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꿈 해석 이야기-(1)
후미진 자기 등의 모습을 보려면
흉측하고 새까맣게 생긴 날짐승, 까마귀다. 열린 창문으로 까마귀는 벌레를 노려본다. 한입에 먹을거리로 털어 넣으려고. 박사가 정감 있게 아끼는 벌레를. 위기에 놀란 벌레는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한다. 바로 그 순간 박사는 사람 크기의 벌레로 변했다. 몸집은 사람이고 외양은 벌레인 괴상한 합체 동물로. 합체된 벌레는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까마귀를 쫓아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꿈이었다. 참으로 괴이한 벌레 꿈이다. 박사는 꿈을 깬 후 배, 손 등에 이상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잠자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얼른 머리맡에 있는 메모지에 꿈 내용을 적어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긴가민가하여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도루 잠자리에 누워 뒤척인다.
발들이 수없이 난 벌레와 흉측한 까마귀, 그리고 변신한 커다란 합체된 벌레가 머릿속, 벽면, 천장, 뱃살 위로 어지러이 왔다 갔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동틀 시간은 꽤 남았다. 박사는 뒤척이다가 스르르 또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메모지에 끄적였던 꿈 내용을 전후 맥락을 다시 정리하여 노트북에 저장했다.
박사가 저장해 놓은 꿈의 내용
❲벌레가 벽면을 타고 올라갔다. 발들이 양쪽으로 무수히 난. 벌레의 발들 모습은 마치 여러 발레리나의 군무처럼 춤을 추듯이 현란하기조차 하였다. 벌레는 천장을 가로질러 형광등 쪽으로 불빛을 찾아 잽싸게 움직였다.
그런데 벌레는 뜨거운 기운에 놀랐는지, 내가 누워 있는 침대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피하기도 쉽지는 않으나 왠지 피할 마음도 없었다. 그냥 떨어지는 벌레를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징그럽지 않은 정감이 가는 벌레였다.
박사는 맨살의 배 위로 떨어진 벌레를 보고 관찰하듯이 찬찬히 뜯어보았다. 하얀 형광등 불빛을 받아 자기는 귀족 벌레라는 듯이 자태를 뽐냈다. 벌레에 붙은 발들의 생김생김이 박사의 눈에 확 들어왔다. 벌레는 발이 양쪽으로 합해 30~40개는 난 것 같다.
발들은 가느다랗고 길쭉하였으며 두 더듬이는 몸체 길이보다 더 긴 것 같았다. 인간의 살갗은 어떤 모양인지 알려는 듯이 벌레는 기다랗게 생긴 발들을 꼬물거리며 배 위를 살피듯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어두컴컴한 밤인데 밖에서 열린 창문으로 쏘아보는 물체가 있었다. 흉측하게 생긴 날짐승이다. 새까만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그 벌레를 잡아먹으려 노려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벌레를 보고 있던 박사는 놀랍게도 몸이 변하는 것이 아닌가?
박사는 사람 크기만큼이나 큰 벌레로 변해서 문밖으로 나와 날렵하게 쫓아가고 있었다. 춤을 추듯 발들을 잽싸게 움직이며 까마귀를 쫓아서. 그리고 박사와 벌레가 합체된 변신한 벌레는 까마귀를 보고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대항한다.
놀란 것은 까마귀였다. 갑자기 커진 몸체에 입을 벌리고 잡을 듯이 노려보는 사람 크기의 벌레를 보고 까마귀는 깍 깍 거리며 어디론지 쏜살같이 달아났다.❳
박사는 식빵에 치즈를 얹고 잘게 으깬 아보카도, 양파, 토마토 등을 토핑 해서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체중과 혈압 관리에 좋다고들 하여 박사가 즐겨 먹는 아침 식단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꿈 분석용 작업지에 분석이 필요한 사항을 아래와 같이 메모했다.
꿈 분석 작업이
1) 벌레는 무엇을 상징할까?
