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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Feb 07. 2024

The Return of NEXT part2 World

by N.EX.T (1995)

 2014년의 겨울 어느 날 연남동 무드살롱. 나는 친한 뮤지션인 강모군을 비롯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날 이야기의 주제는 단연 신해철이었다. 그 해 10월 의료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노래에 대한 각자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술판은 제법 뜨거워졌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무드살롱 대표님은 주인의 자격으로 신해철의 음악들을 가장 큰 볼륨으로 틀어제꼈다. 우리는 공연장에 온 것처럼 춤을 췄다. 시대의 기인을 떠나보내는 우리 나름의 추도식이었다.


 뮤지션 강모군는 가장 좋아하는 신해철의 노래로 <나에게 쓰는 편지>와 <도시인> 등을 꼽았다. 그는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 라는 가사를 예로 들며 우리 대중가요에서 니체가 나올 일이 있냐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나 역시 ‘아침엔 우유 한잔 점심엔 패스트 푸드'를 먹는 다며 응수했다. 옆에 앉은 다른 지인은 신해철의 노래 중 <민물장어의 꿈>을 좋아한다고, 힘들 때마다 들었던 노래라고 했다. 그러다가 무드살롱의 스피커에서 <Lazenca, Save us>가 흘러 나오면 목이 터져라 라젠카를 외쳤다. 한 사람의 죽음을 추억하는데, 저마다 떠올리는 신해철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신해철,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신해철은 역시 N.EX.T 시절의 신해철이다. 그 중에서도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 (이하 WORLD) 는 고등학생이던 내가 공부할 때 즐겨들었던 음반이기도 했다. 이 음반을 자주 들었던 이유는 사실 단순했는데, 총 재생시간이 66분 15초로 길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문>으로 공부를 시작해 <Questions>를 듣고서 공부를 마치고 앉은 채로 <Love Story>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매점으로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60분을 공부하고 약 5분을 쉬는 최적의 학습 사이클이었다.


 그런데 그냥 길다고 해서 <WORLD>를 챙겨 들었던 것은 또 아니었다. 60여분의 긴 시간 동안 장르와 주제를 바꿔가며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 앨범이 <WORLD>였기에, 그런 연유로 졸릴 틈이 없던 음반이 <WORLD>였기에, 이 앨범은 고3 내내 나의 CD 가방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잔잔한 나레이션에 이어 폭발하는 사운드로 귀를 즐겁게 하는 <세계의 문(유년의 끝)>과, 그에 이어지는 <Komerican Blues(Ver.3.1)> 같은 곡도 있는가 하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같은 발라드 곡도 있었다. 낙태를 주제로 한 <Requiem for the embryo> 같은 소름 끼치는 곡도, <나른한 오후의 단상>처럼 평화로운 곡도 있었다.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것도 정도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듣다보면 묘하게 다 신해철의 음악이었고 그 속의 통일성을 찾는 것이 <WORLD>를 듣는 재미 중 하나였다. 가령 <아가에게> 같이, 갓난쟁이 조카에게 바치는 곡에서 조차 축복과 더불어 어두운 가사를 쏟아내는 면모 같은 것 말이다.


 20대 초 홍대 앞 클럽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때에, 운이 좋았던지 신해철과 넥스트의 공연을 직접 오퍼레이팅 해본 일이 있었다. 퇴근을 준비하던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사장이 갑자기 나를 불러세우더니 신해철이 공연을 할거라며 준비하라고 말했다. 학생 때의 우상을 직접 본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사연을 들은 즉슨, 근처에서 술을 먹던 신해철이 갑자기 즉흥적으로 게릴라 라이브를 하려는 중 찾은 장소가 내가 일하던 클럽이라는 것이었다.


 TV 밖 진짜 신해철은 그런지 다소 거친 모습이었다. 술에 취한 채 담배를 무대 위에 올라, <이중인격자>를 불렀다.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취객처럼 소리지르는 그가 과연 내가 아는 신해철이 맞는가? 콘솔 앞에 앉은 나는 꿈을 꾸면서 꿈을 깼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내가 알던 신해철이 맞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 <WORLD>를 들으며 상상했던 반항아 신해철, 천재 신해철의 모습. 신해철은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야만 했던 뮤지션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가 했던 모든 시도들이 다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는 부지런히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왔고, 그래서 멋있었다. 살아있었다면 어떤 음악들을 들려주었을까? 기연으로 만났던 그 때의 신해철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신해철이 내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음악들을 하고 있는 어느 평행우주를 상상해본다.  


Release Date   September 15, 1995

Recording Location 대영에이브이 스튜디오


    <Komerican Blues(Ver.3.1)>은 앨범 내에서 녹음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곡이라고 한다. Ver.3.1이라는 숫자에서, 당시 녹음과 믹싱에 들였을 시간과 노력을 짐작할 뿐이다. 3번의 큰 결단과 한번의 작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는 넥스트의 정규 3집이다. 이 시기에  N.EX.T 하면 연상되는 멤버 구성(기타 김세황, 베이스 김영석, 드럼 이수용)이 완성되며 밴드는 최전성기, 안정기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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