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퍼즐 같지만 (9)
“믿음성은 무엇인가”에 관한 토의
며칠 후 박사는 김 연구원에게 “그 여성과의 상담에서 꿈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은 없는가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는 3개월도 안 되었는데 그 여성의 반응이 매우 좋지요.”라고 새로 맺은 사람과 사귐의 패턴에 관해 말한다.
박사는 “11살 연상이란 그 남자분?”이라고 관심을 표한다.
김 연구원은 “네, 맞아요. 나이가 많아서 자기보다 훨씬 듬직하여 어른 같고, 또 하는 일마다 일관성이 있어 믿음이 간다고 말했던 그 사람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그 여성은 믿음성을 나타내는 증거물을 우표 수집하듯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겠군요. 사람의 믿음성에 관한 기준을 나름대로 세워놓고 이에 어긋나면 실망할 테고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사람에 대한 믿음성을 그 여성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
박사는 “상대방과 대화하면서 대화 중에 믿음 관련 단어가 나오면 물어본다든지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것이 좋겠지요. 왜냐하면 ‘가르치려 한다’라는 느낌을 받으면 상담은 잘 진행되지 않으니까요.
이를테면 종전에 그 여성이 ‘그 남자 친구가 믿음이 간다’라고 말했을 때 ‘믿음이 간다는 어떤 뜻으로 말했나요?’라고 물어보아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로 이끌어야겠지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사람에 대한 믿음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쉬우나 막상 저에게 ‘믿음성은 무엇인가?’라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절벽을 만난 듯 딱 그 앞에서 멈춰지지요. 답도 모르는데 얘기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고요.”라고 은연중 답을 조르듯 말한다.
박사는 “으음! 믿음성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알고 싶으니 설명을 해달라, 뭐 이런 뜻인가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죄송합니다. 설명해주신다면 참조가 될 것 같아서요.”라고 머뭇거리듯 말한다.
박사는 “나만 해도 구세대라 요즈음 세대가 느끼는 믿음성하고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데요…, 뜻은 통하려나?….
주역에 나오는 한자에 부(孚)란 단어가 있지요. 이 단어 풀이를 보면 ‘새가 알을 품는 모습’이 상형화하여 이루어진 글자이지요. 뜻은 ‘믿음성이 있다’라고 말하지요. 새가 알을 품는 모습과 믿음성과는 김 연구원이 보기에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나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으음…, 알을 품는다는 자기의 체온을 전달하여 정성으로 보살핀다는 뜻이므로 정성을 믿음성과 같은 뜻으로 보았을까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얼추 맞았는데 조금 더 새에 관해 공감하는 자세로 들여다보면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새에 공감한다…, 새의 처지에서 보면 알을 빼앗기 위해 위협하는 여우나 뱀 등을 이기려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정성으로 살피는 모습이니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며 정성으로 보살피는 것이 믿음성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맞았습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지요. 사명감이지요.”라고 대답한다.
김 연구원은 “사명감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라고 묻는다.
박사는 “새가 주위의 위협을 감수하고 정성을 기울이어 알을 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새의 처지에서 느껴본다면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새의 처지에서…, 새끼를 부화하여 잘 기르겠다는 의무감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그렇지요, 새의 처지에서라면 ‘내 대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계속 자자손손 이어나가야 한다’라는 세대를 잇는 사명감이 있지요. 그것이 새의 본능이고요.
새는 세대를 이어야 하는 사명감이 있으므로 새알을 뺏으려는 적들의 위협이 아무리 강해도 용기를 가지고 알을 보호하려 애쓰지요. 또 끊임없이 정성이 담긴 보살핌으로 발을 수시로 움직여 알을 굴리며 체온이 고루고루 전달되도록 하지요.”라고 대답한다.
김 연구원은 “그러면 믿음성이란 위 내용을 요약해서 볼 때 세대를 잇는 본능 같은 사명감과 이에 의지한 두려움에 대항하는 용기와 끊임없이 보살피는 정성이 있을 때를 말하는군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그렇지요, 사명감, 두려움에 대한 용기, 끊임없는 정성이 어우러진 것이 믿음성이지요.”라고 대답한다.