2) 유난히 벌레의 발에 매료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3) 벌레가 맨살 위로 떨어졌을 때 위험함을 느끼지 않고 왜 받아들일까?
4) 맨살 위에 있는 벌레를 보고 놀람도 없이 살펴볼 수가 있으며 살펴본 내용은 무슨 의미를 줄까?
5) 벌레의 몸과 사람의 몸이 동일체가 된 의미는 무엇일까?
6) 그 동일체는 왜 쏜살같이 달려 나갔을까?
7) 까마귀는 무엇을 상징할까?
8) 그 동일체는 왜 까마귀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을까?
9) 커진 몸체 때문에 벌레는 싸움 없는 승리를 이루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주 현 박사는 자신이 꾼 꿈을 어떻게 분석할지 며칠을 끙끙거려도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는다. 꿈을 꾼 후 무려 일주일이 지났다. 꿈 분석 전문가로 자부하면서 주 박사는 ⌜꿈 해석 연구소⌟를 열어 고객에게 꿈을 분석해주고 해석해 준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박사는 정작 자신이 꾼 꿈 앞에서 단서만 산발적으로 떠오르나 전체적인 맥락을 어떻게 엮을지 고민만 하고 있다. 박사는 고객에게 꿈 해석을 해주듯이 자신의 꿈도 내용을 분석해 마음이 가리키는 길을 정확히 알아내고 싶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 은밀히 감춰놓은 꿈만이 아는 행복세상으로 가는 길을.
사실 연구소를 찾아오는 고객들은 꿈을 속 시원히 풀지 못해 궁금증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어떤 고객들은 꿈자리가 나빠서 일이 잘 안 풀린다고 걱정한다. 또 고객들은 두려운 꿈을 꾼 후 불안증, 공황장애 등을 염려한다. 혹은 고객들은 누구는 흉몽이라 하고 누구는 길몽이라 하니 종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주 박사는 이런 꿈이 지목하는 궁금한 사항들을 고객의 마음에 들어가 꿈을 꾼 이유와 의미를 밝혀 준다. 비록 박사 자신이 꾼 꿈은 맥락을 어떻게 이어 붙일지 모를망정. 또 고객의 궁금증을 짚어 주는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실과 꿈의 상관성, 또 꿈의 경보등 기능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다.
그때 비로소 고객들은 가능하면 잊으려고 저 무의식 깊은 곳에 밀어 놓았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들추어내어 꿈으로 자꾸 떠올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안도의 숨을 쉰다.
꿈을 꾸고 난 후 2주일이 되어서야 박사는 자신의 꿈을 해결하는 길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결할 수도 있는 방법을 알았다는 뜻이지 해결 그 자체는 아니다.
역시 교과서가 중요하다. 박사는 심리학 교재를 뒤적거리다가 왜 자신이 꾼 꿈을 자신이 분석을 못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냈다. 후미진 자기 등의 문제점이었다.
꿈 분석할 때 격언처럼 흔히 ‘후미진 자기의 등을 볼 수 없다’란 말을 많이 한다. 사람은 자신의 등 쪽 후미진 곳을 거울로 보아도 항상 흐릿하게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꿈 분석하는 사람이 아무리 해박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문제는 흐릿하게 보거나 아예 보지 못하고 넘기는 맹점(blind spot)이 있다.
도사리고 있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맹점을 피하면서 자기가 꾼 꿈을 어떻게 분석하면 좋을까? 방법은 하나이다. 다른 수가 없다. 꿈 분석에 소양이 있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꿈을 분석해 보는 수밖에. 꿈 해석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유명한 심리학자 Jung 박사도 Jung 학파 분석가에게 서로 교환해서 꿈 분석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던가?
뒤늦게 깨달은 주 현 박사는 결심했다. 꿈 분석에 소양이 있는 연구소 소속 연구원을 뽑아 아쉬운 대로 보완하리라고. 사실 연구소를 찾는 고객들도 제법 늘어나 손을 덜게 연구원을 뽑을 필요도 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연구원이 꿈 분석 기법을 배워 습숙견문하는 데도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므로.
