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이 붙어 있는 가지

by 스테파노

아파트 창문으로 본 정원은 작은 숲 같다.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제법 시끄럽게 조잘거린다.

사시사철 철 바뀜을 창문으로 확인할 때면 ‘아니 벌써’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가면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자문하고 또 자문한다.


아파트 2층 창문을 지나 3층까지 뻗어 있는 단풍나무는 어느새 빨갛고 이쁘던 단풍이 하나, 둘씩 시들시들해지며 마른 잎으로 변한다.


마른 잎은 나무와의 정을 못 떼어 가지에 붙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쉬엄쉬엄 쉬었다 가는 법이 없는 시간은 마른 잎을 하나, 둘씩 나무에서 떠나게 한다.


계절은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다. 눈 섞인 바람이 겨울보다 매섭게 분다.

새잎과의 만남을 위해 나무는 매정하지만 마른 잎을 서둘러 바람에 실어 보내려고 한다.


마른 잎을 밀치는 나무의 가지 흐느낌이 바람 소리보다 심하다.

건물 벽 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붙어서 몇 잎 안 남은 마른 잎들은 바람에 숨었다.


새잎을 맞이하는 다른 가지들은 설렘에 흐늘흐늘 거리지만. 건물 벽 쪽의 가지는 다정도 병처럼 마른 잎을 껴안고 시간을 죽인다.


다른 나무들은 어느새 연초록으로 몸치장을 하고 따스한 봄볕을 즐긴다.

음지의 벽 쪽 가지는 여전히 새잎을 못 틔우고 마른 잎만 붙잡고 있다.

며칠 뒤 마음씨 좋은 김 씨는 정원사와 가지를 자르는 문제로 티격태격한다.


정원사: 김 씨, 저쪽 건물 쪽으로 뻗은 나뭇잎이 붙어 있는 가지는 잘라내지.

김 씨: 글쎄요,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정원사: 잘라 내!, 다른 가지는 움튼 지가 언젠데 아직도 움도 안 틔우고 저 모양이니.

김 씨: 조경 반장님, 움이 안 튼 것은 마른 나뭇잎이 아직도 붙어 있다 보니….


정원사: 어 허, 그 사람, 고집은, 뭐든 제때 못했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냥 잘라내.

김 씨: 아직은 모양도 좋고 쓸만한데….


철 지난 나뭇잎이 붙어 있던 가지는 옹고집쟁이 김 씨 덕에 잘림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년에는? 벽면 음지로 뻗은 앙상한 가지에 자꾸 마음이 쓰인다.

keyword
이전 17화‘시원하다’란 참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