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은수
은유(8살)와 은수가 색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은유가 "은수야,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여기를 보고 딱 맞게 접어야지!" 등의 말로 은수를 도와주었는데, 은수는 계속 누나가 지적을 하니 속상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는 다섯살이라 그래. 나 다섯살이라서 잘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배우는 거야.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되는거야. 혼내면 안 되는거야." 말했다. 할 말이 없어진 은유는 "그래, 미안해. 다시 잘 가르쳐줄게."하며 부드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뜨끔했는지! 다섯살이라 못하는 거라고 말하는 은수를 꼭 안아주며 사과하고 싶었다.
나는 나름대로 우리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기준에서 아이들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가 많았다. 어린 아이임에도 어른처럼 행동 해주길 바라고, 다소 엉성하게 만들고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뭐라 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부서뜨리고 깨뜨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 뭔가를 시도하려고 했던 건데,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가장 속상한 것은 아이들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럴 떄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해주진 못하고 왜 그랬냐고 뭐라 하고, 앞으론 하지말라고 했던 게 미안하다. 적극적으로 배울 기회를 주지 않고 아이들은 안 된다, 못 한다라고 내 맘대로 판단했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양육하고 있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다섯살이라 그래.' 다섯살은 다섯 살로 봐 주는 것, 나아가 나이를 떠나 그 아이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며 실수하고 넘어질 떄마다 "괜찮아. 배우고 있는 거야. 어제보다 멋진 오늘이 되려면 그렇게 자꾸 해봐야해. 엄마도 그랬었어. 너는 점점 더 멋지게 자랄거야."라고 말해주는 것이 진짜 존중이 아닐까? '언제까지 밥을 흘리고 먹을 거니, 엄마 이거 10년 째 치운다!'라고 눈치주지 말고, 아주 어릴 적에 이만큼 흘렸는데 이제 점점 줄어서 요만큼 흘리고 먹었다며 칭찬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성장'의 관점으로 보고 존중해주는 것, 어쩌면 내 자신에게도 필요한 관점일 것 같다.
"오늘을 처음 사니까, 이 일은 처음 하니까, 이 요리를 처음 시도했으니까 괜찮아. 처음 도전한 네 마음을 높이 칭찬할게. 잘 못해도 괜찮아. 처음이니까. 잘 하고 있어."