김 연구원은 “상담 중인 그 내담자 여성과 연상의 남자 친구를 가정해 놓고 본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박사는 “우선 그 여성의 경우 그 남자로부터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았다면 마음으로 쉽게 느끼겠지요. 그 여성은 남자 친구가 정성으로 보살펴주는 모습을 ‘잘 챙겨준다’라고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남자 친구에게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가 있다면 그 여성은 마음으로 감동이 오겠지요. 이를테면 쏜살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으로부터 그 여성 내담자를 다치지 않게 보호하려고 그 남자 친구는 그 여성을 폭 안았을 경우, 그 여성은 멀쩡한데 대신 그 남자 친구가 다쳤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는 단계지요.
마지막으로 세대를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그 남자 친구가 결혼하겠다고 그 여성 내담자에게 매달리는 단계지요. 이를테면 그 남자 친구는 여성 내담자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일가를 이루겠다고 결혼을 결심하는 것이지요. 그 남자가 결혼한 생각을 굳히는 순간, 가장으로서 사명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지요.”라고 대답한다.
김 연구원은 “그 여성 내담자와 남자 친구를 놓고 적용해보니 확실히 이해되는데요. 그 여성은 사람에 대한 믿음성을 회복하여 배신 없는 관계가 되려면 자기를 보살펴주는 정성스러움이 남자 친구에게 있는가?, 주변의 두려움에 대항하여 자신을 지켜 줄 용기가 그 남자 친구에게 있는가?, 가정을 이루어 자손을 낳는 등 세대를 잇는 사명감을 가지고 그 남자 친구는 결혼할 의향이 있는지를 관심 있게 보아야 하는군요.
‘믿음이 간다’라고 말할 때는 이 세 가지 개념을 잘 지킬 것이라는 확신이 서야 쓸 수 있는 말이군요. ‘믿음이 간다’라는 말을 마음에서 우러나와 썼다면 그 내담자 여성은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군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김 연구원의 입에서 뻔히 무슨 얘기가 나올지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낼 것이 있다면 풀게 하려고 “김 연구원은 그 내담자 여성이 어느 면에서 부러운가요?”라고 일부러 묻는다.
김 연구원은 “저 같은 경우에는 결혼 초에 남편은 가장이라는 사명감에 보살피는 정성도 지켜주는 용기도 투철했다고 믿었는데…. 중간에 다른 여자가 개입되고부터는 세 가지 모두 상처로 얼룩지는 허망한 상태가 되었거든요.
가장으로서 사명감도 없고 용기를 가지고 지켜주지도 않고, 보살핌은 개뿔 상처만 남기고 그러니 그 내담자 여성이 세 가지 다 부럽지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천년만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도 변하지요. 사랑이 변했다고 변한 사실을 붙잡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지요. 사랑은 당연히 변하는 것이니까요. 몹시 아껴주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 상호 간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끈이 되어 사랑은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될까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믿음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믿음? 그것도 답이겠지요. 그러나 믿음은 이제까지 설명했듯이 사랑을 하게 된 시작 지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믿음을 가졌다고 사랑이 계속 유지될까요? 믿음을 어떻게 매일, 매달, 매년 확인할 수 있나요?,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사랑한다는 눈빛, 보지 않고서도 몸으로 느끼는 신뢰감 등이 마음으로 전해 올 때 사랑에 대해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아! 정말 그러고 보니 믿음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개개인의 느낌에 따라 다르니…, 주관적 냄새가 물씬 나는군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뭐랄까, 믿음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곤란한 개념이랄까….”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사실 저의 경우가 이 물음에 연관되어있는 것 같아요. 저는 박사님이 말씀하듯 객관적이지 않은 그런 사랑한다는 눈빛, 신뢰성 있는 행동 등에만 빠져 믿음만 있으면 사랑이 지속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제 말은 김 연구원에게 결혼생활을 반추해보라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일반적 논의이니 뭐가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니까 자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비결 같은 것을 주역에서 뭐라고 얘기했는지 혹시 아세요?