엊그제 박사는 연구원을 뽑는 문제로 상의하기 위해 오래된 친구이자 잘 알고 지내는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그때 참한 사람이 있기는 한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축 처져 있으니 확인한 후 연락하겠다고 했다.
더 이상 연구원을 뽑는 문제를 미룰 수가 없기에 주 박사는 4일이 지난날, 김 교수에게 통화로 빚쟁이가 독촉하듯 말했다. “그날은 잘 들어갔지? 지난번 만났을 때 얘기했던 참한 제자 중에 한 사람을 소개한다더니 어떻게 되었나?”라고.
김 교수는 “재촉하기는! 바로 확인했지. 이혼 상처가 빨리 아물진 않겠지만 꿈 분석을 하다 보면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지. 그랬더니만 새달부터는 나갈 수 있다고 답변을 받았네. 연구소도 연륜이 제법 쌓여 이제는 연구원을 둘만큼 자리를 잡았군. 축하하네. 곧 본인이 연락할 것이네. 쉬엄쉬엄 일하게나. 번 아웃(소진)이 되지 않도록.”이라고 대답했다.
김 교수가 번 아웃을 걱정했으나 그것을 걱정할 만큼 일이 고되지는 않다. 고객의 숫자가 눈에 띌 만큼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연구소 유지할 정도는 되었다는 얘기지 번 아웃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아무려나 김 교수가 어떻게 이해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박사는 성실한 사람을 소개받는다는 사실에 또 후미진 자기 등의 문제점을 풀 수 있다는 사실에 소년처럼 기대로 부푼다.
며칠 후 박사는 사무실에서 고객과의 만남을 대비하여 이 메일로 보내온 고객의 꿈 내용을 읽고 있었다. 박사는 고객에게 되도록 꿈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서 글로 작성해 미리 이 메일로 보내기를 바란다. 연구소에서 고객의 꿈 내용을 직접 들을 때는 아무래도 놓치는 사항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객의 눈으로는 별로 중요치 않아 말하지 않고 넘어가나 외려 놓친 말들이 분석에 중요할 수도 있다. 또 고객이 의도치 않게 실수로 또는 무의식 세계의 농간으로 꿈 내용을 다 말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특히 무의식 세계의 농간은 무섭다. 말하고 싶지 않은 심중의 생각을 무의식 세계가 이를 알아차려 농간을 부린다. 예를 들면 운동을 억지로 이를 악물고 할 때, 빨리 끝내고 싶어 자기도 모르게 운동 횟수를 건너뛴다. 비슷해서 잘못 인식했다고 무의식 세계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지만.
그런 까닭에 고객에게는 번거롭겠지만 박사는 미리 이 메일로 고객으로부터 꿈 내용을 받는다. 또 사무실에서 직접 고객을 만날 때는 똑같은 꿈 내용일지라도 말로써 설명하게 한다. 고객들의 말을 통해, 글로써는 알 수 없는, 서글픈, 속상한, 괴로운 등의 표정들을 헤아려 보는 장점도 있기에.
박사가 근무하는 사무실 벽면에는 액자가 걸려 있다. “꿈은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한 모습이며 성격의 결함을 고치려는 시도이다 <Jung학파>.”라고 쓴. 박사는 고객을 만나기 전에 ‘나는 고객의 꿈에서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한 경고 즉 알람의 메시지임을 찾아주고 있나?, 또 꿈 해석을 통해 꿈꾼 사람의 성격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어 고칠 수 있게 하나?’를 늘 점검하듯이 되뇌곤 한다.
고객이 도착했다. 늘 고객을 만날 때는 가슴이 나지막하게 뛴다. 오늘은 고객이 어떤 꿈 내용을 들고 답답한 낯빛으로 하소연할까? 사뭇 매번 궁금하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