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조각상이야.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4살 은유

by 동그래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정말 좋아한다. 어릴 적 까꿍 놀이에서 더 발전한 단계인 숨바꼭질은 어떤 존재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과정에서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경험하는 철학적인 놀이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장소를 찾아서 몸을 숨기고 술래가 오나 안 오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술래의 발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으면 긴장감이 몰려온다. 오랫동안 술래가 자신을 찾지 못하고 “못찾겠다 꾀꼬리!‘라고 외치면 세상의 영웅이 된 것 같은 뿌듯함과 기쁨을 느낀다. 아무도 모르게 잘 숨었다는 만족감과 이겼다는 승리감을 안고 등장하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멋지고 사랑스럽다. 새로운 곳이나 숲에서 하는 숨박꼭질은 더 신난다. 탐험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는 아이의 눈은 재빠르게 돌아가고, 마음에 딱 드는 공간을 찾아 자신의 몸을 굽혀 숨을 때는 그 어떤 스파이보다 스릴 있다.



4살된 은유는 숨박꼭질을 정말 좋아해서 매일 했었는데, 어느 날 은유가 숨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진지한 표정을 하고 서 있는 은유에게 "왜 숨지 않아? 저기 숨어봐."라고 말했더니 "엄마. 나 조각상이야. 술래가 나를 찾으면 은유가 아니라 조각상이라고 말해줘. 알았지?" 했다. 얼마나 기발한 생각인가! 난 평생 술래잡기를 몇 천번 했었어도 이런 생각은 못했는데, 은유의 말을 듣고 참 놀라웠다. 술래가 금방 찾을 수 있는 놀이터 한 가운데에 서서 조각상이라고 숨을 참고 서 있던 아이는 "엄마, 왜 웃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서 그래. 조각상이니까 이제 말 못해. 알았지? 나 조각상이야." 잠시 후 술래는 열을 다 세고 술래를 찾기 시작했고, 은유에게 널 찾았다고 말하니까 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아. 저거 은유 아니야. 조각상이야!" 말했다. 술래는 무슨 소리 하는 거냐며 은유 찾았다면서 다른 아이를 찾으러 떠났다.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면서 "어쩌니, 은유야." 했더니 "괜찮아. 이제 다른 걸로 바뀌면 돼지"하고선 자기도 웃긴지 깔깔 웃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은유'는 정말 멋졌고, 한편으로는 사고가 자유로운 아이들이 부러웠다.


어른의 나이가 된 나는 점점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없다는 것을 더 알아간다. 무엇인가를 도전하려면 오랜 숙고가 필요하다. 신중함이 더 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무모한 도전이나 생각을 스스로 제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세상 안에서만 머물려는 것 같다. 나이듦을 떠나 사고가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을 술래잡기 놀이라고 생각해볼까? 술래를 피해 숨을 자리를 찾아 쭈구려 앉는 것만 하지 말고 조각상이 되고, 바람이 되고, 바다가 되어 볼까?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경쓰지 말고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네가 나를 찾아봐, 라고 말하는 당당함과 무모함을 좀 장착하면 좋겠다. 어쩌면 오늘은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일테니까, 아이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keyword
이전 08화아기가 많이 아팠을 거 같아요. 아가야 이제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