고 잡다하게 신경 쓸 일도 많아 속을 편안케 하는 시원한 국물이 늘 당기었기 때문이다. 대구탕, 생태탕, 설렁탕, 꼬리곰탕, 복집, 곰치탕 등 맛집을 수없이 들렀으나 속을 시원하게 하는 효능을 흡족하게 느끼진 못했다. 뒷맛은 개운하고 포만감은 좋으나 속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기능은 00 육개장 같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최근 인터넷으로 기억 속에 있는 00 육개장을 찾아보았다. 놀랍다. 옮겼다는 T 시에 똑같은 이름의 맛집이 있었다. 유독 대파가 들어있는 육개장만을 판다거나, 소고기를 결대로 찢어내는 등 내 기억 속의 그 집과 비슷했다.
날이 선선해지면 여일 젖히고 나는 T 시로 시원한 국물 찾기 여행을 떠나야겠다. 궁금하다, 속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기억 속의 시원한 그 육개장집이 맞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