요사이 주역 공부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다 공부했던 제가 설명하지요. ‘필요’입니다.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 필요를 위해서 부부가 서로 합심하여 살아갈 때 사랑은 유지되지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지속하여 느끼게 될 때 사랑은 계속 유지된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믿음은 맞는 말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뭐랄까 철학적인 냄새가 나지요.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될까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글쎄요. 부부가 같이 나눌 수 있는 공통의 즐거움을 준다든지 같이 사는 것 자체가 희망을 주어야겠지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역시, 김 연구원은 샤프하군요. 맞습니다. 부부에게 희망을 주어 같이 힘들어도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것이 유익할 때 사랑은 유지되지요.
주역은 그래서 암소를 키우라고 권하지요. 암소는 1년에 한 번씩 송아지를 낳아 재산형성에 도움이 되지요. 농경시대에는 암소 기르는 것만큼 유익한 것이 없지요. 자식들 배우는 데 들어가는 학자금, 결혼자금, 부부간의 살림집을 키우거나 등 모든 것이 암소로부터 나오지요. 요즈음에는 암소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요즈음에는…, 부부가 같이 노력하여 아파트 등 살림집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아파트 마련을 위해서 부부가 같이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지요. 아무튼 암소와 같은 1년에 송아지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여 손에 잡힐 때 부부의 사랑은 유지됩니다. 사랑한다고 립 서비스도 중요하나 눈에 보이는 현실적 이득이 따를 때 사랑은 구체적으로 유지되지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결혼을 했으면 ‘믿음’은 당연히 밑바탕에 깔려 있고 이것보다 더 현실적인 서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군요.”
박사는 “소를 기르라고 권한 주역은 참으로 현실감이 있는 대안을 주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결혼해서 살면 그때부터는 현실이니까 믿음이 있겠지 하고 바라보기보다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는 노력, 암소 키우기 같은 것을 늘 생각해야 하는군요. 제 결혼도 파탄에 이른 원인을 이제는 알 것 같네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김 연구원은 이제 배신 또는 외도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지 느낌이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묻는다.
김 연구원은 “배신이라든가 외도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미연에 생기지 않도록 관리 못 한 책임은 한쪽 당사자인 저의 잘못도 크다는 점을 이제야 알 것 같네요.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미워하는 감정에 빠져 있던 나를 돌이켜 보게 되는군요.”라고 대답한다.
박사는 “암소 키우기는 결혼 이후 현실에 부닥친 사랑을 해결하기 위한 주역 나름의 해결 방안이지요. 깊게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일 것이 있으면 받아들여 현실을 살아가는데 유익한 점을 끌어내어 쓰면 그로써 족하지요. 저는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등 고통스러움을 어떻게든 잊고 살아가는 김 연구원이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라고 말한다.
김 연구원은 “존경스럽다니요? 저는 그저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 박사과정에 다니고 있지요. 삶을 관용하고 불행감을 적게 가지라고 사람들은 말하나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사람은 감정이 있는 동물인데, 관용요? 어떻게,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나요? 내가 당장 불행할지라도 나에게 상처를 준 만큼 상처받기를 원하는, 보복의 감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요.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과거의 삶에 붙잡히지 않으려면 미래의 나를 위해 투자를 해야지요. 상처로 커다란 옹이가 생길지라도 그냥 버티는 거지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별로 소용도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김 연구원은 그사이 내공으로 다져진 기반이 두터워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추스르고 나름대로 삶을 풍부하게 할 것 같았다.
박사는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조금 전에 그 여성은 꿈에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지하실에 갇혀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라고 얘기했는데 그때 지하실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한 것은 밖으로 떳떳하게 나오기에는 불안감이 아직도 매우 크다는 뜻이지요.
혹시 그 여성으로부터 밖으로 나가 부딪치면서 살아갈 때 어떤 것을 유념해야 할지, 또는 믿음성이 이미 갖추어진 사람을 찾을 때 무엇을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하는지 등에 관해 물어오는지 잘 지켜보세요.”라고 말한다.
박사는 고객을 맞을 시간이어서 토론을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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