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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Feb 16. 2019

짜장면과 파리와, 칫솔의 관계

누가 칫솔도 없이 여행을 가나?

 요새 하도 글을 안 썼더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실천에 옮겨야 했다. 그래서 누워서 핸드폰을 하던 새벽 두 시에 노트북을 꺼내 들었고, 이 글은 파리에서 우연히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며칠 전에 한국에 돌아와 그동안 찍은 필름들의 현상을 부탁했는데, 그 결과물을 오늘 메일로 받았다. 이전에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글에서도 언급한 G에게 그 사실을 자랑했고 분위기 있는 사진이 있냐는 질문에 파리에서 찍은 한 장을 꼽아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네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지만 G는 그렇진 않지만 파리는 본인에게 짜장면 같은 곳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그 당시 파리를 여행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에펠탑 위에서 키스를 하는 것이 소원인 여성이 그곳에서 처음 만난 남성과 그 소원을 이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에펠탑과 에펠탑을 두고 흐르는 센 강의 낭만이 가득한 그래서 누구든 유럽을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를 앞두고 나는 스트레스에 휩싸여 있었다. 그 문제의 일차적인 근원은 내가 미련하게 치안이 좋지 않기로 악명이 높은 파리 19구에 숙소를 잡았던 것이었고, 무료 취소가 되지 않아 숙소를 옮기면 숙박비를 그대로 날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누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면서 숙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을 할 때마다 주변에선 '현지인들도 그쪽으론 잘 가지 않는다.', '파리 지하철의 소매치기며 몽마르트르 언덕의 팔찌 강매단, 사인단(청원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요구하며 정신없게 한 틈을 노려 소매치기를 하는 무리)' 얘기를 해 주면서 내 걱정을 키워주었다. 하지만 남들에겐 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하는 낭만이 있는 곳이었고 처음 비행기를 예매할 땐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결국 숙소 취소 수수료가 아까워 여행 내내 더 마음 졸이고 다니는 바보가 될 수는 없으니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끊은 비행기표를 무를 수 없으니 게다가 돌아오는 표는 니스에서 돌아오는 여정이라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지만, 도착 직전까지 든 생각은 이렇게까지 걱정을 하며 가야 하나?라는 것이었다. 남들은 다들 꼭 한 번쯤 가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는데, 내 기분은 소매치기와 강도가 가득한 마치 피라냐가 가득한 강물에 팔을 넣고 뜯기길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파리 마지막 날 에펠탑을 보면서 아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파리를 여행하면 안'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래도 걱정이 많은 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휴대전화도 오래된 공기계를 들고 가고, 카메라 역시 첫날은 꺼낼 엄두도 내지 않고 지하철 안에서 가방과 캐리어 모두 품에 앉은 채로 마주 보는 좌석에서 숙소를 향했다. 공교롭게도 내 반대편 자리에 껌을 씹으며 특별한 행선지가 없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나와 내 옆자리 사람의 짐을 눈으로 흘기는 게 보였다. 직감은 소매치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처음 보는 사람을 대놓고 의심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반대편 노선 열차처럼 계속 지나쳤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거나 내가 너무 내 짐을 꽉 쥐고 있었던 탓인지 그 사람은 다른 칸으로 옮겨갔고 나 역시 숙소 근처에 다다라 역에 내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숙소 주인분께선 따뜻한 저녁을 내어 주셨고 덕분에 파리의 첫날밤이 별 탈없이 넘어가나 했는데, 아뿔싸 칫솔도 챙기지 않고 나는 파리에 왔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너무 걱정이 많아 이것저것 챙기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칫솔 조차 챙기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칫솔이야 새로 사면 되지만 이렇게까지 정신없이 여행을 온 스스로가 불쌍해서 어떻게든 파리를 즐겨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그러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에 숙소 앞에 있던 마트에서 칫솔을 사서 나오며 처음 카메라를 들고 찍은 사진이 그 사진이었다. 그다음에 파리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물론 긴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오르셰 미술관을 충분히 둘러본 하루가 있었고, 매일 밤 에펠탑의 야경을 볼 수 있어서 충분히 파리를 즐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G가 짜장면에 빗댄 파리의 뜻도 이런 것이었다. "가장 좋은 곳은 아니지만 가끔 생각나는 게 쌓여서 너무 가고 싶어 지는." 나는 지금 현상된 필름 사진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가끔 생각날 그래서 다시 가고 싶어 질 파리의 기억들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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